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05.
"바다로 갈래? 산으로 갈래?"
메콩 강에서 싸이공으로 돌아온 그들은 다음 목적지를 두고 고민 중이었다. 그들은 공원 벤치에 앉아 반미를 먹고 있었다. 미리 예약해 둔 숙소도 특별한 경유지도 없었다. 커다란 루트만 잡아놓은 채 나머지 일정은 대충 열려있었다. 보름 후에 라오스 국경을 넘는 것이 정해 놓은 전부였다.
그는 고산지대인 달랏과 해안가 판티엣을 꼽았다. 두 곳 모두 싸이공에서 대 여섯 시간 걸리는 북부 지역에 있었다.
"아빠가 알아서 해. 나는 다 좋아."
열두 살짜리 아이에게 일정을 정하라는 것이 무리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물어는 본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그럼 차편이 언제 언제 있는지 알아볼까?"
"그래. 좋아!"
해뜨기가 무섭게 도시는 들뜨고 있었다. 팜응라오 공원으로 쏟아져 나온 싸이공 시민들은 두 주먹을 움켜쥐고 숨을 헐떡이며 아침 운동을 하고 있었다. 오토바이 행렬은 벌써부터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여기 살아서 다 안다'는 듯한 몸놀림으로 번잡한 도로를 요리조리 넘나들었다. 여행자 거리에서 여행사 직원과 이런저런 대화 끝에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오늘 달랏으로 가는 야간 버스는 매진이란다. 아무래도 오후 버스로 바다로 가야겠어."
아이는 만면에 웃음을 띄웠다. 그는 며칠 더 고생스러운 일정을 보내길 바랬다. 같은 돈이라도 산에서 쓰는 돈과 바다에서 쓰는 돈은 다르게 느껴졌다. 산에서 쓰는 돈이 훨씬 검소해 보였다. 게다가 바다로 가봐야 대형 리조트 일색일 텐데 초반에는 산골에서 근검절약하다 여타 휴양지로 갔으면 했다.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미약한 죄책감마저 스며들고 있었다.
그들은 남은 오전 시간을 적절히 보내기 위해 투어를 신청했다. 마침 출발하는 땅굴 투어가 있었다. 외국 관광객들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뒤따라 오른 가이드가 마이크를 붙잡고 한 번 더 아침을 깨우고 있었다.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 양복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벨트가 허리춤에 헐렁하게 매달려 있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고단했던 프랑스 식민시대를 마치자마자 그들에게 다가온 미국인을 두고 그놈이 그 놈이었다는 강도 높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었다. 가이드의 어조는 땅굴에 도착하면서부터 더욱 고조되었다.
12월 한 겨울인데도 태양은 뜨겁고 그늘이 아니면 숨쉬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그곳은 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라 도시 속 뙤약볕 열기보다는 훨씬 나았다.
이윽고 시범 삼아 들어간 이십 미터 남짓한 땅굴은 역시나 비좁았다. 몸을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협소했다. 덩치가 큰 서구인들은 구조적으로 갈 길이 못 된다고 판단했다. 가이드가 말하길 중간에 갈래길이 나오는데 좌측으로 가면 영원히 캄보디아로 가게 되니 조심하라고 했었다. 그는 그곳에 멈춰 서 있었다. 야맹증까지 있던 터라 깜깜한 땅굴 속은 헤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앞장서서 간 아들은 어느 틈엔가 보이지도 않고, 뒤따르던 관광객도 발길이 끊겼다. 어디로 가야 할지 난감했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빛이 없는 어두움과 길을 알지 못하는 두려움에 전율을 느꼈다. 순간 그가 죽음을 떠올린 건 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과했다고도 생각했다. 다. 너무나 답답했다. 미지의 공포가 제법 밀려왔다. 순간 어디선가 희망의 부름이 빛의 소리로 다가왔다.
"아빠! 빨리 와~"
귀가에 소리는 들리는데 아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어디야 어디?!"
"여기!~ 여기!"
"어디라고!? 안 보여!"
"여기라니까?~여기! 아빠, 빨리 와~ "
그는 아들의 소리를 듣고 다행이라고 여겼지만 갈래 길을 두고 망설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몇 걸음 다가갔는데도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되돌아 가려고 했다. 하지만 몸을 돌릴 수는 없었다. 본능적으로 오리걸음 몇 보를 밀어 볼뿐이었다. 그렇게라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이 가장 길게 느껴졌다. 이윽고 왜 이제 왔냐는 듯한 그림자가 시야에 어렴풋이 잡혔다. 구부렸던 허리를 펼 공간이 나타나고서야 잊혔던 그의 육신을 다시 세웠다.
"야~ 나 정말이지~ 죽는 줄 알았다~"
길도 길 나름이라고 생각했다.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다고 여겼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는 오늘 하루를 다 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