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 깁스를 풀고 쓴 글
깁스 4주차. 익숙하게 붕대를 풀고 엑스레이를 찍는다. 흑백의 뼈 사진을 보니 어긋났던 오른 손등 뼛조각이 다시 한줄로 주욱 이어져 있었다. 고개를 돌려 의사선생님을 쳐다봤다. 선생님은 이제 깁스를 풀어도 된다는 진단을 내렸다. "타자도 쳐도 돼요?" 물으니 양손으로 피아노 건반 치는 흉내를 내며 써도 된다고 대답한다. 오른손을 꾹꾹 눌러 만지거나 무거운 거로 누르지 말라고. 그것만 조심하라고.
진료비를 결제하고 보험금을 청구할 요량으로 그동안의 진료비 영수증을 발급받아 나왔다. 매주 내 붕대를 풀어주고 새것으로 교체해준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와 선생님의 몸이 가까워지는 순간 그는 나지막히 "안녕히 가세요" 라고 인사했다. 다음주부터 물리치료를 하러 또 와야 하지만, 지금은 저도, 안녕히 계세요!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요?”
“문 앞 오른쪽으로 가시면 있어요.”
곧장 화장실로 갔다. 오른손을 물에 적셨다. 봉인 해제된 손톱 세개가 카일리 제너의 손톱만큼 길어져 있었다. 손톱 긴 셀럽들 많을 텐데 왜 카일리 제너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지 의문이다. 양손을 깍지껴서 손가락 사이사이를 씻고, 여기저기 허옇게 뜬 각질을 밀어내고, 왼손도 씻었다. 휴지로 오른손을 닦는데 4주 동안 습기를 머금은 각질이 밀려나오길 멈추지 않아서 다시 세면대 앞에 섰다. 수도꼭지를 위로 올린다. 동작 반복. 한 손을 씻으려면 다른 쪽 손이 필요하다. 정말 깁스하면서 불가능했던 게 왼손 비누칠하기와 젓가락 쥐기였다. 아, 펜도 못 쥐었다. 한 손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많이 찾아냈지만, 그래서 깁스하고서도 살 수 있다는 걸 몸으로 깨달았지만 안되는 일의 영역에 있는 행위도 분명 있었고 안되는 건 안되는 거라고 몸에 새겨질 때마다 금새 피로해졌다.
건물을 나와 오른손목을 위아래로 굽혀가며 오른손을 계속 쳐다봤다. 탄천길의 수풀처럼 손가락 털이 무성히 자라 있다. 손가락 끝까지 혈색이 돈다. 깁스의 압박으로 피가 제대로 돌지 않아 누렇고 어둑했던 손가락 끝까지 피가 들어찬다. 하얗게 뜬 각질을 벗겨낸 곳에 드러난 맨살은 벌겋고 주름져있다. 안쪽 마디, 털이 자라난 부분은 오랫동안 햇빛을 받지 못해 하얘져 있었다.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오른손의 습기가 공기 중으로 날아갔다. 아직 남은 각질은 곤충의 허물처럼 순식간에 건조하고 딱딱해졌다.
나는 탈깁스를 자축하기 위해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다.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기 위함이다. 지난 4주간은 엄두도 못 냈다. 깁스를 하고 있는 것만으로 에너지를 소모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진료가 끝나면 남은 힘을 겨우 모아 병원 앞 스벅으로 가서 냉동 크로크무슈를 먹곤 했다. 버스가 도착했다. 왼손으로 카드지갑을 쥐고 오른손으로 카드를 꺼내 단말기에 찍었다. 맨 앞자리에 앉았다. 허벅지에 오른손가락을 살짝 구부린 상태로 내려놓고 아래로 지그시 눌렀다. 근육 결을 따라 손가락에 주름이 진다. 비유가 아니라 손가락이 물리적으로 뻣뻣하게 굳어서 주먹을 못 쥐고 있다. 틈나는 대로 풀어주어야 한다. 얼른 물리치료 받고 싶다.
한 손에 깁스를 찬 상태는 코르셋 상태와 결이 같다. 다른 한 손으로도 깁스 이전과 비슷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음을 알았다. 마우스도 남는 손으로 쥘수 있고 타자도 칠 수 있다. 설거지도 어찌저찌 할 수 있고, 밥도 먹을 수 있다. 점심시간마다 식당 직원분들은 친절하게도 먼저 포크를 건네주셨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에 가해지는 게걸스러운 눈빛을 차단하기 위해 다른 여성이 몸으로 가려주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깁스한 손은 땀이 차고 간지러워도 긁을 수 없다. 그 축축한 시선을 영영 없앨 수 없듯이. 무엇보다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페달을 밟고 싶은 욕구를 참느라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했다.
어제, 그러니까 깁스 마지막 날, 갑작스레 사장님이 한시간 일찍 퇴근하라고 했다. 시간도 널널한데 무얼 하지? 집으로 바로 가긴 아쉬운데 서점이나 갈까? 고민하며 사무실 건물을 나섰다. 구름이 두꺼워서 햇살이 따갑지도 않았고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오래 돌린 선풍기처럼 텁텁한 것이 아니었다. 이걸 맞으면 기분이 좋아질 걸 이미 겪어 알고 있는 서늘한 바람이었다. 자전거를 탄 몸이 기억하고 있는.
사무실 바로 앞 자전거 대여소에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자전거가 세 대 있었다. 나는 잠금을 풀고 자전거 바구니에 가방을 넣었다. 익숙한 코스로 진입하니 역시나 자전거 타기 딱 좋은 날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간은 비구름을 통과하느라 옷이 젖고 팔에 빗물이 고이기도 했지만, 이 너머 도착지에는 파란 하늘이 보였으므로 허벅지를 더 빨리 움직였다. 비구름을 벗어나니 한강 입구였다. 바람이 더 세게 불었다. 한강길을 빠져나가기 전, 자전거를 잠시 세우고 벤치에 앉아 엄마가 싸준 과일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복숭아가 아삭했다.
위험일까 위반일까? 4주 동안 나는 위험을 상상하며 욕구를 눌렀다. 위험이란 겨우 붙어가고 있는 뼈가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다시, 혹은 더 심하게 부러지는 그림이었다. 위반이란 깁스를 차고도 신나게 강바람을 맞으며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그림이었다. 서울로 오는 버스에서 나는 첫 탈코르셋 순간을 떠올렸다. 브라 없이 속에 나시만을 받춰입고 밖으로 나갔던 날. 화장을 하지 않고 출근한 작년 11월. '이성애 규범성'을 위반했더니 아침에 잠을 10분 더 잘수 있게 됐다. 위반하기 전 내가 떠올린 것은 위험이었다. 민낯의 상태를 보여 못생겼다는 욕을 먹고 수치심을 느끼는 그림. 그렇지만 지금은 눈두덩이와 양 볼에 인위적인 색이 덧입혀지는 게 더 어색하다.
깁스를 한 상태에서 자전거를 탄 것과 탈코르셋 행위가 꼭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나는 정말로 다칠 수도 있었다. 깁스 마지막 날 자전거를 탄 것은 '이번주까지만 깁스를 하라'는 의사의 말을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위반한 것이다. 탈코르셋은 어떤가? 탈코르셋 전까지는 코르셋을 언제까지 차야 하는지도 알 수 없고 코르셋을 벗어던진 몸에 어떤 위험이 가해지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니까 깁스 전후와 탈코르셋 전후는 방향이 정 반대다. 한 손에 깁스를 하면 두 손을 자유롭게 놀리는 것이 얼마나 편한지 그제서야 깨닫는다. 코르셋을 차고 있으면 탈코르셋 후의 상태를 상상할 수 없다. 코르셋을 찬 상태에서 얼마나 쉽게 피로해지는지도 알 수 없다. 결국 몸으로 위반을 겪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 일주일간 읽은 책의 한 글귀를 떠올린다.
감각으로 이해해야 하는 순간에 머릿속을 배회한다면 오히려 경험을 통해서만 빚어낼 수 있는 더 깊은 사유를 마주할 기회를 잊게 된다.
이민경 <탈코르셋 : 도래한 상상> 중
유한한 에너지는 더이상 깁스로 줄줄 새지 않는다. 체력을 온전히 원하는 행위에 쏟을 수 있게 된 지금은 두 손으로 이 글을 쓰며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뻣뻣하게 굳은 손가락 근육이 풀어지고 예전처럼 주먹을 쥘 수 있게 되면 이전처럼 바벨도 들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펜을 쥐고 손으로 일기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안 있어 힘을 회복할 것이다. 브라를 벗고 호흡이 편해졌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