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06.
버스는 판티엣 시내를 거쳐 해변을 타고 고급 리조트 단지를 하나하나 들리고 있었다. 아무런 예약도 없이 떠난 그들은 어디선가 눈치껏 내려야만 했다. 숙소를 샅샅이 검색하지도 않은 터라 백패커들이 머물만한 저렴한 곳에서 본능적으로 내려야 했다.
발이 땅이 닿는 즉시 옳다구나 기다렸다는 듯 현지인들이 다가왔다. 그는 따지지도 않고 호객꾼에게 홀라당 몸을 맡겼다. 그리고는 다음 날 오토바이를 함께 빌리는 조건으로 십 불짜리 숙소에 짐을 풀었다. 그가 세운 여행경비를 감안하면 바다가 탁 트인 분위기 좋고 근사한 숙소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방만큼은 제발 청결하길 바랬다.
이튿날, 일찌감치 길을 나서야 사막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주인장의 설명에 그들은 새벽부터 부산히 움직였다. 스쿠터를 끌고 좁은 골목을 따라 도로까지 나서는 길은 가볍지도 가깝지도 않았다. 시동을 걸기 전에 운전석 밑에 있는 헬멧을 꺼내렸는데 그만 박스가 열리지 않았다. 그는 키를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돌려봐도 꿈쩍을 안 했다. 당황한 그가 아들을 쳐다보며 괜히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야, 어떻게 좀 해 봐! 아무리 해도 안 열려!"
"이렇게 하면 열리는 거 아냐? 그런데 왜 안 되지!"
그는 계획대로 안 되는 것에 짜증이 났다. 평소에도 멀쩡하다가 일이 자기 뜻대로 안 되면 급작스레 과격해졌다. 게다가 잠이 덜 깬 채로 뭉그적 대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속이 더욱 뒤집혔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개미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시간에 주인집 문을 두드려 사람을 깨울 상황은 아니었다.
'어제 박스 여는 걸 대체 왜 안 물어봤을까?'
'아이~ 일찍 출발하려고 했는데...'
그의 짜증은 아들한테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한 본인을 보면서 스스로 '잘 하는 짓이다~'라고 각성은 하면서도 저 자신을 통제하지는 못했다. 부모가 뭘 좀 해보려는 것이 아이를 망치게 하는 지름길임을 또다시 직감하고 있었다.
그렇게 지체하는 사이에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여유롭게 길을 나서서 느긋하게 일출을 즐기겠다는 그의 일념은 떠오르는 햇살 아래 조심스럽게 수포로 깔리고 있었다.
한참 후 그들 앞을 지나치는 오토바이 운전자를 겨우 불러 세웠다. 박스를 열어줄 수 있냐고 부탁했더니 시동 거는 키를 좌우로 깔딱깔딱 움직이더니 이윽고 박스 통이 활짝 열렸다.
"아이, 뭐야. 내가 할 때는 그렇게 안되더니!"
신경질을 부리던 그의 부끄러움도 함께 열리고 있었다. 부지런히 헬멧을 쓰고 그들은 중국산 스쿠터에 올랐다. 그가 아들과 오토바이를 타는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오랜만에 핸들을 잡아보는 터라 긴장하고 있었다.
이내 짜릿한 바람이 귓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콧바람까지 일렁였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햇살이 곧 뜨거워질 것이라는 것을 피부로 직감하고 있었다. 그래도 상쾌하고 시원한 풍랑이 바깥 기운을 이겨내기에 충분했다.
우선 주인장이 알려준 곳에서 기름을 넣기로 했다. 주유소에는 줄을 서고 있는 현지인들로 인해 제 차례를 기다려야만 했다. 주유구 뚜껑을 열자 빼빼 마르고 햇볕에 그을린 직원이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다가왔다. 한 손으로 주유기를 담갔다 빼는 시늉만 했다. 미터기 돌아가는 건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래 봐야 오천 원어 치라 생각한 그는 크게 따지지도 않고 시동을 걸었다. 초행길이라 아직 긴장하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도로 표지판은 마땅치 않았고 그래서인지 길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사막으로 이어지는 길은 한적했다. 붉은 사막과 흰 사막을 가기로 했는데 잠시 후 산 허리를 도니 붉은 사막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흰 사막에 가고 싶었다. 좀 더 멀리 가고 싶었다.
달리는 내내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아들은 무척이나 신나 했다. 아이들은 탈것은 뭐든지 다 좋아했다. 무성한 정글이 있을 법한 곳에 사막이 있는 것도 신기했고 후덥지근한 계절풍 대신 서늘한 찬 바람이 교차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도로를 굽이칠 때마다 숲에서 풍겨오는 냉기와 바다에서 후끈 밀려드는 공기가 각각 달랐고 조각난 사막 끄트머리를 돌자 일자로 쭉 뻗은 대지에서는 새로운 열기가 불어왔다.
다시 오르막 길을 달리다 구릉을 지나치니 숲에서 넘어온 싸늘한 향기가 코 끝을 팽하니 찔렀다. 마치 나뭇가지가 타는 듯한 힘겨운 체취와 냉동실 문을 열어 놓은 것 같은 강렬한 냉기에 잠시 당황하기도 했다. 그러다 또다시 불어닥친 마치 향수를 바짝 말려둔 것 같은 형형색색의 채취가 그를 묘하게 일깨우고 있었다. 몽롱함이 뒤따라 밀려들었다. 마지막 세일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그는 달리는 내내 숨을 세차게 들이마셨다. 시속 40km로 달리던 속도계는 어느새 80km를 가리키고 있었다.
큰 바다가 오른쪽 한편에 나타났다.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고 그중 키가 제일 큰 파도는 햇살에 이미 쪼개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가 태평양이야~"
"정말? 여기가 태평양이라고?"
"응. 태평양이야~"
아들에게 손가락을 뻗어 이렇게 가리키면서도 그도 믿기지 않았다. 도로는 해안을 따라 미끈하고 늘씬하게 쭉 뻗어 있었다.
포구를 도니 모래사막이 나타났다. 그래도 흰 사막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지도상에 그쯤이라 표시되었지만 하얀 모래는 아니었다. 게다가 기름은 반 이상 줄고 남은 기름으로 되돌아가기에는 아슬아슬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기름을 꽉 채울 걸...'
'너무 아쉬운데?'
그는 하는 수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가는 길에 어촌 마을에 들렀다 가자고 했다. 그들은 도로 한편에 스쿠터를 세우고 후미진 내포를 돌아 모래사장을 걸었다. 예상은 했지만 해변은 자잘한 쓰레기와 잡고기 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새벽 일찍 바다로 나갔던 고기잡이 배에서 분주하게 그물을 거두고 있었다.
"아빠, 나 미치겠어!"
아이가 다급하게 불렀다.
"왜?"
"똥~"
"똥?"
갑작스러운 요청에 그는 난감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실례를 할 만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물을 정리하는 젊은이들과 새우를 손으로 골라내는 아낙네들 그리고 고무 통을 밀고 들어오는 이들로 인해 인적이 닿지 않는 곳(?)을 찾기가 마당치 않았다.
그는 아이 손을 잡고 마을 안 골목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좁은 골목엔 이른 아침부터 좌판을 깔고 목욕의자에 앉아 커피와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는 남정네들로 가득했다. 그들 사이를 뚫고 한 가정집 안으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갔다.
"혹시 화장실 좀 쓸 수 있을까요?"
표현은 영어였지만 표정은 간절한 현지인이었다. 이방인이 처한 이런 상황에선 호기심을 부릴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동네 여자들은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마지못해 그러라는 식으로 집 한구석을 턱으로 가리켰다.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한 노인이 그에게 목욕의자를 내밀었다. 자기는 서고 그 보고 앉으라는 것이었다. 그는 노인의 친절을 외면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덥석 앉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그 자리를 벗어나지도 못하면서 괜히 여럿 남정네들과 눈을 마주치며 겸연쩍게 웃고 있어야 했다.
잠시 후 그의 아들이 멀쩡한 걸음걸이로 나왔다.
"시원해?"
"응~"
"휴지는 있더냐?"
"응~"
그는 이런저런 무언의 감사 표시를 전하며 다시 비좁은 골목을 따라 마을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