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 왜 왔지?
지금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출국장으로 들어서자마자 당황스럽게도 눈물이 계속 나왔다. 코를 훌쩍이며 공항 직원에게 여권과 항공권을 내미는 스스로가 웃기고 이상했다. 원해서 직접 선택한 길에 오르는데 왜 울고 있는 거지?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입국 둘째 날이자 자가격리 첫 날. 새벽, 고요함에 눈을 떴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 시간에 일어난다는 것, 알람 없어도 뇌과 완벽히 작동한다는 것은. 평소에는 반복 설정한 알람을 10번을 듣고 나서야 겨우 일어났는데 말이다. 잠결에 엄마가 청소기를 돌리는 소리나 아침마당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정말로 이상했다.
몇 시간 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어쨌든 임시 숙소에 머무는 동안 집을 구해야 했다. 온라인에는 수백 개의 매물이 올라와 있었다. 런던에 빈 방이 어찌나 많은지 스크롤 바를 내려도 끝이 없었다. 아래로 끄는 손가락을 따라 끝없이 잠수하는 기분이었다. 숙소는 여전히 조용했다. 고요함이라는 압력에 질식할 것 같았다. 며칠 간은 일어나서 잠이 들 때까지 사람 목소리가 나오는 건 무엇이든 틀어놓았다. 야구 중계, 라디오, 유튜브… 한 톨의 적막함도 삼킬 수 없었다.
늦은 오후 트위터에 들어갔다. 새로고침을 반복해도 새 트윗이 떠오르지 않았다. 가족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 불꺼진 집에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이 문장은 비유이기도 하지만 사실에 가까운 묘사이기도 하다. 한국 시각은 실제로 한밤 중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한창 북적북적할 시각에 고요한 트위터를 바라보는 기분은 정말 이상했다. 처음 겪는 자가격리는 내가 당장 잃은 것들을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가족과 친구를 지구 반대편에 두면서까지 올 필요가 있었을까?
한편으로 나는 인스타그램에 끊임 없이 일상을 전시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부럽다고 했다. 아마 내가 그들의 입장이었어도 그러했을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누군가의 런던 일상 블로그를 보며 부러워했듯이. 하지만 막상 부러움을 받는 입장이 되니, ‘대체 뭐가?’ 라는 생각이 불쑥 치솟았다. 그럼에도 전시를 멈추지 않았다. 바스락거리는 흰색 시트나 티끌 하나 없는 이케아 모던 그레이 데스크, 그 위에 놓인 루꼴라 샐러드와 아이스 커피 사진 같은 것을 아침저녁으로 찍어 올렸다. 런던에 온 목적이 오직 그것밖에 없는 것마냥 굴었다.
나는 왜 여기에 온 걸까? 내가 뭘 원했더라? 스스로의 욕망이라 생각했던 대부분의 것들이 허망하게도 손 안에서 빠져나갔다. 몇 년동안 자신있게 말했던 것들, 워홀을 가면 ‘런던 일상 브이로그’를 찍고 싶어요. 오피스잡에 도전하고 싶어요. 되도록이면 취업 비자도 얻고 싶어요… 그걸 얻으면 좋을까? 런던에 도착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심각하게 물었다. 오랫동안 내 욕망의 원천은 부러움이었다. 그것이 정말 내 것일까?
어떤 것은 그 땅 위에 발붙이고 서서야 감각할 수 있다. 인정했다. 지금 당장 내 욕망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사탕껍질에 지나지 않는다고. 아침마다 크롭 맨투맨과 레깅스를 입고 공원을 달리는 것, 벽 한 면이 낯선--한 번도 써본 적 없고 앞으로도 쓸 일이 없을 것 같은--소스통으로 꽉 찬 슈퍼마켓을 쇼핑하는 것 말이다. 그것들도 나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줄 것이다. 자가격리가 끝나고 실제로 공원을 누볐을 때는 정말로 끝내주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매주 일요일 저녁 가족과 고기를 구워먹는 일, 더위에 아랑곳않고 친구들과 몇 시간동안 대화를 나누는 일 같은 깊고 진한 즐거움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까?
아니다. ‘어떻게’ 이전에 와야 할 질문이 있다. 뭐 먹고 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