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향으로 되살아가는 기억.
향은 나에게 USB 같은 존재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사진보다 향으로 어떤 날을 더 또렷하게 기억한다.
자주 찾는 후쿠오카를 떠올려본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묵직한 공기가 몸을 감싸고, 이내 부드럽고 청량한 바람이 스친다. 회색을 떠올리게 하는 공기와는 다르게, 바람은 옅은 파란빛이 머무는 느낌이다. 따뜻하면서도 시원하고, 바닷가에서 햇살과 파도가 맞부딪힐 때 날 것 같은 향.
바닐라, 리큐르, 소금기… 아주 은은하게 퍼지는 그 향에는 낯익은 얼굴들과, 처음 일본을 찾았던 두근거리던 내 마음이 담겨 있다. 나는 향에 이끌려, 잠시 잊고 지냈던 시간을 천천히 꺼내 본다. 출국 전 공항에서 타코벨을 먹고, 도착 후 타마고 산도와 리치 물을 사는 것도 이제는 일종의 의식처럼 느껴진다.
향 속에 잠들어 있던 기억을 깨우기 위해, 나는 ‘커피 카운티’로 향한다. 그곳에서 마신 볼리비아, 니카라과 커피는 내가 로스팅한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청포도, 사과, 자두 같은 밝은 산미와 과일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커피 한 모금에, 그 시절의 내 모습과 친구들이 떠오른다.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역시 일본은 다르네."
햇살이 길게 드리운 벤치에 앉아, 나는 그때의 향기를 마음속에서 다시 꺼내본다. 바뀐 생두, 바뀐 직원, 달라진 분위기 속에서도 예전엔 궁금증만 가득했던 일본 커피가, 그날 이후로 내게는 미소로 기억된다.
그리고 ‘리틀 스탠딩’.
그곳엔 다른 의미의 향이 머물러 있다. 케냐 커피 한 잔에서 느껴졌던 강렬한 라즈베리 향. 프렌치 프레스로 내린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고 깊은 맛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인생 첫 일본 데이트를 했다.
일본어를 거의 못하던 나는 낯선 이의 물음에 “하이, 하이”만 반복했고 베이지색 원피스에 검정 구두, 하얀 캔버스 가방, 빨간 머리핀을 한 사람이 옆에 앉았다. 어색함을 파파고 번역기로 넘기며, 우리는 서로 마시는 음료를 바꿔 마시기도 하고 반으로 나눠 먹은 플레인 와플 하나로 마음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갔다.
그날 이후, 나는 지금도 그곳에 가면 케냐 커피에 와플을 곁들이곤 한다. 때때로 그 향기를 다시 느끼고 싶어 찾아가지만, 한국에선 좀 처럼 찾기 힘든 냄새인 듯하다.
어딜 가도 그 향은 여전히 정해진 장소, 정해진 순간 안에서만 온전히 되살아난다.
그리고 향은 잊히지 않는 듯하다.
내가 그 향으로, 추억을 다시 살려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