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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da kim Jan 15. 2020

시와 나 사이 요조가 있다

<릿터> 19호 커버스토리 요조의 글을 읽고


주간다다 두번째 : 2019년 8월 18-25일


‘누가 시를 읽는가’ 라는 커버스토리와 반갑고 부러운 이름들(김겨울, 김하나, 요조, 이슬아—그들의 SNS나 채널을 구독하고 있다. 다들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한다. 뺏고 싶은 재능들이다.)에 이끌려 구매했다. 당연히 끝내주게 글을 잘 썼을 거야. 그러면 나도 그들에 설득당해 시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어림도 없었다. 시는 그렇게 싹싹한 장르가 아니었다. 일주일 간 커버스토리를 두 번 읽을 동안 침대 선반에 놓인 오렌지색 시집을 펼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은 산 지 반 년이 넘었으나 한 번도 펼친 적 없다. 그토록 눈에 띄는 색인데도.

왜 시는 좋아지지 않을까? 왜 나는 온갖 컨텐츠를 덕질하면서 시집은 표지조차 펼치지 않을까? 간단하다. 재미가 없어서. 달리 말하면 시 읽는 재미를 못 찾겠어서. 재미를 찾기 위한 노력조차 들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시가 어려워서.

릿터 19호를 산 건 시를 좋아할 계기를 찾기 위해서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 시가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읽다 만 책 서너 권이 떠올랐으나 릿터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고 그렇게 읽을 책을 더 늘리고 말았다. 귀가길 지하철에서 커버 스토리를 읽었다. 시 읽는 사람 12인의 각기 다른 이유. 안타깝게도 시가 단지 재미있어서 읽는 필자는 한 명도 없는 것 같다. 시가 필요해서, 시가 곧장 나에게 다가와서(너 지금 사람 차별하니? 시에게 묻고 싶었다), 시만의 감동을 느낄수 있어서,... 12편 모두 재미있게 읽었으나 ‘시 읽는 재미’ 의 실마리를 찾으려던 목적은 이루지 못했다.

요조의 글만이 유일하게 내게 희망이 되어 주었다. 그는 내게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을 알려주었다. 시집을 실용 서적처럼 대한다. 음악가인 그는 노랫말을 쓰기 위해 시집을 경영 서적처럼 탐독한다고 한다. 실용서적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듯 시집에서 작사에 도움이 될법한 표현을 수집한다. 모르는 단어를 연필로 체크해가며 거듭 복습하다 보면 마침내 노랫말로 빚어진다는 것이다. 찾았다. 시와 가까워질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 목적을 바꾸는 것이다. 재미가 아닌 수집으로! 왜냐면 난 글을 잘 쓰고 싶으니까. 그러기 위해선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 좋은 글 사이사이에 스타일리쉬한 문장을 턱턱 꽂아넣고 싶으니까. 그렇다면 시만큼 유용한 장르가 어디 있단 말인가? 어제 구경갔던 대형 서점의 시 코너가 떠오른다. 세상에 이렇게 짧고 가볍고 저렴하기까지 한 실용 서적이 수도 없이 널려 있었다니. 깨달음을 얻었다. 요조에게 감사의 절을 올리고 인터넷 서점에 뛰어들어가 장바구니에 시집 백 권을 채우고 싶다.

물론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다. 마음과 실천은 백억 광년 떨어져 있어서, 또 마음은 글로 부풀리고 과장할 수 있으므로 내가 장바구니를 온통 시집으로 채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쩌다 요조와 마주친다 해도 큰 절을 올리지도 않겠지. 시는 그의 말마따나 ‘언제나 어렵고’, 그러니 접근법을 찾은 것과 진짜 접근하는 행위는 백억 광년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시집은 여전히 선뜻 펼치기 어려워서 내가 어떤 시인의 책을 처음으로 산다면 그것은 산문집일 확률이 훨씬 높다.

그러나 요조 님, 고마운 마음은 진짜랍니다. 시가 어렵다고 고백해 주어서 고마워요. 이렇게 대단한 사람에게도 (팟캐스트 진행도 잘하고 글도 잘 써, 어찌 대단하지 않을 수 있나요?) 시는 어렵구나, 유치하지만 위안을 받을 수 있었어요. 시가 언제나 어렵다는 제목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어요. 시집을 실용 서적이라고 정의해주어 고마워요. 이걸 기억하고 있는 한 언젠가는,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망설임 없이 영한 사전 사이트를 찾듯 글쓰기가 막힐 때마다 가볍게 시집을 펼칠 수 있겠죠. 그렇게 시집의 무게만큼이나 시라는 장르를 대하는 마음도 가벼워 질 수 있겠죠. 당신은 내게 시와 가까워질 수 있다고,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 주었어요. 고맙습니다.




#주간다다

매주(과연?) 가장 인상적인 컨텐츠를 기록합니다. 인스타그램(@spaceandtime_)에서 2019년 여름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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