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기자의 온앤오프]를 마치며
<열심히 대충 쓰는 사람>.
제목에 꽂혀서 읽게 된 책이다.
저자는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윤덕원. 가수가 이렇게 글을 잘 써도 되나?라고 처음 생각한 사람은 <보통의 존재> 이석원이었다(그의 두 번째 책은 너무 찌질해서 실망했지만. 그것마저도 그의 매력이려나. 그렇게 솔직할 수 있다는 것도 대단). 여하튼, <열심히 대충 쓰는 사람>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최근 브로콜리너마저 3집 앨범을 발표했다. 꽤 오랜만의 앨범인데, 따져보니 2집이 나온 지 8년 7개월 만이다. 첫 앨범을 내고 두 번째 앨범을 내기까지 2년 남짓 걸렸는데, 이번에는 그 몇 배가 넘는 시간이 걸러버렸다. 물론 그 사이에도 개인 작업을 하고 싱글 앨범을 발표하긴 했지만, 작업 속도가 예전 같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 시간의 차이가 좀 극적이기는 하지만 사실 뭐, 대단히 특별한 일은 아니다.
2집과 3집 사이 시간이 8년 7개월 만이라고? 와 그 정도면 거의 잊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 아닌가? 그래도 2007년 미니앨범(EP) ‘앵콜요청금지’가 워낙에 대중에 깊이 각인된 탓에 브로콜리너마저는 잊히지 않았고(물론 나에게도) 끊기지도 않았다. 이어 2019년 3집 ‘속물들’과 2024년 4집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를 발매했다. 3집에서 4집 사이 간격도 무려 5년 6개월이다.
8년 7개월과 5년 6개월. 이 숫자는 지금 내게 의미가 있다. 약간의 조바심이 나고 있는 나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신호 같아서다. 이 글이 실린 꼭지명은 '직업으로서의 창작은 괜찮지 않을 일'. 제목처럼 '창작은 괜찮지 않은 일'이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들 어떠냐는 작가의 말이, 나에게 적잖이 위로가 되었다. 나 역시 원고는 빨리 안 써지는데(빨리 쓸 생각 자체가 없어 보이기도) 독자들에게 잊히기 전(?)에 책을 출간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전혀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반 발매는 여러 가지 상황들로 늦어졌지만 그 사이 작가는 매체에 글도 연재하고 라디오 게스트로도, 디제이로도 활동하면서 생각한 것들을 기록했고 그것을 한 데 모아 데뷔 후 처음으로 책으로 펴냈다. 그 사이사이로 곡도 쓸 수 있었고.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고민과 생각, 연재를 시작하고 마감을 지키느라 고군분투하는 모습, 창작자로서의 일상을 소소하게 공감하며 읽었다. 읽다가 연재하는 분에게 참고할 만한 페이지를 알려드리기도 했고, 연재가 힘들어질 때 읽으면 좋을 구절을 발견하기도 했다. 글 쓰는 사람들이 마감에 대한 생각은 다 비슷한 것이로군, 이란 생각도. 내가 좋아하는 오은 시인의 추천사가 실려 있어서 반갑고 좋았다.
언제나 그렇듯 어떤 결과를 예상하지 않은 채 편집기자의 온앤오프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10개월의 여정을 마치려고 한다. 계절을 보내듯 한 시즌을 닫고 다른 시즌을 여는 기분이다. 언젠가 이 글들도 좋은 편집자를 만나 더 많은 독자들에게 소개될 날을 기다리며 조급해지는 마음 한 귀퉁이를 접어본다.
덧붙이는글.
편집기자의 온앤오프 시즌 1을 마칩니다(당연히 시즌2도 있을 거라 봅니다). 그동안 라이크 눌러주신 독자분들, 연재 기다려주신 분들, 응원해주신분들, 소중한 댓글 달아주신 작가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참고로 저는 수술 후 잘 회복 중입니다. 전신마취는 처음이었는데 물속에 빠진 기분이 한 3주는 가더라고요. 어질어질.
회복 중에 감기에 걸려(코로나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골골 하긴 하지만 덕분에 집안에서 가을을 쳐다만 보면서 가벼운 글쓰기로 복귀 준비를 하고 있어요. 곧 다음 연재 '편집기자의 쓰고 고치는 마음'(가제)을 들고 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요.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