이 책방은 내가 이곳에 터를 잡을 때부터 있었다. 내가 이곳에 터를 잡은 건 결혼을 하면서다. 근데 뭐 이 동네는 내가 태어난 곳이라 처음부터 낯설진 않았다. 신혼집 앞이 내 초등학교 모교였으니까. 그 신혼집에서 큰아이를 낳고, 그 근처로 이사를 해 둘째 아이를 낳았다. 그때 낳은 큰아이가 벌써 고2다. 세월이 그렇게 지나는 동안에도 지하 동네서점은 살아남았다.
서점의 절반 이상은 초중고등학생 학습지다. 한 3분의 1 이상이 일반 서적 되려나. 고양이들 두어 마리와 주인아저씨가 함께 나이 들어가는 곳이 이 서점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이곳을 '고양이 서점'이라고 부른다. 이 작은 지하 서점이 어떻게 십 년 이상을 버티는지 나는 모른다. 나 역시 가끔 들르는 게 전부였다. 온라인으로 사는 거랑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지자체 정책 때문인지 책을 사면 10% 할인을 받는다(오는 7월부터는 지역화폐를 이용하면 10% 페이백까지 된다고 한다).
매장에 책이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아저씨에게 주문을 하면 거의 대부분 그다음 날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이용 안 하는 게 이상하지. 택배 쓰레기도 줄이고 돈도 아끼고 서점까지 걸어가느라 운동도 하고 내 입장에서는 이득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거의 책을 구입하지 않았다. 책 구입할 돈을 몽땅 몰아서 피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피티는 비싸다, 그래도 해야 한다, 근손실은 무서우니까). 물론 구입만 하지 않을 뿐이지 언제나 집 안에는 읽을 책들이 가득하다. 회사에 갈 때마다 들고 오는 책도 상당하다. 그렇지만 읽고 싶은 책은 언제나 계속 생기는 법. 습관적으로 온라인 서점에 주문을 하려다 멈칫했다.
'이 책은 요즘 베스트셀러라던데 고양이 서점에도 있지 않을까? 이따 전화해서 물어봐야겠다.'
그러다가 3일이 지났다. 주말도 지났다. 오늘은 꼭 해야지. 점심을 먹고 까먹을 무렵 생각났다. 아, 오늘은 서점에 전화해야 해.
"사장님, 책 입고 확인 하려고 전화했어요.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소설이에요."
"네, 잠시만요. 문학동네 책인가? 있네요. 있어."
"아, 그래요? 한 권 더 있어요. <한 줄 카피> 정규영 지음이에요."
"응. 잠시만요. 이건 없어요. 주문하면 내일 오전 11시까지는 갖다둘게요."
"그럼 내일 오후에 갈게요! 감사합니다."
"네, 그래요."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최근 후배들 독서모임에서 선정된 책이기도 하고 서평을 읽다가 '학부모로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 <보편 교양>'이 있다고 해서 혹 했다. 이 대목을 읽고, 비수능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가 처한 현실이라는 제목을 뽑았고.
<한 줄 카피>는 개인적인 관심이다. 학창 시절 내내 기자를 꿈꾸었지만 잠시 외도(?)를 한 적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문학 선생님이 새로 오셨는데 카피라이터 출신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어쩌다가 교직으로 오셨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당시에도 몰랐겠지만), 일반적인 교사의 이미지는 확실히 아니었다! 아우라가 그랬다!
원고지다! 나 이때 원고지에 글 써서 보냈다. 음하하.
어쨌거나 그 선생님을 만나면서 조금 광고 쪽에관심이 생겼다. 그 마음이 금세 식긴했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뿌듯한 그런 사건이 하나 있었다.
문학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에세이 쓰기 공모전이 있다면서 참가할 학생을 모집했는데내가 지원을 했다. 그때 쓴 초고와 선생님과 주고받은 원고, 빨간펜 원고지가 아직 내 곁에 살아있다. 30년 가까이 된 일인데...
당시 퇴고한 원고를 지금 보면 선생님은 카피라이터였던 게 확실하다. 교정지를 보는 순간 그렇게 느꼈다. 초고와 공모 원고는 좀 달랐는데, 편지라는 아이디어는 문학 선생님이 주셨던 것 같다.
'광고 때문에 생긴 일 / 광고에게 쓰는 편지'
당시 유행했던 카피(시작합시다, 오늘 나는 자유를 찾아 떠난다, 미인은 잠꾸러기 등)를 써서, 부지불식간에 광고와 함께하는 청소년의 하루를 편지 형식으로 쓴 글이었다. 기억력이 좋아서 그때의 일이 좀 생생하게 기억나면 좋았겠는데 뭔가 뚜렷한 기억은 아쉽게도 없다. 선생님 얼굴도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무지 노트에 원고를 쓰고 원고지에 옮겨 적었던 기억이 난다.
남은 건 상장뿐이다. 학교 운동장 단상에 나가 상 받을 일이 없었는데, 이 공모전 때문에 내 이름이 호명되었던, 나에게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가끔 이 원고 뭉치를 볼 때마다 실실 웃음이 난다. 좋아서. 이 글을 쓰려고 그 원고 뭉치를 다시 꺼내봤다. 웃음이 나는 문장 몇 개가 보인다.
'어떻게 쓰느냐보다
먼저
무엇을 쓸 것인가 생각할 것.'
선생님이 써주신 글이다. 학창 시절에 쓴 수십 권의 일기와 수백 통의 편지, 그리고 공모전에 참여한 일 등등 그때 내린 씨앗들이 뿌리를 잘 내려서 계속 글 쓰는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새삼 다시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런 배경 탓에 카피라이터들이 쓰는 글에 내적 친밀감을 느낀다. 내가 가보지 않은 삶이라 동경하는 마음도 있고. 카피라이터들의 책(이유미, 박웅현, 이원홍, 최인아 등)을 일부러라도 챙겨보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얼마 전 가족들과 한남동 리움미술관 가는 길에 제일기획 건물을 보게 되었다. 내가 다녔던 회사도 아닌데 괜히 반가웠다. "지금 업계 분위기는 잘 모르지만, 나 고등학교 때만 해도 한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광고회사가 여기였어. 이 분야로는 탑. 꿈의 직장. ㅎㅎㅎㅎ 엄마가 여기 에세이 공모전에 나가서 상 탔잖아!" 애들에게 목에 힘주며 자랑했는데 딱히 관심은 없더라. ㅎㅎㅎ 건축사사무소가 아니라서 그랬겠지(큰아이 관심사). 하이브 건물(둘째 아이 관심사)이 아니라서 그랬을 거야. 흠흠.
동네책방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했는데 흥분해서 딴 길로 샜다. '먼저 무엇을 쓸 것인가 생각할 것'이란 선생님의 말이 다시 내 뒤통수를 친다. 배운 대로 실천해야 하거늘.
쓰다보니 아름다웠던 내 청춘의 한 시절이 조금 그리웠나 보다. 그런데 상장 날짜를 보니 1996년 5월이다. 헉. 나 고3 때다. 고3 때 이런 걸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한다. 수능보다 글쓰기가 좋았던 건가. 나란 녀석도 참 어지간했네.딸아이를 이해해야 할(공부보다 하고 싶은 게 먼저) 구실이 또 이렇게 만들어진다. 어느 별에서 왔나 싶더니 내 딸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