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갑자기 떠오른, 나의 삶에 대한, 어떤 큰 그림 아니 밑그림 같은 것.

by 박다은

우울증이 많이 나아져서 그런가? 요즘에 자꾸 미래를 그려보게 된다. (너무 신기해서 조증이 생긴 것인지 의심의 기간을 가졌다.) 앞 일은 잘 모르겠고, "일단 졸업!"을 외치면서 겨우 살아오던 나에게, 조금씩 무언가가 생기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막연히 미래가 생긴 것도 신기하지만. 미래가 생기다 보니까 '지금은 어쩔 수 없지. 첫 시작이니까 이 정도도 괜찮지. 나중엔 더 나아지겠지.'라는 마음도 생기는 것 같아 지금에 만족하고 현재에 충실하게 되는 것 같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울증을 앓으면서 '현재에 충실하는 법'을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나의 역사를 이해하고 또 외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내가 만들어갈 미래까지 이해해야 '현재에 충실함'이 가능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ADHD와 우울증을 앓으면서 살아온 나의 과거를 통해 나는 (내 기준) 많은 말실수를 했고, 그 실수들이 마치 큰 파도가 되어 나를 덮칠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말실수' 하나로 그렇게 인생이 소용돌이 칠만큼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것도 아니고, 또 나의 실수들을 계속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과하면 될 일이라고 나를 다잡는다. 막연한 두려움을 인지적인 사고를 통해 현실적으로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말실수를 다시 재고하면,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할만한 그저 그런 말실수들이 더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또 스무 살 남짓부터 시작된 은둔생활 덕분인지, 타인을 만나는 일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내가 말실수로 인생이 망할 것 같다면서 모든 인생을 비관할 것도 아닌 것 같다고 스스로를 다잡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누군가에게 실수를 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진정으로 사과하면 되는 것이다. 사과에는 분명 골든타임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솔되게 사과할 의향이 있고 또 내가 국회의원을 꿈꾸는 것도 국민배우나 아이돌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닌데, 구태여 지난날의 실수들을 자꾸 곱씹는 것도 불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거의 매주 일어나기 때문에 스스로를 다독거리면서 살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나의 병환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돌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는 중이다.


그러다 문득, 나는 왜 이런 고민을 할까? 왜 나는, 이런 과거의 실수들이 나의 미래를 삼켜버릴까 두려운 것인가? 무엇을 꿈꾸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을 조금 정리해 보니, 옛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괜찮은 어른이 되는 것'을 꿈꾸는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은 것이 아니라 '나이테'가 선명한 좋은 어른이고 싶은 것 같다. 젊은 세대에게 용기를, 동년배에게는 공감을, 선배 세대에게는 존경을 나눠주는 사람이고 싶고, 그 수단은 '강의'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동안 내가 해온 말실수를 걱정하면서도, 또 수단을 '말'로 삼았다는 것에 당황스럽고 그래서 '말실수'를 많이 걱정했구나 싶어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다. 또 '글'보다 '강의'를 원한다는 나의 욕구를 발견하고 너무 놀랐다. 꽤 오랜 시간 나는 '글'의 매력에 빠져 글을 탐닉하고 또 쓰는 일을 즐겁게 여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강의'와 '말'로 나를 드러내고 싶다니 어색한 마음이 들어서 혹여나 '내가 조증인가?'라고 의심하게 된 것 같다. 그러나 강의든 글이든 어떤 방식이든 나의 코어는 연구 논문이고,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에 있다. 만연한 사회문제를 명확하게 분석하고 해결방식을 제안하는 것에 글과 강의 모두 나의 수단이 되었으면 좋겠다. 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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