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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경 Sep 24. 2024

글 쓰고 제목 잘 다는 꿀팁이 모두 여기에

[서평 함께 읽기]  이숙자 시민기자가 소개하는 <이런 제목 어때요?>

쉬는 날이다.

주말에 일하면(그렇다, 언론사는 주말에도 쉬지 않는다) 평일 하루를 쉴 수 있다.


밀린 은행 업무를 마치고 병원에 들렀다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그 재밌는 이야기는 곧 <독자에게 물었다>에 공개됩니다).


헤어지기 싫었나?

피부과 간다는 친구를 따라 같은 버스를 타고 타 도시로 나갔다가 짧은 쇼핑을 하고... 집에 왔다.


하루가 짧다.

종일 일터 홈페이지를 보지 않았다.

저녁 먹고 짬이 나서 잠깐 살피는 와중에...


이숙자 기자님의 기사 제목 '글쓰기가 없었다면 내가 이리 행복할 수 있었을까'가 눈에 띄었다.


https://omn.kr/2aaeh


기사 쓰셨네... 하고 무심코 눌러봤는데... 오잉? 부제가 더 눈에 띄는 건 기분 탓인가?


'글 쓰고 제목 잘 다는 꿀팁이 모두 여기에'


그렇다. <이런 제목 어때요?>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절로 배꼽 인사를 드린다. 감사합니다.  

그렇다. 기사 속 본문에 나온 대로 한길문고에서 한때(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책 모르는 군산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ㅎㅎㅎ ) 쌓아놓고 팔았던 책이다.


한길문고에서 쌓아놓고 팔았던 책... 지금도 몇 권은 있겠죠?


그런데 본문에서 오류를 발견했다. 이건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문장이 비문이기 때문에 편집과정에서 확인되었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독자에게 수신되기를 바라는 마음'(소제목), 이렇게 쓰고 보니 제목 뽑는 일은 하나의 생각만으로는 절대 쓸 수 없고,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몇 가지의 생각이 선택이라는 단계를 거쳐 한 문장으로 압축되는 일인 듯하다. 그 순간을 잘해야 완성도 있는 제목이 창조 되는 과정이다. (92쪽)



그 순간을 잘해야 완성도 있는 제목이 창조 되는 과정이다. 바로 이 문장. 어? 나는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없는데.... 그냥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비문인데... 당장 책을 뒤져 봤다. 역시 인용문을 잘못 옮기셨다. 원문은 이렇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제목 뽑는 일은 하나의 생각만으로는 절대 쓸 수 없고,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몇 가지의 생각이 선택이라는 단계를 거쳐 한 문장으로 압축되는 일인 듯하다. 그 순간을 잘 캐치해야 완성도 있는 제목이 창조되는 것이겠고. - 실감 나고 재미 있는 제목, 92쪽

 

그 순간을 잘 캐치해야 완성도 있는 제목이 창조되는 것이겠고. 얼른 고쳤다. 기자님만의 실수는 아니다. 그런 말 하려고 쓰는 건 더더욱 아니다. 이런 일은 서평에서 의외로 많이 발견된다. 지금도 어딘가에 작가가 쓰지 않은 문장이 표현을 달리 한 채 여기저기 올려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죄송한 말이지만, 편집기자도 인용문에 대해서는 꼼꼼히 확인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1차적인 이유는 옮겨 적은 사람을 많이(^^;) 믿기 때문이고(이번처럼 비문인 경우는 당연히 내용 확인을 요청해야 했다), 현실적으로 서평으로 들어오는 모든 책의 인용문을 원문과 대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론, 그러니 서평을 쓰는 사람이라면 글을 올리기 전에 인용문을 한 번 확인해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요.


사실 개인적으로 이숙자 기자님에게는 죄송한 마음이 있다. 한 번은 퇴고를 거의 안 하신 것 같은 원고를 보내셨기에, 조심스러운 마음을 담아, 원고를 한 번 더 수정하신 뒤에 보내주시면 좋겠다고 쪽지를 드린 적 있다. 그것도 몇 번을 미루다가 어렵게 드린 이야기였다(ㅜ.ㅜ). 그때 받은 답장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정확한 워딩을 그대로 옮기기는 어려운데 대강의 이야기를 전하면 '자세히 본다고 보는데 시력이 좋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더 꼼꼼히 보겠습니다'라는 말씀이셨다. 그때 연세가 이미 70대 중반을 넘으셨을 거다. 지금은 80대! 그 말씀을 듣고 어찌나 죄송하던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만약 내가 이숙자 기자님의 나이에 글을 쓴다면 실수 없이 글을 쓸 수 있을까? 혼자 물었다. 감히 예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기자님이 최선을 다한 글이라면 나도 최선을 다해 보는 수밖에. 그 뒤로는 초고 상태가 좋지 않아도 웬만해서는 다시 고쳐달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번 글에도 나오지만, 그 이전에도 여러 편의 글을 통해 글쓰기에 대한 기자님의 진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이가 들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가 늘 고민이었다. 글을 쓰고 외롭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어졌다. 노년이 되면 가야 할 곳도 줄어든다. 나처럼 나이 든 노인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게 놀 수 있는 일이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혼자 보낼 무료한 시간 걱정도 말끔히 사라졌다.
남의 삶을 기웃거릴 필요도 없다. 내가 가야 하는 길이 분명하기에 내 삶이 더 단단해졌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에도 좀 더 너그러워지고 자존감이 나를 살게 하는 힘이었다. 자녀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엄마로 남편에게도 잘 살고 있는 아내로 소리 없는 응원이 나에게 용기를 더해 주었다.



그런 분이 써준 서평이라 더 뜻깊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한 자 한 자 다시 음미하듯 읽어본다. 감.사.합.니.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계시는 이숙자 기자님의 글에도 많은 응원을 바랍니다.


https://brunch.co.kr/@sukja44




이 가을...

글 쓰기를 막 시작한 친구, 가족, 이웃에게 선물하기도 좋은 책이었어!!

왜?본인이 쓴 글... 안 본 사람 없게 하고 싶으니까.


이숙자 기자님이,

'시간이 없어 밥 한 끼 같이 못하는 지인들에게

선물을 해 주니 받자마자 유익한 책'이라는 반응을 보인 그 책이 궁금하다면?


http://aladin.kr/p/Oq6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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