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보이>를 보고
#주간다다 34번째 : 2020년 5월 마지막주
- 영화 <톰보이>를 보고
금요일 저녁, 셀린 시아마의 영화 <톰보이>(2011)를 두번째로 봤다. 첫 관람은 다소 힘들었다. 나는 오프닝 씬부터 너무 긴장해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영화는 열살 아이 로르가 아빠와 함께 새로운 동네로 이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운전석 위 아빠의 무릎에 앉아 거침없이 핸들을 돌리는 아이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저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돌이켜 보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주인공 버프’ 란게 있으니까. 등장하자마자 죽을 리가.
제목 <톰보이>는 당연히 로르를 가리킨다. 그는 짧은 머리에 반바지를 고수하는 여자아이다. 여름방학 막바지, 새로운 동네에서 처음 만난 친구 리사가 묻는다. “이름이 뭐야?” 그런데 이 질문은 남성형이다. 리사의 눈에 로르는 남자아이였던 것. 로르는 이에 부응하여 ‘미카엘’ 이라고 대답한다. 흔한 남자 이름이다.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지 그의 진짜 이름을 아는 건 관객 밖에 없게 되었다. 관객은 로르에게 빠르게 이입한다. 들키면 안 되는데. 상처받으면 안 되는데.
물론 비밀은 얼마 가지 않아 드러난다. 어쩔 도리 없이 로르는 상처를 받는다. ‘네가 여자인 게 사실이야?’ 동네 친구들이 로르를 둘러싸고 추궁하는 장면은 폭력적이다. 그러나 셀린 시아마는 로르가 그대로 새학기를 맞이하도록 방치하지 않는다. 리사는 로르를 찾아와 다시 묻는다. ‘그래서 네 이름이 뭐야?’ 이번엔 남성형이 아니다. 로르는 대답한다. ‘난 로르야.’ 그가 씩 웃음과 동시에 엔딩크레딧이 올라온다.
결말을 알고 있기에 두 번째 관람은 아주 편했다. 오프닝 씬이 다르게 보였다. 로르의 등 뒤에는 아빠가 있다. 아빠와 로르는 핸들을 같이 잡는다. 그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 어른이 함께하는 것이다. 언제 들킬지 몰라 조마조마했던 장면들도 새롭게 보였다. 웃통을 벗고 남자아이들과 축구를 하는 씬, 로르와 리사의 키스, 직접 리폼한 삼각 수영복을 입고 물놀이를 즐기는 로르. 이름만 바꾸었을 뿐, 로르는 본래 몸 그대로 더 자유롭게, 멀리 뻗어나간다.
로르가 죽지 않은 것은 물론 그가 주인공이어서도 있지만, 감독이 셀린 시아마여서 그런 것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봐서 안다. 시아마는 인물이 성장하게 하지 그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5월 25일부터 31일까지
1. 책
<아무튼, 메모> 완독
<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저, 창비) 완독. 정세랑 책은 일단 재밌고.. 재밌고 ㅠㅠ 휘발되기 쉬운 순간을 기가 막히게 잘 포착한다.
2. 음반
백현 <Delight> - 'Bungee' 는 미친곡
W <Where the Story Ends> 가 약 15년 묵었음에도 여전히 좋다는 데 감동.. 그래도 '소년세계'는 '소녀세계'로 바꾸고 싶다. 가사는 그대로 하고.
3. 영화
<톰보이> + 이민경 작가 & 장성란 칼럼니스트(진행) GV 2회차. 조마조마했던 첫번째 관람도 좋았지만 이번이 더 좋았다.
4. 팟캐스트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 41화 이민경 작가 편. '지각비언 줄세우기' 농담관계와 회피관계. 농담함으로써 협상하라니 ㅠㅠ 넘 나에게 필요한 메세지였음
#주간다다
매주 본 컨텐츠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을 기록합니다. 인스타그램(@spaceandtime_)에서 2019년 여름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