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11.
"왔다! 달려!"
시장 앞에서 버스를 타면 8,000동이었다. 그들은 해변 도시 몇 군데를 거쳐 이 곳 유적도시 훼에 들어온 지 어느덧 사흘이 흘렀다. 동네 지리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늘 그래 왔듯 다음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 가장 저렴한 교통편을 택하고 있었다. 거기가 바로 동바시장이었다. 번잡한 노점상들이 줄줄이 이어진 이 곳에 과연 버스 정류장일까 싶은 승강장이 있었다. 버스는 잠시도 기다리지도 않고 누군가 손을 흔들면 급히 태우고는 마치 오지도 않았던 것처럼 출발하기가 일쑤였다.
며칠 전부터 그는 이 곳 길가에 앉아 돼지 죽밥 비슷한 차 오롱을 먹으며 다음 도시로 떠나는 동선을 그려보고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 버스가 오자 아들과 함께 전속력으로 뛰어 차에 매달렸다. 그는 다른 사람은 모르는 비밀 하나를 움켜쥔 듯 버스에 올라 탄 것에 무척 기뻐했다. 긴장과 배낭을 풀고 그제야 차창 밖 풍경에 미소를 싣고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일찍 벤세 피아 박 터미널에 도착했다. 겹줄로 선 미니버스와 봉고차엔 각각의 행선지가 적혀 있었고 큰 소리로 목적지를 외치며 호객하는 차장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동하에서 하루 머무느니 바로 국경마을 라오바오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라오바오!"
턱으로 가격을 물었더니 차장이 손가락 열 개를 펴서 곧바로 응답했다
.
"라오바오? 10K!"
공중으로 전달된 호가를 뒤로 하고 그는 발걸음을 놀려 매표소 안으로 들어갔다. 매표소 창구 직원에게 라오바오행 요금을 물었다.
"8.5K"
표 두 장을 끊어서 봉고 차로 찾아오니 방금 전 "10K"를 부른 그 차였다. 차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표 두 장을 거머쥐고 둘을 번갈아 쳐다 보고는 짐과 승객들이 가득 찬 안으로 밀어 넣었다.
버스는 이내 동하를 지나 라오스 국경 방향인 9시 방향으로 꺾어져 달리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승객이 오르고 내리길 지겹도록 반복했다. 그의 옆자리엔 좁은 공간이 있었는데 중간에 덥석 올라 탄 한 청년이 그 틈에 앉아 다리를 쩍 하니 벌렸다.
'나도 저 나이 땐 저랬지'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 손으로 가이드 책자를 들춰 보고 있었다. 그동안 버스만 타면 현지인들이 대 놓고 몸으로 밀치고 기대는 것이 무척 성가셨다. 차가 비좁으니까 그러려니 했었지만 그래도 그날은 좀 그랬다. 잠시 후 청년이 눈을 돌려 그가 보는 책자를 함께 들여다보고 있었다. 눈치챈 그가 책을 뒤집어 가리키며 말했다.
"라오스~"
청년은 썩은 이빨을 훤히 드러내며 못 읽겠다는 건지, 글을 못 읽는다는 건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빨을 훤히 드러내고 보니 시골티가 절로 났다. 그제야 젊은이는 양다리를 슬그머니 오므리고 있었다.
차 안에서 연신 흘러나오는 뽕짝은 지칠 줄 몰랐고 그는 이제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승객들이 그의 발을 밟건 엉덩이를 밀치고 비벼대건 가만 내버려 뒀다. 반면 아들은 자기 가방을 꼭 끌어 앉고는 단잠을 청 한지 오래였다.
'사춘기가 되면 그렇게 잠이 많다는데 그래서 그런가?'
'그래도 그렇지. 아니, 어떻게 저렇게 깨어 있는 시간이 하나도 없지? 차만 타면 무조건 자네'
'전에는 그렇게 자라고 해도 안 자더니만, 나 원 참~'
이 와중에 잠을 자는 게 신기했다. 차는 구비구비 산길을 날렵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라오바오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경. 그는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고 다음 날 국경을 넘을지 어쩔지 아직도 고민 중이었다. 창공에 떠있는 태양이 에너지를 공급했을까. 그는 허공에다 대고 들입다 외쳤다.
"가자, 라오스로!, 라오바오를 지나 라오스로~"
잠이 덜 깬 아들은 멋도 모르고 자신의 지경을 또 넓혀야 했다. 오토바이로 국경까지 데려다주겠다는 호객꾼 들을 끝까지 물리치고 있었다. 그들은 걸었다. 제 발로 걸었다. 약간의 오르막을 걷고 나니 큼지막한 국경 건물이 나타났다. 지루했던 해는 이미 꺾이고 산새는 좋은지라 호젓한 분위기마저 감도는데 이상하게도 국경지대엔 얼씬 거리는 사람 하나 없었다. 경비대 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경 건물 위에 매달린 대형 국기와 문양만큼은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잠시 후 초소 안에서 군의관 하나가 손을 내밀었다. 이리 오라는 표시를 했다. 짧은 동작이지만 사막에서 만난 기동 경찰대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어디로 가는가?"
군의관이 물었다.
"라오스요!"
그는 적군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줘야 했다. 그 증거로 미소를 날려 화답했다. 그러자 통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 길로 걸어 나가라는 듯했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출국 도장을 받고 싶었다. 해는 저물어 가고 국경 건너편 상황은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도 지금 당장 넘는 것이 속 편할 것 같았다.
마음이 조급했다. 재 입국 날짜를 얼른 확정 짓고 싶었다. 내일 넘는다 해도 계획보다 하루 이틀 여유가 있었지만 하루 먼저 출국하는 것이 보너스로 하루 더 챙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베트남 출국 심사대를 찾았으나 군의관은 다음 국경 초소인 라오스 국경까지 계속 가라고 했다. 여전히 국경의 긴장감은 감돌았다. 아직 아무 도장도 못 받았으니 숙제 검사를 덜 마친 기분이었다.
그 와중에 아들은 여전히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두 번째 검지 손가락과 네 번째 약지 손가락을 구부리고선 나머지 세 손가락을 쫙 펴고는 물었다.
"아빠는 이게 울버린 같아?~, 이게 울버린 같아?"
그다음 동작은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뺀 나머지 세 손가락을 곧게 펴고 물었다.
"..."
"응? 어떤 게 울버린 같아?"
"응?... 뭐가 울버린 같냐고?"
혹시라도 국경초소에서 군의관이 트집을 잡을까 봐 머리가 복잡한데 그 와중에 던지는 이런 질문은 정말 생지옥이었다.
"그게 울버린 같아!"
아무렇지도 않게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을 눈치챈 아들이 짜증을 냈다.
"아빠는 좀 진지하게 대답을 좀 해!"
"내가 뭘 물어보면 항상 그러더라!"
"날 좀 제대로 보기나 하는 거야?"
"......"
그는 아예 말이 안 나왔다. 어이가 없어서 숨이 턱 막혔다. 웃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찬찬히 저자신에게 심리상태를 설명하지도 못하는 와중에 아이가 이러는 것은 정말이지 죽고 싶고 죽도록 울고도 싶었다.
"아빠가 지금 국경 심사를 앞두고 좀 긴장이 돼서 그러는데... 미안하지만 대답하기가 좀 곤란하구나.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면 어떨까?"
이런 대답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이데아적 발상이었다.
"좀! 그만!!!"
결국 그는 버럭하고 말았다.
"알았어! 알았어!"
토라질 듯하다가도 아직 자기흥에 넘어가지 않은 아이는 잠시 후 그에게 또 물었다.
"그러면 아빠는..."
이번에는 손목을 앞으로 꺾어 두 팔을 길게 뻗어 몸에 쫙 펴서 같다 붙이고는,
"이게 아이언 맨 같아?"
이번에는 손목을 뒤로 꺾어서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면, 이게 아이언 맨 같아?"
"그거! 그거!"
"뭐? 이거? 이거?"
"그거 그거!"
"이거?"
"아잇!, 다 똑같아!"
더 큰 분노가 폭발할 것 같았다.
"뭐가 똑같아? 응?..."
보채 듯 묻는 아이의 질문에 그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한 가지 문제만 해결하고 싶었다. 빨리 도장을 받고 싶었다.
라오스 국경 심사대에 도착 하니베 트남과 라오스 군의관이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 있었다. 왼쪽 라오스, 오른쪽 베트남. 베트남 쪽에서 넘긴 여권을 라오스 진영에서 받아 도장을 꽝꽝 찍어주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여권을 뒤적거려 보더니 한참 만에 인간의 음성이 터져 나왔다.
"비자가 없으니..., 15일~"
라오스 군의관의 이 한마디가 매우 당연한 것이었지만 "참 친절한 라오스 사람들~" 이런 각인이 새겨지고 있었다. 사람들로 가득 차 북새통에 난리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국경 건물을 통째로 임대하다시피 한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어색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바깥세상으로 얼떨결에 밀려 나온 듯했다.
새로 열린 세상은 별거 없이 허전했다. 흙먼지 가득 이는 도로는 텅 비었고 한편에 천막 친 식당이 있었으나 이용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운행을 멈춘 듯한 버스 한 대만이 소박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다가오는 호객꾼도, 귀찮게 말을 걸며 따라붙는 환전상도 없었다. 터무니없는 환율을 부르던 베트남 쪽 암달러상들이 그리웠고 못내 그들을 뿌리치던 것이 후회되었다.
그는 아들과 함께 또다시 길을 걸었다. 소박한 산길을 무작정 걸었다. 하늘은 높고 태양은 기울고 제 갈 길을 바삐 가는 오토바이 몇 대만 슬쩍슬쩍 그들 옆을 지나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