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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무스쿠리 노래를 추천해 준 90년생

[편집기자의 온] 병실에서 듣는 why worry

by 은경

지난 7월에 새로 온 후배 이야기를 썼다.


https://brunch.co.kr/@dadane/629

29일 입원을 앞둔 주말, 뭘 쓸까 생각하다가 지난 목요일 회식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그동안 나와 함께 일한 후배들은 대부분 나이가 10년 이상은 차이가 났다. 여성 기자 둘의 회식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었다. 맛집에 가고 카페에 가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것도 점심시간에. 술을 먹자는 후배들도 거의 없었다. 다들 술을 잘하지 못했고 나도 잘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권할 이유도 없었다.


6호는 달랐다. 정치부 기자만 8년이다(9년이었나). 그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일 거다. 6호는 술을 좋아했지만 여의도 스타일의 회식은 이제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산해진미를 먹어도 먹는 게 아니었다며.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를 때가 많았다고 했다. 일의 연장이었으니까.


라플에서는 달랐다. 나는 후배들을 잘 먹이고 싶은 사람. 비싸고 좋은 게 아니라 잘 만든 음식을 먹이고 싶었다. 재택을 기본으로 하고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는지라 가능하면 기분 좋게 먹을 수 있는 밥집을 골라 다녔다. 카페도 마찬가지. 광화문에서 직장인들이 먹는 밥이 다 거기서 거기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안에서도 건강하고 맛있는 한 끼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딜 갔냐면.


1. 도화 솥밥. 여긴 점심 밥 치곤 꽤 비쌌지만 첫 만남에 먹은 거라 좀 더 신경을 썼다. 우리는 전복솥밥을 먹었다. 그리고 서촌 보로우 커피. 2층인데 사람이 별로 없다. 공간은 크고 인테리어도 예쁜데 늘 갈 때마다 사람이 없어 놀란다. 하지만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할 때는 사람이 많아서 당황했다. 큰 테이블이 있고 룸도 있다.


2. 양산도. 복날 즈음이라 보양식 먹으러 갔다. 히츠마부시(일본 나고야식 민물장어덮밥) 정식과 가지장어덮밥을 먹었다. 카페는 곳온니플레이스. 아침에 여기 앉아 있으면 광화문 직장인인 것이 약간 실감 난다.


3. 오늘은즉떡. 학창 시절로 돌아가서 분식 먹는 기분을 낼 수 있다.


4. 정원. 백반집. 저렴하고 맛있다. 제육볶음과 오징어볶음. 늘 무생채와 부추부침개가 반찬으로 나온다. 이날 간 카페인지 정확하지 않은데 광화문에 파네트라는 빵집이 있다. 거기서 먹은 피치우롱아이스 먹고 후배 눈이 두 배로 커졌다. 소리도 쳤다. "서언배!!!!" 맛있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다고 들렸다.


5. 광화문 수제비. 퇴근할 때 출출하면 들렀다 먹고 가는 곳. 힐링푸드다. 너무 맛있다. 납작한 수제비가 아니다. 투박하고 쫄깃한 수제비. 바지락국물이 너무 제대로다. ACR알레그리아 덕수궁디팰리스점. 커피 마니아 후배가 추천해 준 곳. 그러나 나는 특별히 모르겠다. ^^


6. 서촌 옹시미. 가장 최근에 발견해서 9월에만 3번 갔다. 몸을 채워주는 듯한 국물맛이 일품이란다. 쫄깃한 옹심이는 또 어떻고. 나는 국물을 거의 먹지 않지만 국물파들이 좋아하더라. 메밀전과 전병이 있는데, 굳이 고르자면 나는 전병. 바삭하고 약간 매콤해서 심심한 옹시미와도 잘 어울린다. 면과 옹심이를 반반 먹을 수 있는데, 대부분 그냥 옹심이만!이 더 반응이 좋았다.


카페는 대충유원지. 함께 간 누군가가 그러더라. 내 이미지가 명석한(처음 들어봤다) 그런 느낌이었는데, 이런 힙한 곳도 좋아하냐고. 흠흠... 나 나름 힙쟁이인데. 서운하다(농담이다). 그래서 힙을 어필했다. 그날 먹은 메뉴는 커피 아니고 거봉 녹차. 이거 맛이 진짜 거봉 맛이다. 인위적인 맛이 아니고 진짜 거봉 녹차라는 품종이 따로 있더라. 구매가 가능한지 가격과 함께 쓰여 있다. 밀크 우롱차는 후배가 시켰는데 우유가 들어갔나 했더니, 이 역시 밀크 우롱차라는 품종이 따로 있었다. 이것도 약간 킥이 있다. 위스키를 마시는 것 같은? 쓴 맛은 없지만 향이 그랬다. 나중에 또 가면 나는 이걸 먹을 거다.


7. 훅트포케. 광화문 수제비 먹으러 갔다가 문이 닫힌 이슈로 옆옆집에 있는 포케집으로. 누군가는 양이 적다고 했지만, 더 달라고 하면 밥이나 야채를 더 먹을 수 있다. 나는 가볍게 먹기 딱 좋은 양이었다. 그날 간 멤버 모두 싹싹 비웠다. 허나 후배는 집으로 가서 라면을 하나 더 먹었다고 한다.


밥 먹으러 갈 때는 항상 사진을 찍어두는 터라 핸드폰 앨범을 보면서 정리하고 있다. 우리가 먹는 메뉴 중심으로 맛집 지도 그려도 되겠다고 후배가 그러던데(디자인 잘하시는 분 있으면 그려주세요) 내 능력 밖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 합정에서 약속 있어서 가게 된 멕시코 식당. 와, 새로운 맛이었다. 사실 이날 먹은 메뉴를 대구 멕시코 식당에서 먹은 기억이 있는데, 그게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맛있었다. 처음 먹어보는 것 같았다. 6호랑 같이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술 전 쾌유 기념 회식 장소가 멕시코 식당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참 길게도 썼다. 바 자리에서 맥주 한 잔이랑 맛있게 먹었다. 맛있게 먹는 후배 모습을 보니 참 뿌듯했다. 내가 추천한 곳에서 함께 온 사람들이 잘 먹는 거 보면 참 뿌듯하다. 그래서 회식 반장에 대한 칼럼도 썼다. 회사는 광화문이고요, 회식 반장입니다


그런데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바로 도란과 소란. 배도 부르니 좀 걸으면서 칵테일 같은 거나 한 잔 더 먹고 가자고 했는데 바로 나타났다. 도란과소란이. 홀에는 우리뿐이었다. 전에 다른 후배랑 커피를 먹었던 곳인데 밤에는 바로 변신하나 보다. 바에 앉으라는 사장님. 사장님에게 상큼하고 세지 않은 약간 단맛의 칵테일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후배는 진한 칵테일로. 맛이... 좋았다....


바 이야기를 더 써야 하는데 이제 병원이다. 바 이야기는 다음에 쓰겠다.


방금 간호사가 혈관 찾는다며 두 군데나 찔렀는데, 실패하고 갔다. 수술 바늘이라 두껍다. 눈물이 핑 돌 만큼 아팠다. 간호사가 죄송하다고 연신 말하는데 이해한다. 누구나 처음은 있으니까. 그게 나인 게 문제지. 쉬고 있으란다. 더 혈관 잘 찾는 간호사분을 불러주시겠다며 사라졌다. 너무 아파서 좀 울었다. 바늘 잘못 찔러 혈관이 좀 터졌는데 멍들지 말라고 지혈하는 게 더 아팠어요. 엉엉. 수술은 더 아플 텐데. 나이 50이 다 되어도 왜 겁나는 건 안 없어지냐고 남편에게 물었다. 기대했던 웃긴 대답은 없었다. 좀 웃겨주지.


간호사 말대로 다른 간호사가 왔다. "바늘이 굵어서 혈관이 곧아야 하는데... 잘해보겠습니다." 둘이 한마음으로 외쳤다. "파이팅!" 결과는 성공. "혈관이 좀 얇긴 한데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습니다. 고생하셨어요." 한방에 찌르고 갔다. 욱신 거리는 아픔이 있었지만 이 정도야 뭘. 살만해진 내가 멍 들지 않은 바늘 자국을 보며 말했다. "아까 그 간호사한테 저 괜찮다고 해주세요. 잔뜩 쫄아서 갔어요." 간호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안 그래도 저한테 쫄아서 와서" 우리는 가볍게 웃었다. 한 번에 성공한 간호사가 "수술 잘 받으세요" 하고 미소를 날리며 사라졌다.


바늘 찌를 때 정말 살짝(보다 좀 날카롭게 찌르듯) 아팠는데... 옆 방에서는 난 비명 소리가 이 혈관 찾는 거였다다니 아픈 바늘은 맞는 듯. 사람마다 느끼는 통증의 강도는 정말 너무 다르다는 걸 느낌. 옆의 아주머니는 수슬 후 돌아와 죽을 듯이 아프다고 소리를 치고, 정말 아프실 텐데 걱정하는 옆옆분은 무통으로 견딜 만하다고 하셔서 간호사가 놀란다.


그래도 나는 병실 소음이 너무 커도 괜찮다고 느끼는 밤이다. 내일의 나일 수도 있으니까(그래도 좀 무서웠다. 다행히 나랑은 다른 수술이었다!)

도란과소란에서 후배가 신청곡을 신청했는데, 무려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다. 날 위한 곡이라며ㅡ. 이상하게 위로가 되어 나도 즐겨 듣는 곡이 되었다. 이 병원 모두의 안녕을 비는 밤이다. 나의 안녕도.

https://youtu.be/3471d-wlDgk?si=h8zo3pldMzPIiY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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