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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경 Jul 05. 2018

“우리도 난민이었잖아” 열두 살 딸도 정우성만큼 알더라

[엄마가 한번 해봤어] 난민에 대한 생각 나누기

남의 나라 이야긴 줄 알았다. 난민은. 한 부서에서 일하는 후배 둘과 나는 거의 일주일 간격으로 각각 제주도로 휴가를 다녀왔다. 제주도 난민 문제가 세간에 알려진 건 그 무렵이었다. 마지막으로 제주도에 다녀온 후배가 말했다.


“저 제주에 갔을 때 이 사태가 터졌는데 전혀 몰랐어요. 이 문제가 보기보다 심각한 것 같아요. 예멘 사람들에 대한 관련 정보가 너무 안 알려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후배 말대로 여론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그 무렵 사진 하나가 생각났다. 내게 ‘난민’ 하면 떠오르는 강렬한 이미지. 2015년 9월,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시리아 난민 소년 아일란 쿠르디다. 그날 이 사진을 실은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Where is the humanity?”



쿠르디는 무장단체 IS의 탄압을 피해 소형 보트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다 보트가 전복되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이 사진 한 장이 주는 충격은 대단했다. 난민을 남의 나라 일로만 여긴 나조차 그게 뭔지 알아보고 속울음을 삼켜야 했으니까.


날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국내 난민 반대 분위기에 유엔 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 정우성도 나섰다. 지난달 26일 제주에서 열린 제13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난민 문제와 관련한 소신을 밝힌 것. 발언 중에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이거였다.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보다 난민의 인권을 우선시 하자는 게 아니라, 난민도 보호 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 하나의 인격체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의 인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라는 얘기인 거죠. 결코 어떤 것이 우선시 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생존권을 뺐어서 난민에게 주자는 게 아니에요. 나누자는 거지. 타인종·타민족·타종교를 배타적으로 대하면서 어떻게 우리 아이에게 ‘너는 세상을 사랑해라’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너는 세상의 모든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어’라고 우리 아이들에게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해나 관점의 폭을 조금 더 확장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나누자는 겁니다"라는 말에 공감했다.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있기 전, 한반도는 전쟁 위기설에 시달렸다. 지금이야 분위기가 정반대로 달라졌지만, 다른 상황으로 번질 수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한때 난민이었고,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난민이 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놀랍게도 그걸 5학년인 내 아이도 알고 있었다.


“진아(가명), 지금 제주도에 예멘 난민 500여명이 있대. 우리가 제주도 여행 갔을 때 같이 있었던 거야. 엄마도 몰랐네. 근데 너 난민이 뭔지 아니?”
“전쟁 나고 그러면 자기네 나라를 피해서 도망 온 사람들 말하는 거 아냐?”
“잘 알고 있네. 근데 우리 국민 중 일부는 난민을 받지 말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나 봐.”
“왜?”
“안전상의 문제도 있고, 일자리 문제도 나오고.”
“근데 엄마, 우리도 난민이었잖아. 6.25 한국전쟁 났을 때 우리도 다른 나라에 가지 않았어?”
“응? 어, 그랬지. 그랬겠지.”
“그런데 그러면 안 되지 않아? 우리도 도움받았는데, 도와야 할 것 같은데....”

대화를 나누며 안도했다. 아이가 사람들이 돕고 나누는 게 뭔지 조금은 아는 것 같아서. 그리고 며칠 후 한 출판사에서 제작한 난민 관련 동영상을 함께 더 봤다. 딸이 얼굴을 미세하게 찡그렸다. 슬프다며. 그러면서 말했다.

“엄마, 우리 집에 난민 책 있잖아. 나 그거 다 봤어.”
“무슨 소리야? 우리 집에 그런 책이 있어?”

있었다. 그것도 바로 내 눈 앞에. 세계시민 수업 1 <난민>(박진숙 글, 풀빛) 편이 책꽂이에 떡 하니 꽂혀 있었다. 책 뒷면에도 ‘나도 난민이 될 수 있다고? 난민에 대한 생각을 바꿔주는 난민 이야기’라고 굵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내가 아이에게 가르쳐 주려던 것을 외려 새로 배우게 됐다.


‘난민 수업’의 형태로 시작하며 끝맺는 구성으로 진행되는 이 책에는 쿠르디 이야기도 나온다. 쿠르디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가족을 두고 콩고를 떠나온 대한민국 최초의 난민 교수 윰비 교수, 나라를 빼앗긴 티베트 난민 아이들,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버마 난민들 등 다양한 난민들이 등장한다. 또 대한민국에 있는 난민들이 실제 어떤 어려움을 겪으며,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보여준다. 그들을 돕고 있는 사람들과 돕는 방법도 소개한다.

이 가운데 내 눈길을 끄는 소제목이 하나 있었다. '그들이 한국을 선택한 게 아니다'라는 문장. 2009년부터 난민 여성들과 함께 ‘에코팜므’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저자 박진숙씨는 책에서 말한다.

“사람들은 흔히 난민들이 왜 한국을 선택했나요?라고 물어봅니다. 난민들이 자기 발로 찾아오기는 했지만, 스스로 한국을 선택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좀 어리둥절하죠? 그럼 누가 선택했다는 말일까요? 보통은 다급한 상황에서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비자 만드는 것을 도와주는데, 그 당시에 비자가 빨리 나오는 나라 가운데 아무 나라나 고르는 것이지요. 어떤 난민 아저씨는 우리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고 해요. 오히려 뉴스에서 북한 이야기를 많이 봐서, 한국에 간다고 했을 때 당연히 북한에 가는 줄 알았다고 하는군요. 참 웃지 못할 이야기지요?”

책에서는 '난민을 손님'이라 표현했다. 배우 정우성의 발언이 다시 한번 오버랩된다. 제주포럼에서 '대부분의 난민들은 제3국에 정착하길 희망한다?'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아닙니다. 이분들이 경제적 목적으로 이주하는 이주민들이 아니기 때문에 갑작스런 위기를 맞아서 조국을 떠나야 되는 상황 속에 있는 분들이라서... 모든 캠프에서 만난 난민은 결국 최종의 꿈은 고국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평화를 찾은 고국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삶을 다시 되찾고 그 안에서 자식들의 교육과 자기 삶의 안정을 찾는그런 꿈을 꾸고 계십니다."


요즘은 초등학교에서도 ‘민주시민이 되는 법’을 배운다. 생각보다 자주 구체적으로 배운다. 부모인 나보다 어쩌면 더 많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배운 것과 현실은 다르다고 말해줄 건가. 정우성 말대로, 타인종·타민족·타종교를 배타적으로 대하면서 어떻게 우리 아이에게 ‘너는 세상을 사랑해라’라고 말할 수 있겠나. 그런 말을 할 용기 있는 부모는 많지 않을 거다.


아이들에게 좀 더 넓은 시각을 보여주고 싶다면 ‘난민에 대해 폭넓게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이 책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겠다. 무엇보다 정말 알기 쉽게 썼다. 내전과 전쟁이 하루 속히 끝나 난민들의 바람대로 '평화로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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