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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지피티 시대의 고민 상담, 14명의 이야기

[편집기자의 오프] 공동 저자 참여기

by 은경

기회는 정말 뜻하지 않은 순간에 오는가 보다. 어느 날, 인스타에서 팔로우해 둔 편집자의 게시글이 눈에 띄었다. <챗GPT 시대의 고민 상담> 에세이를 공개 모집한다는 것. 엉? 이게 뭐야? 시대의 흐름을 탄 굉장히 트렌디한 기획인데? 역시가 역시네.

이 '역시'란 말에는 나름의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나는 책을 볼 때 작가의 글만 보지 않는다. 책의 만듦새도 본다. 출판사나 편집자의 기획력도 살핀다. 편집기자지만 편집만 하는 사람은 아니어서 기사를 쓸 때 보던 습관 같은 게 남아 있어서다. 그래서 그땐 눈에 띄는 책의 편집자 인스타를 팔로우 해두곤 했다.


이 편집자는 그중 한 명. 예전에 '먼슬리 에세이 시리즈'로 내가 눈도장을 찍었던 이였다. 특히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시리즈 홍보가 인상적이었는데, 저자가 책 표지로 디자인된 로브를 직접 제작해서 입고 라이브방송을 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정말 책에, 책을 파는 것에 진심인 사람이네 싶어서, 나는 그러지 않음을 반성과 동시에, 대단하다고 생각했더랬다.


그 책의 편집자가 바로 드렁큰에디터였다. 실명이 아니네, 누구지? 그러다가 우연히 그분이 여는 '편집자가 기획하는 법' 주제의 미니강의까지 신청하는 일도 벌어졌더랬지(당시엔 밀리의 서재로 이직한 상태였다)... 편집자도 아닌 내가 그게 왜 듣고 싶었을까, 그게 언제더라... 강의 끝나고 뒤풀이까지 했었는데... 서먹한 분위기였지만 나쁘지 않었어, 회상하는 사이 나는 게시글에 댓글을 달고 있었다. '저도 도전해 볼게요!' 그즈음 나도 사춘기 아이의 마음을 모르겠을 때 AI에게 물은 내용으로 육아에세이를 썼던 터라 관심이 가는 주제였다.


https://www.ibab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910


써야겠다고 생각하니 일사천리였다. 다행이라면 마감이 촉박하지 않았고 마침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었다는 것.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재밌었다. 도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일상에 활력이 되었다. '대국민 에세이 오디션'에 참가한 것 같았다면 과장일까? 퇴고까지 마무리한 에세이 3편을 편집자 메일로 발송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끝났다. 남은 것은 기다리는 일.


배우는 기다리는 직업이랬는데 작가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내 경우는 '이제 글을 써야겠다'라고 맘먹고 책상에 앉을 때까지 계속 기다리는 편이다. 책상에 앉으면 한 꼭지는 끝내니까. 그전까지 계속 구상만 한다. 메모하고. 이제 정말 안 되겠다 싶을 때까지 생각하다가 때가 되었다 싶으면 자리에 앉아 쓴다. 어떻게든 하나의 글이 완성될 때까지. 퇴고는 나중 문제. 그렇게 쓸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렸다가 쓴다.


쓰고 난 뒤에는 독자와 편집자의 반응을 기다린다. 나의 글쓰기는 그 과정의 끝없는 반복이다. 마감을 하고 난 뒤에는 기다렸다 다시 쓴다. 그러길 스무 번 이상 반복하면 다시 하나의 원고로 묶는다. 투고를 하고 기다린다. 내 글의 편집자를 만나는 가장 빠른 길 같은 건 없었다. 그저 글을 계속 보여주는 것, 그리하여 발견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 말고는. 배우도 비슷하지 않을까. 어느 역할이든 계속 보여줘야 감독은 그 배우의 존재를 기억이라도 하겠지. 아, 그 배우! 어디에 나온 그 배우라고. 나도 그러길 바란다. 아, 그 작가! 그 글을 썼던 그 작가 하고 알아보기를.


누군가 물었다. 그래도 책을 4권이나 냈으면 책 내는 게 쉽지 않냐고. 전혀. 쉽게 낸 책은 한 번도 없었는데... 2017년에 첫 책 <짬짬이 육아>를 냈는데, 글은 2015년 2월부터 썼다. 쓰는 데 1년 걸렸고 출판사 사정으로 책을 내는 것도 계획보다 오래 걸려 나왔다. 두 번째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는 내가 기획해서 출간했는데 글은 2018년 5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썼다. 책은 그해 11월에 나왔다. 세 번째 책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은 2019년 7월에 쓰기 시작해서 2020년 12월에 마쳤다. 책은 2021년 12월에 나왔고. 네 번째 책 <이런 제목 어때요?>는 23년 3월부터 쓰기 시작해서 24년 2월에 끝냈다.


정리하면 출간한 책의 대부분은 1년 동안 쓰고 나왔다. 1년은 52주. 나는 일하면서 격주로 하나씩 마감했기에, 1년 동안 26회 정도 쓸 수 있을 뿐이었다. 일하고 아이들 보면서 살림도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호흡으로 했다. 일주일에 하나는 너무 빠듯하고 이주에 하나, 그 정도가 딱 좋았다. 가끔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글이 잘 써질 때 미리 킵해둔 원고가 있었기에 버텨낼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이번에는 3편이다. 내가 마감하는 원고가 3편이면 된다(퇴고할 원고도 3편!). 뽑히기만 하면 책이 된다니 설레는 마음으로 발표를 기다렸다. 6월 6일, 결과는 합격. 원고 접수는 2주간 했고 지원자는 약 50명(대략 150편)이라고 했다. 편집자는 말했다. '생각보다 높은 지원율에, 퀄리티 높은 원고들이 너무 많아서 당초 약 10명을 뽑으려던 계획을 바꿔 14명의 저자를 최종 선정했고, 그렇게 해서 모인 총 14명의 에세이는 놀랍게도 겹치는 이야기 하나 없이 저마다 제각각 다양한 사연과 고민을 품고' 있었다고. 그렇게 아는 게 하나도 없는 필자들과 공저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렇게도 책이 되는구나 싶은 생각도 잠시, 합격 발표 후엔 신속하게 원고 피드백 및 수정이 이뤄졌다. 한 차례 교정을 보면서 다른 이들의 글도 읽어볼 수 있었다. 편집자님의 말이 과언이 아니었다. 이 원고를 읽고 출간을 망설일 편집자는 없을 것 같았다. 신났을 편집자님을 상상했다. 나도 좋은 글을 발견하면 신이 나는데 편집자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서. 이 출판사 이름은 퍼스널에디터. 슬로건이 재밌다.


( 당신 )을 위한 편집자, 퍼스널에디터.
독자를 위한
저자를 위한
저자가 되고 싶은 독자를 위한 퍼스널에디터


출판사의 정체성이 확실히 드러나는 문구였다. 공개 모집한 원고로 책을 내는 건, 이 출판사가 지향하는 바와 딱 들어맞는 출간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출판사의 첫 책 <생계형 E로 살아가는 I의 사회생활>을 보면 더 잘 보인다.


기존의 책들과 만듦새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책은 저자의 말 이전에 책의 기획의도를 담은 '기획자 코멘트'가 먼저 등장한다. 내가 기획한 책이라는, 편집자의 당당함과 자신감이 읽힌다. 그리고 이어 '디자이너의 코멘트'도 있다. 어떤 고민으로 이 책의 표지를 담았는지 독자가 알 수 있게끔.


나는 이러한 구성을 완전 찬성하는 사람. '책표지의 속사정'이라는 기획 기사를 쓴 적 있는데, 그때 편집자 혹은 북디자이너랑 이야기하면서 이런 내용들도 책에 실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심 했더랬다. 책을 만드는 사람은 저자만이 아니니까. 내 책 <이런 제목 어때요?>에도 나오지만 책 표지는 '디자이너의 독후감'으로도 볼 수 있는 거니까.


최근 편집자님은 인스타에 책 표지 디자인을 투표에 부쳤다. 많은 이들이 선택한 것으로 표지는 정해졌고 최종교만 보면 되겠다 싶었는데 텀블벅 펀딩을 한다는 연락이 왔다.


기간은, 2025. 08. 02 ~ 2025. 08. 17까지

요즘 대세! <챗GPT 시대의 고민 상담> | 텀블벅 - 크리에이터를 위한 크라우드펀딩


아래는 편집자님이 쓰신 출판사 소개글.


잠재력 있는 신인작가들의 긴밀한 파트너가 돼서 서포트하는 일에 집중해보려고 합니다. 새로운 기획 아이템을 시도해 보고, 또 새로운 방식으로 저자를 발굴해보고 싶기도 해요. 에세이 공개 모집을 한 <챗GPT 시대의 고민 상담>도 그런 관점에서 시도해 본 방식입니다. 이번 책을 시작으로 원고 공개 모집을 통해 지속적으로 기획, 출간할 예정이에요. 텀블벅을 이용하는 모든 분들도 퍼스널에디터의 '잠재적 독자이자 저자'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글을 쓰고 싶은 분들, 에세이 작가가 되고 싶은 분들이라면 <챗GPT 시대의 고민 상담>을 읽어보면서 출간의 실제 과정을 경험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미래의 저자님들이 꼭 경험해 보시면 좋겠다. 이 경험을 통해 꿈을 키우고 다음 공개모집 때 꼭 도전하시면 좋겠다. 그리하여 실제 과정에도 참여하실 수 있기를 바란다. 새로운 경험은 배움과 활력을 주니까. 내가 그랬다. 이런 형태의 공저에 한번 참여해 보고 싶은 바람이 있었는데 공개 모집이 열렸다. 신기한 마음에 도전했고 과정은 재밌었다. 텀블벅을 통해 함께 결과를 만들어가는 것도 해보지 않은 경험이다.


고백하건대 내가 이 낯선 작업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데는 드렁큰에디터라는 편집자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컸다. 작가라면 누구나 한번 작업해 보고 싶은 편집자가 있기 마련이니까. 투고도 그런 일환이고. 생각해 보면, 내가 겪어본 5명의 편집자의 스타일은 전부 달랐는데... 결국 편집자는 책이라는 결과물로 보여주는 사람인 것 같다. 내가 편집한 기사로 나를 보여주듯. 다음 문은 어디서 어떻게 열릴지 모른다. 나는 그저 계속 기다렸다 쓸 뿐이다. 출간은 곧이고.


8월 18일~8월 24일: 인쇄 및 제작(변동 가능)

8월 25일: 선물 예상 전달일


요즘 대세! <챗GPT 시대의 고민 상담> | 텀블벅 - 크리에이터를 위한 크라우드펀딩


추천사는 재밌게 읽은 책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가고>에서 짠내 나는 구내식당 이야기를 쓴, 곽아람 기자(조선일보 출판 팀장, <공부의 위로> 저자)가 썼다.


챗GPT와의 상담이 인간 상담사와의 만남보다 효과가 있다고 느낀다면 결국 유저가 경계를 풀고 자기 마음의 밑바닥까지 털어놓으며 그 과정에서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보다 기계가 더 편한 현대인의 허약한 마음을 재빠르게 낚아챈 기획이 돋보이는 책이다. 챗GPT와의 상담이 익숙한 사람들보다는 AI에게 마음을 털어놓는다는 사실이 꺼려져 대화를 망설이고 있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AI와 이야기 나누다 보면 결국 알게 될 것이다. 인생의 답은 챗GPT 채팅창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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