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바람 냄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침구를 정리하기 전 먼저 에탄올이 가득 담긴 병을 집어 든다. 침대 모서리, 창틀, 책상, 바닥, 손이 닿는 모든 곳에 가볍게 분사하고 키친타월로 조심스레 닦아낸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인다. 옷장을 열어, 옷들이 각자의 자리에 잘 머물고 있는지 확인하다 보면 어느새 서랍 하나쯤은 다 꺼내 정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침구를 반듯하게 정리하고, 커튼을 올려 창문을 활짝 연다. 바람이 밀려오고 햇살이 방 안을 스며들면 그제야 하루가 시작된 느낌이다. 매일 아침 30분, 나는 내 공간과 마음을 함께 청소한다. 그럼에도 늘 조금은 찜찜한 마음이 남지만, “출근하는 날이니까”, “오늘은 쉬는 날이니까” 같은 이유로 마음을 덮는다. 오늘, 5월 18일 아침에 불어온 바람은 풀내음이 살짝 녹아든 따뜻한 햇살 같았다. 바깥세상을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 문밖으로 이끌리게 만드는 그런 공기. 이런 날엔 에티오피아 내추럴 계열 커피가 딱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준비하는 손길은 어느새 익숙하다. 바게트 네 조각을 잘라 이즈니 버터를 얹어 토스트기에 굽고, 도쿄에서 사 온 ‘니구세 케라모 무산소 내추럴’을 꺼낸다. 이 커피는 케라모 지역의 농장주 ‘니구세 게메다’가 정성껏 재배한 생두로, 플로럴 한 복합 향과 잘 익은 레드베리, 그리고 견과류와 밀크초콜릿이 어우러진 부드러운 마무리가 특징이다. 오늘은 조금 러프하게 내리고 싶어, 펠로우 그라인더로 9g의 원두를 분쇄도 3에 맞춰 갈았다. 물은 백산수를 사용했고, 온도는 88도. 나는 커피의 농도보다는 퍼지는 향을 사랑하는 편이라 150g의 물로 가볍게 추출한다.
1차로 45g을 붓고 25초 기다린 후, 60g → 45g 순으로 마무리. 총 추출 시간은 1분 43초. 높은 위치에서 물을 붓는 것이 향을 더 잘 끌어올린다는 걸 요즘 깨닫고 있다. 다만 너무 높으면 잡향이 생기니 적당한 높이가 중요하다. 컵을 들고 향을 맡는 순간, 설명하기 힘든 복합적인 꽃과 과일 향이 나를 감싼다. 무산소 가공이지만 자스민, 라즈베리, 자두껍질, 오렌지 블라썸, 허니서클 같은 향이 스르르 퍼지고, 이어지는 밀크초콜릿과 호두의 고소한 피니시는 마치 향수를 마시는 기분마저 든다.
커피를 추출하는 사람의 손끝에 따라 향의 인상이 달라지듯, 내가 내린 커피는 늘 어디선가 아련하고 슬픈 감정이 묻어난다. 때로는 그게 묽거나 쓰게 느껴지지만, 내가 좋아하는 감정이 담긴 맛이라면 그걸로 충분하다.
여유로움에서 나타나는 '나'라는 사람은 참으로 낡고 슬프다. 바게트 한 조각으로 입을 씻어내고 다시 커피를 머금는다. 어느새 아침을 지나 낮으로 넘어가는 시간. 창밖에서 흔들리는 나뭇잎과 풀잎의 향이 커피와 어우러져 오늘 하루의 따뜻함을 맡고 삼킨다.
공허함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이 시간은 한 줄기 빛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잊고 싶지 않다. 다음 주말, 같은 햇살과 바람이 다가온다면 오늘 아껴둔 원두를 꺼내 또 한 번 이 아련하고 따뜻한 순간을 추억처럼 꺼내어 마셔보고 싶다.
"비 오면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