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 포스터, <모리스>를 읽고
#주간다다 35번째 : 2020년 6월 첫째주
- E.M. 포스터, <모리스>를 읽고
명작은 계절을 안 가리겠지만 그래도 여름과 무척 어울리는 작품이 있다. 내게는 <모리스>가 그렇다. 처음 읽은 건 3년 전 여름. 인터넷을 떠돌다가 책에서 발췌한 ‘우리는 지옥으로 간다’ 라는 문장과 마주쳤다. 그 한 줄에 이끌려 땀을 뻘뻘 흘리며 도서관 언덕을 올랐다. 카페에서 열을 식히며 페이지를 넘겼던 기억, 손에서 놓을 수 없어 서너 정류장만큼 걸어가며 읽은 기억이 있다. 2년 전 여름엔 우연히 해방촌의 책방에서 중고책을 발견했다. 마침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만 같았다.
여름을 맞이하여 오랜만에 <모리스>를 다시 펼쳤다. 3년 전엔 클라이브를 싫어했다. 산산이 부서진 첫사랑. 모리스에게 상처만 주는 멍청이. 모리스를 사랑한다고 했으면서 어떻게 여자를 좋아한다 선언하지? 모리스와의 사랑은 허상이었던 말인가? 나는 그를 게이라고 여겼고, 가장 확실한 결별을 선언하기 위해 여자를 이용한 것 같았다. 모리스를 심연에 던져두고 ‘정상’의 세계로 홀랑 도망치는 비열한 남자. 카페에서 열이 식은 건 에어컨 바람 덕분일까 클라이브의 비열함 때문일까.
지금은 비열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비겁하다고 여긴다. 클라이브가 제일 사랑하는 것은 ‘정상의 세계’이다. 그는 여성도 남성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읽으면서 내가 그의 성 정체성을 이분법적 인식에 의해 섣불리 단정지은 건 아닐까 의심했는데, 책을 덮고 나니 그가 이성애자인지 디나이얼 게이인지는 별로 중요한 것 같지도 않다. 그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정상성’이 주는 안락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리스는 그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해야 했던 것이다. 클라이브와 있으면 모리스는 영원한 타자가 될 뿐이므로.
6월 1일부터 7일까지
1. 책
<어느날 갑자기 책방을> 완독
<모리스> 읽는 중
여름은 모리스의 계절~ 처음 읽었을 땐 클라이브가 멍청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기본적?인 의견은 똑같지만 ㅋㅋ 그래도 모리스처럼 시간이 걸려도 자기 욕망을 똑바로 알아보는 건 정말 드문 일이라고는 생각한다. 클라이브가 왜 그렇게 멍청한지... 이해할 여지는 있다는 말.
2. 음악
들을 앨범 없어서 돌아버리는 줄. 결국 꿍쳐둔(? 별로 듣고싶지 않았다) 1975 신보 <Notes On A Conditional Form>을 일요일에 라이딩하며 들었다. 진짜... 올곧다 ㅋㅋ 뚝심있는 자기복제에 힙합 한방울 떨어트림 ㅋㅋ
3. 넷플릭스
<우주의 전사 쉬라> 시즌 1 슬렁슬렁 보는 중
매주 본 컨텐츠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을 기록합니다. 인스타그램(@spaceandtime_)에서 2019년 여름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