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by 아빠를 여행하다

04.


그 날 그가 메콩 강 위를 떠다니며 아들에게 지목한 것은 강을 끼고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이런저런 모습이었다. 그들은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갔지만 강줄기를 따라 물과 흙이 한 몸 되듯 크고 작은 배 안에도 간이 슈퍼와 화장실, 닭과 돼지, 오리와 개들이 한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

그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계속해서 제시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아비로서 아들에게 이런저런 길을 전하고 알려주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한 자신을 바라보며 문득 떠올렸다.


'내 아버지는 어떤 길을 알려 주셨지? 당신이 알고 계신 무엇을 전하고 싶어 하셨을까?'

'다른 사람들은... 선생님, 선배, 상사... 그들은 뭘 알려줬을까?"

"그들에게서 나는 무엇을 배우고 느꼈을까?'


그동안 아이와 여행을 다니면서 맞춰 본 기억의 조각들은 서로가 확실히 달랐다. 박물관이나 유적지 등은 아이들 뇌리에 거의 없었다. 부모의 교육 명분만큼 뚜렷하지 않았다. 대신 강가에서 돌 던지고 첨벙거리며 헤엄치던 기억만큼은 너무나 또렷했다. 그가 생각한 방향과 아이들이 새긴 방향은 달랐고 그가 채우고자 했던 내용과 아이가 몸소 챙긴 내용물이 서로 달랐다.

가리키는 방향이 아니라 담는 그릇이 문제였다. 아무리 "정의는 올바른 거야!"라고 외친다 해도 아이는 그 말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외치는 모양새를 기억했다. 그것을 몸에 새겼다. 방향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자의 풍경을 기억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이와의 여행은 힘겨운 작업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모습이 아이에게 습자지처럼 비치는 것이 때론 섬뜩하기까지 했다. 아빠가 <하라는 대로> 되지는 않고 결국 아빠가 <하는 대로> 되고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간다는 것은 그래서 아빠인 저 자신을 새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애한테 백날 세상을 보여 주겠다고 이리저리 데리고 다녀도 아이는 세상만을 보지 않았다. 오히려 전달자인 아빠가 더 큰 세상인 듯했다.

여행은 수단에 불과한 셈이었다. 어디를 가느냐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그게 무엇이든 또 어디든 아이는 아빠를 판박이처럼 기억했다가 그 길을 똑같이 간다는 게 행선지였다.

결국 그는 허벅지를 찔러가며 틈틈이 웃어야만 했다. 이리로 저리로 갈 길을 지목하는 대신 나룻배 위에서 아이를 향해 방긋하고 웃는 모습 하나가 그 길의 기억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니 의도적으로라도 입 고리를 하늘에 걸쳐야만 했다. 그게 아이를 웃게 만드는 최적의 황금률이자 목적지였다.

어느 틈엔가 뱃사공이 대나무를 꼬아서 칼과 물고기를 만들어 아이에게 선물로 건 냈다.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 졌고 순간 그는 메콩 강에서의 추억도 아이에겐 그것으로 채워질 것이라 여겼다.

그런 점에서 뱃사공이 그 보다 훨씬 유리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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