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시청 후기 - 24년 6월에 썼던 글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애써 외면했던 '정신 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게 되었다. 수다가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껐지만 집에 와서도 계속 생각이 나서 큰 마음을 먹고 드라마를 봤고, 어제 새벽에 결말을 보았다.
첫 에피소드로 나온 조울증환자는 엄마의 양육방식이 조금 특이해서 발병된 것으로 나왔는데, 우리 엄마 양육방식과 비교하면 순한 맛이라 "저 정도로도 병에 걸릴 수 있는 거구나, 나는 참 대단히 아픈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많이 울었다. 드라마니까 짧게 '포도 에피소드'만 재현되었겠지만 그 에피소드 하나만 보는데도 숨이 막혔다. "내가 널 낳았는데 내가 더 잘 알지!"라는 말이 아직도 귀에 맴도는 것 같고 드라마 속 환자가 좋은 대학에 진학한 엘리트였다는 것과 판사와 결혼했다는 설정을 보면서, 설정은 설정이고 상징으로 봐야 함을 알지만 '어차피 아플 거면 나도 그렇게 대단한 삶을 살아보고 아팠으면 좋았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드라마에서는 "그런 대단하고 좋은 사람이 왜 아파?"라고 묻는 편견의 벽이 환자들을 더 힘들게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았는데,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슬픔의 무게를 타인과 비교하고 있던 것 같아 반성하게 되었고 또 그렇게 슬픔마저 비교해서 무엇하나 싶은 마음이 들어 울컥하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나는 조울증은 아니었고, 2회 사회불안장애 케이스로 나온 김성식 씨와 좀 더 비슷했다. 나 역시 상사의 폭언으로 발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그저 발견되었을 뿐, 기저에는 깊을 우울증이 있어 단기간에 치료되기는 어렵다고 했다. 우울증이라는 병이 어떤 무언가와 결속되고 나면 치료가 쉽지 않은 듯했다. (질병 간 결속을 공존질환이라고 하는 것 같다.) 에피소드 중에 김성식 씨가 반려동물 '후크선장'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부분이 있었는데, 나 역시 오숑이 가 그런 집착의 대상이었던 것 같았고 그런 오숑이 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내가 겪었던 아픔을 상상해 보니까 나 자신이 참 대견하고 불쌍해 보였다. 성식 씨 에피소드는 오히려 비교보다 내 아픔을 직면하게 했던 것 같다. 내가 성식 씨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쩌면 나는 아마도 나는, 평생 오숑이를 바라보던 내 아픔과 상실에 대한 슬픔을 직면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뭔가, 타자화되는 느낌도 지우기 힘들었다. '우리는 정상인, 환자는 환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특히 3회에서 공황장애를 다루면서 정신과 의료진들이 '빨 때로 숨을 쉬어보는' 에피소드가 좀 당황스럽고 불편했다. 나에겐 일상인데 누군가는 그렇게 '체험을 해봐야 아는 일이구나.' 싶어서 부럽기도 했고 또 그렇게 해봤노라 아는 척할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나빴다. 그냥 이건 자기 연민 같은 것인데, 다른 사람들은 이런 것을 겪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이 이상하게 뭔가 기분이 나쁠 때가 있다. 나에겐 너무 불편한 일상인데 이렇게 책으로만 배운 내용으로 의료진들은 이렇다 저렇다 내 상태를 체크하고 또 나을 수 있다고 말할 거라 생각하니 조금 불쾌했던 것 같다. "너무 힘들겠네요."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묘하게 이질감도 들고, 아무튼 드라마에서도 그렇게 나오니까 (당연함. 현실이니까) 진료를 받으면서 느꼈던 묘한 불쾌감이 올라왔던 것 같다.
그 외에 가성치매로 입원한 워킹맘의 이야기(5화) 등 여러 캐릭터들이 모두 인상 깊었지만, 나의 최애 캐릭터는 역시 '서완님'이다. 너무 내 인생 같아서 더욱 이입이 된 것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공부를 수년째 하고 있고 여기나 저기나 나를 인재로 생각하는 필드는 없고, 그렇다면 차라리 하던 공부를 계속하는 게 경제적이고 효율적일 것 같은데 그 마저도 녹록지 않은 느낌. 그 느낌 너무 알 것 같아서 말이다. 그리고 나도 작년부터 조금씩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한 터라 서완씨가 퇴원하고 느낀 후회와 회환 같은 것을 나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감정적으로 이입되었던 것 같다. 굳이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서완님은 망상이고 나는 공상과 회피다. 서완님은 힘든 치료를 이겨냈지만, 여전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했다. 나도 서완님이 느꼈을 그 기분을 지금 거의 매일 느낀다. 기분이 좋을 땐, 좋아서. 나쁠 땐, 나빠서 후회를 한다. 질병을 이겨낸 나 자신이 자랑스러운 적은 사실 한 순간도 없다. 친구들과의 따뜻한 하루가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에 나는 "이 행복이, 내가 그렇게 아팠어야 겨우 느낄 수 있는 거였나?"싶은 억울한 감정이 올라온다. 그리고 여전한 현실에서 나는 "왜 그렇게 오래 몇 년이나 아팠던 거지?"라는 후회가 올라온다. 드라마 속 인물들처럼 1년 정도 푹 쉬고 상담받고 가족들과 친구들의 지지를 받았다면 적당히 좋았을 텐데, 현실의 나는 너무 오래 누워있던 것 같아서 너무 억울하고 속상하고 또 자책과 후회가 몰려온다. 그런 안 좋은 감정이 나를 사로잡으면 공황발작 같은 증세가 나오는데 그러면 또 "나 다시 아파지면 이젠 진짜 어떻게 하지? 진짜 인생 끝인데"라는 생각에 또 하염없이 운다. 그래서일까. 서완씨의 마음과 서완씨의 결정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서완씨가 너무 그립고. 또 아깝다.
작년 여름즈음, 이 드라마를 봤을 때 나는 "나의 미래도 꼭 서완씨의 결말과 같을 것 같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고 무서웠다. 그렇게 두려워하다가 겨울이 왔는데, 겨울즈음부터는 "내가 서완씨를 아깝고 또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누군가도 나에게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죽음이 아깝고 인생이 아깝다고 생각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내 생각에 내가 놀랬는데, 막연히 흙으로 돌아갈 나의 미래가 두려운 마음보다 그런 나의 선택에 영향을 받을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이게 낫는 과정인가? 싶기도 하지만 처음 해보는 생각에 너무 어색해서 당장의 마음을 적어두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