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회복과정 중에 제일 힘든 시간: 과거에 대한 후회 속으로
우울증이 많이 심했을 때는, 뇌에 안개가 자욱한 느낌이라 (실제로 브레인포그라고 함)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단순하게 당근을 사는 것과 감자를 사는 것도 1개를 사야 할지 2개를 사야 할지 5분 이상 고민해야 했고, 내가 무슨 요리를 하려고 했는지 다시 메모장을 본 뒤에야 둘 다 장바구니에 넣었다. 어떤 마트가 얼마나 싸고 저렴한지 비교할 수 없었고 그저 "자살하지 않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내 모든 감각을 차단하거나 회유하거나 분산하면서 시간이 빠르게 흐르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우울증이 꽤 나아지면 그저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전체적으로 세상이 조금 투명해지고 뇌가 또렷한 느낌일 뿐 다른 것들을 큰 차이가 없다. 그중에서 나를 제일 힘들게 한 것은 '과거의 어느 한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언제로 돌아가고 싶나요?"라고 물어보면 또다시 세월을 견디는 것이 두려워 "없습니다. 후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오래 산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네요."라고 대답하곤 했는데, 우울증이 나아지면서 자꾸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중학교 시절에 뭐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처를 생각한다면, 초등학교로 돌아가서 여러 학교폭력과 거리를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굳이 중학교 1학년으로 돌아가서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 외고에 진학하고 싶고, 가능하면 명문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하여 변호사가 되든 검사가 되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 의욕이 생기는 건 정말 좋은 징후다. 적어도 우울증 환자에게 '의욕'이 생긴다는 것은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실현 불가능한 일'을 꿈꾸는 것은 순식간에 후회와 한탄을 가져오고 '이상적인 삶'과 현실의 괴리에 더 큰 낙차감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의욕이 생기는 시간이 종종 찾아오면, 너무 힘든 것 같다.
로스쿨에 진학하는 것은 여러 방면으로 고민한 뒤 철회한 선택이다. 그저 '학교를 다시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제일 컸고 석사든 대학원이든 그냥 얼른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시험을 또 본다는 것도 꽤나 스트레스로 느껴졌다. '나이'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로스쿨의 '과정'을 너무나 하고 싶지 않고 감내하고 싶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취직을 위한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으로 나름 절충안을 만들었는데 갑자기 또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것이다. 중1에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계속 생각하다 보니 '엄마의 명예퇴직'이 떠올랐다. 그래. 나는 과거로 돌아가서 엄마의 퇴직을 막고 싶은 것 같다. 법대나 명문대에 미련이 있는 것은 아니구나. 나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게 되면서 또 한 번 나를 보듬어 준다.
엄마는 나를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괴롭혔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그저 평범한 '가족'이길 바랐는데, 엄마는 나를 마치 '다시 사는 인생'으로 여겼다. 정말 사소한 것도 확대해석하면서 '앞으로 네가 이런저런 일을 할 때도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라며 윽박질렀다. 젓가락질 같은 기본 예의 수준이 아니어도 나는 늘 '큰길'로 다녀야 했다. '군자대로행'이라면서 절대 길을 가로질러가지 못하게 했다. 엄마 아빠 동생은 길을 가로질러 집에 갔는데 나는 큰길로 돌아 돌아 집에 가야 했고 어둑한 시간이라 조금 무서웠던 기억도 난다. 간식 먹은 설거지를 해놓으면 "내 딸에게 설거지를 시키고 싶지 않다!"라며 소리 지르고, 설거지를 안 하면 "넌 피곤한 엄마 생각은 안 하니?"라며 화를 냈다. 그러던 엄마가 명예퇴직을 선택하면서 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면, 최소한 나는 우리 사이가 좀 좋아질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 엄마의 퇴직을 반겼고, 나는 평범한 가족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사이는 더욱 심각해졌다. 엄마는 "퇴직까지 했는데, 너는 이 정도밖에 못해주냐."라면서 하루하루 피를 말렸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엄마는 우울증인 것 같았는데, 그 모든 집착을 나에게 쏟았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데 차로 등하교를 시키고 숙제 검사를 하고, 쪽지시험부터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행평가까지 마치 내 점수가 자신의 점수인양 사람을 들들 볶았다. 그 무렵 나는 공부에 재미를 느끼기도 했는데, 재밌다고 말하는 순간 문제집이 늘어나거나 과외가 시작되어 이내 무기력해졌다. 그냥 그 어떤 감정도 엄마에게 말하지 않고 숨기는 것이 더 편했다. 근데 그렇게 하면 숨긴다, 거짓말한다 등등의 말이 돌아오니 실제로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렇게 살다가 처음으로 자살 시도를 했던 것 같다. 나 자신이 너무 무서워서 엄마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엄마는 "그까짓 것도 못할 인생이면서 울지 마라."라고 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은 그렇게 닫혀버렸고, 그 이후로 엄마에게 아빠에게 마음을 기대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에게 바라는 것은 "날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것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는 시간을 지나 나는 결혼을 했고, 이혼을 했고, 독립을 했고, 다시 본가로 들어왔다. 다시 돌아온 집에서 나는 여전히 변함없는 엄마를 보면서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 결코 이해하지 못할 사람. 나를 평생 괴롭힌 사람.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는 사람. 그러나 이미 어른이 된 나는 예전처럼 무기력해지지 않고 상처를 받아도 다시 털고 일어난다. 엄마보다 더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되어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주기도 한다. 위로를 전하기도 하고, 의지하려고 다가오는 엄마에게 선을 긋기도 한다. 나의 아량은 여기까지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고 그러나 가족으로서 딸로서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용서는 못하고 이해는 할 수 있다는 담담한 진심을 전하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는 오늘, 나는 슬슬 이사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년여간, 엄마 아빠와 다시 살면서 지난날들을 이해하고 상처를 회복하게 된 부분도 있다. 그리고 어른이기에 다른 대처를 해보기도 하고, 그런 시간들을 통해 우리 사이가 조금 나아졌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분리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이번엔 도망이 아니라 정말 '분리'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