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by 아빠를 여행하다

_ 10.


그 날 이후로 그들의 스쿠터 경제속도는 20km로 바뀌었다. 메콩강 유역에서 오토바이만큼 보편화된 교통수단도 없었다. 대여하기 편리하고 저렴했다. 오토바이를 휴대폰처럼 애용하는 현지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버스나 택시로 근거리를 옮겨 다니는 것도 썩 권장할 일은 아니었다. 그 날 이후로 과속은 금물이 되었지만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기동경찰들을 대비하기 위한 삼엄한 경계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달랏은 고산지대였다. 열대 우림에서 급작스레 기후가 바뀌고 있었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서늘한 냉기가 겨드랑이 속으로 파고들었다. 현지인들은 이미 두터운 외투에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길거리엔 보따리장수들이 옷가지를 즐비하게 바닥에 깔아 놓고 추위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여행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그들이 챙긴 옷가지래 봐야 반바지에 티셔츠 몇 장, 얇은 바람막이가 전부였다. 그래도 이 정도 추위쯤이야 떠들며 씩씩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울창한 숲과 폭포를 잇는 비탈진 언덕, 난초, 수국, 후쿠시아가 심긴 아르데코 풍 식민지 빌라들 틈새를 안전속도 20km를 준수하며 돌아다녔다. 거북이 마냥 느릿느릿 기어가는 스쿠터를 현지인들은 아랑곳 않고 추월해 다니고 있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달리면서 뒤를 돌아보는 경우는 둘 중 한 가지. 누가 뒤에서 쫓아오거나, 그 길이 맞는지 확신이 필요할 경우에 그렇다. 그는 분주하고 복잡했다. 마치 누가 쫓아오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현지 경찰이 아니었다. 그는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었지만 이미 여행을 다 마친 사람처럼 미래에 가 있었다. 그렇게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마지막 결론, 그것도 여행을 다 마치고 고국에 도착한 그 이후의 삶을 겨냥하는 듯했다. 밀린 대출금, 이자, 보험금, 애들 학비, 학원비 등등. 여행을 마치고 먹고 살 일들을 염려하고 있었다.

앞날을 예감하고 예견하는 지각활동이야 필요하겠지만 자신의 이런 인지구조가 지긋지긋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가격이 뻔히 정해진 것 같은 장사를 하는 기분이랄까. 코 앞에 벌어질 일도 알지 못하면서 한 달 후, 일 년 후, 십 년 후, 그 이상의 가격을 미리 확정 짓고 걱정과 염려, 결핍과 우려로 채산성을 따지며 사는 것이 속상했다.

아무리 봐도 그것은 제 인생의 값은 아닌 듯했다. 마치 마주 대하는 사람을 사랑이 아닌 거래관계로만 보듯 자신과의 만남도 본전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매 순간순간을 살면 뒷부분은 저절로 살게 되는데도 내일의 삶을 확정해서 지금 이 자리를 살아가는 것이 못마땅했다. 뒷부분을 미리 살고 보니 지금 현재를 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국경을 넘고 새로운 나라로 건너 다닌다 하더라도 정해진 이정표 안에서 앞으로 다가올 감흥이나 감동까지도 미리 확정 짓는 자신이 몹시 싫었다. 여행 자체를 즐긴다기보다는 여행이라는 형식을 채우는 것 같았다. 그는 저 자신이 여행 이후의 미래를 염려한다는 것을 눈치챈 순간, 현재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 비추는 햇살과 쏟아지는 향기에 심취하지 못하는 본인을 훨훨 털어 버리고 싶었다.

반면 아이는 언제나 즐거워했다. 그야말로 지금 이 자리에서 지금 이 순간과 하나 된다는 것이 부럽고 신기했다. 어릴 적 아버지가 말씀하시던 '다 때가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이를 먹으면 겁쟁이처럼 안 보던 것을 자꾸 보게 된다'라고 하시던 말씀까지. 그는 아이와 다른 지각으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살아내는 것이 못내 서글펐다.


'제발 오늘 걱정은 오늘만큼만. 내일 걱정은 내일 가서. 그것도 충분하지 않니!'


그런 아들이 그에게 비밀 한 가지가 있다고 했다.


"비밀?"

"그게 뭔데?"

"아니, 비밀은 아니고, 비밀 같은 거"

"뭐지?... 대체 뭐지?"


아이는 겸연쩍어하며 그다지 비밀은 아니면서도 뭔가를 아빠에게 알려 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아빠, 힌트! 아빠 핸드폰을 한번 봐"

"핸드폰?... 뭐지?..."


순간 깨달았다. 오늘이 아들 생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알아채지 못하는 척했다. 귀찮아서였다. 이렇게까지 여행을 왔는데 또 무언가를 챙겨서 특별한 이벤트를 한다는 것이 피곤했다. 성가셨다. 그랬다. 하지만 아쉬움은 남았다.


'아~ 내가 왜 그걸 깜빡했지?'


어제까지만 해도 초코파이라도 하나 사서 짝짝짝 박수라도 치려했건만. 그만 감쪽같이 잊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오히려 그냥 모른 척 지나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서인지 전혀 알지 못하겠다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국에 있는 아내로부터 어느새 문자 하나가 와 있었다.


<오늘 혹시 아들 생일은 어떻게 한?...>


그는 더 이상 모른 척할 수만은 없었다. 결국 아이 핸드폰을 살짝 빌려서는 메모를 적었다.


<미안 하구나. 아빠가 그만 깜빡 한 걸 그 자리에서 인정하지 못했구나. 어제까지만 해도 잘 기억하고 있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이렇게 감추고 속이려 들어서 더욱 미안하구나. 용서해라. 오늘 밤에 아빠와 즐거운 시간을 갖자꾸나.>


오래간만에 모범답안을 썼다고 생각했다. 막상 본인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보니 마음의 때가 벗겨지는 듯했다.

아이에게 부모로서 부끄러움을 알린다는 것은 거추장스러운 선택사항이 되곤 했다. 살면서 두렵거나 괴로워도 그것은 본인이 해결할 문제지 누군가에게 고백할 사항은 아니었다. 특히 대상이 아이들일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그는 그 주변에 있는 그 누구에게도 본인의 연약함이나 잘못된 오류, 실패한 일들을 그저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기와의 대화 방식이 우선 그랬다. 넘어지고 깨지고 모르고 틀려서 낭패를 볼 때도 스스로 '아, 내가 넘어졌구나', '아, 내가 어리석었구나', '아, 내가 틀렸구나'라는 인식의 오류를 수정하기 꺼려했다. 그럼으로써 진실과 맞물린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막상 입을 빌어 몸으로 시인하는 데는 무척 인색하고 서툴렀다. 그래서인지 진짜 자신과 밀착 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점점 나아지고는 있으나 여전히 현재형인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는 현실과 맞물린 떳떳함이야말로 홀가분함을 느끼게 하고 비로소 자유를 가져온다는 것을 실험하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진리라도 현실을 떠나 있으면 몸으로 불편하고 맘으로도 삐걱거린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었다.

돌이켜 보니 그는 아버지가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촛불을 불어 준 기억이 없었다. 선물을 가슴에 안겨 주고 박수받던 기억이 없었다. 그의 생일은 그 여느 날과 동등했고 그의 아버지는 칭찬의 언사 대신 그가 받아온 상장들을 말없이 액자에 걸어 둘 뿐이었다. 본인도 그래서일까. 아들에게 이런 행사를 갖는다는 것이 자신을 대하듯 어색하고 서먹서먹했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은 엄마 대신 제 1 양육자의 자리에 있다 보니 그 부자연스러움은 더욱더 피부로 다가왔다.

그는 아들과 마주 앉았다. 특별한 이벤트라고 해봐야 손에 아이스크림 하나를 안겨주는 것이었다. 아이는 그것만으로 도 충분했다. 덤으로 그는 여행 중 처음으로 진한 커피 한 잔을 가슴 깊이 들이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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