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화목수저

가족들끼리 화목하고 재밌는 사람들은 좀 많이 부러워

by 박다은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 사회경제적 계층을 '수저'로 표현하던 인터넷 유행이 논문으로, 사회 이론으로 해석되어 나오던 때가 있었다. 여전히 그런 '밈'은 유효한데, 자본주의든 신자유주의든 여러 영향을 받는 입장에서 금수저와 다이아몬드수저 등 여러 상급(?) 수저들이 부러운 것은 온 세상 사람들이 동의할 테니 말이다. 근데 나는 금수저도 부럽지만, 특히 화목수저가 너무너무 부럽다. 웃수저들도 부럽긴 한데,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보통 가족이 화목한 사람들이 웃수저인 경우가 많아서 결국 화목수저들을 더욱 부러워하는 것 같다. 화목수저들은 기본적으로 좀 어떤 선택이나 행동을 할 때 자신감도 있고, 무엇보다 마음이 좀 평안한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리고 가족들끼리 연락도 많이 하고 친밀함을 나누고 안부를 전하는 일도 상당히 잦은 것 같고. 대체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거나 아니면 조금 어려운 일이 있었어도 가족끼리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되어 현명하게 잘 대처했거나 이런 식의 양상을 보이는 것 같다. 들어보면 엄청 대단한 드라마 같은 에피소드는 아니고 어느 가족이나 한 번쯤 있을 일인데, 그런 과정에서 행복이나 화목함, 이런 무언가를 서로의 마음속에 쌓아가는 사람들이 진짜 단단해 보이고 튼튼해 보이고 강해 보이고 그런 것 같다.


누군가가 우리 가족이 불행했었는지 물어보면 그냥 '평균정도의 불행과 힘듦'이었다고 대답할 것 같은데, 행복했었는지를 물어본다면 '그런 적은 딱히 없었다.'라고 대답할 것 같다. 엄청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행복한 적도 없는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행복'이라든지 '가족의 화목'을 어떻게 쌓아가는지도 몰랐고 가족 구성원 그 누구도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도 없고 또 누군가 그런 노력을 했더라도 그걸 알아차리는 사람도 딱히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가족 구성원들이 2명이든, 3명이든, 10명이든. 그 행복과 추억을 화목함으로 만들어가는 무언가가 있는 가족이 너무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갑자기 이런 글을 쓰는 건 아무래도, 방금 밥을 먹으면서 어떤 연예인이 나오는 방송을 봤기 때문인 것 같다. 유명한 분이라 인터뷰나 방송을 몇 번 봤었는데, 짐작하기로는 그의 엄마는 우리 엄마와 화법이 좀 비슷한 편이다. 뭐랄까. 매우 극단적인 표현으로 이것이 조언인지 저주인지 분간하기 힘든 말을 걱정이라면서 속사포처럼 내뱉는다. (패널들도 들으면서 웃을 수 없고 놀라는 정도의 수준) 우리 엄마도 진짜 비슷한 화법을 구사하는 사람인데, 나는 어릴 때부터 매우 우울했고, 때론 음침했고, 어느 순간에는 억울함에 휩싸여 살았고, 사회를 원망했고, 분노가 가득 차서 살았는데.. 반대로 그 연예인은 늘 밝고 활기차고 또 매 순간 즐거운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어떤 말투,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지 보다 그 말투 뒤에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서로에게 용인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그 연예인을 잘 모르니까, 어쩌면 그 연예인도 나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엄마와의 관계로 오랜 시간 숨죽여 상담을 받고 유명세 때문에 티도 못 내고 남모를 아픔을 감내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문득 부럽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오로지 나의 감정이며 나의 판단이고 나의 부러움이다. 그렇다. 오로지 내가 추측하는 부러움이다.


화목함을 기반으로 하는 것, 가난해도 행복한 것, 이런 모습들도 어쩌면 '드라마가 만든 환상'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현실에서 화목하다는 것은 가난이라는 변수 앞에 늘 위태롭고, 인간은 생존의 문제가 제일 우선이라서 행복보다는 돈을 선택할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으니까. 그렇지만 인간의 본능은 자본의 논리와 다르게 일확천금보다 사랑이나 평화를 택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화목수저를 더욱더 부러워하게 된 것 같다. 일생을 그런 비논리, 비자본의 영역에서 살아온 삶이 부럽고 세상보다 더 혹독한 '집'에서 자라온 나의 불안과 초조함을 화목수저들은 영원히 모를 것이란 생각에 또 부럽고, 우리 가족과 부모님을 조금 원망하게 되기도 한다.


근데 요즘에 sns를 하다 보면, 나랑 비슷한 이 부러움을 조금 돌려서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화목수저가 아니라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내 기준에는 화목수저 같은 사람들을 뜻하는 것 같은데 "사랑받고 자란 사람"으로 정의하고 그들의 자존감과 평온한 성격을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솔직히 나도 너무너무 그들이 부럽긴 하지만, 부러운 건 부러운 거다. 그렇게 키워주지 않은 우리 부모님 원망도 조금 해도 괜찮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무탈히 자라온 나'를 너무 내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도, 나도.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자란 티는 안 나지만, '나 마저 외면한 나'는 정말 너무 불쌍하니까. 내가 받고 싶었던 사랑을 나에게 주는 사람이 되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나'를 키워가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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