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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번 여행에서 국경을 발로 넘고자 했다. 비행기로 훌쩍 뛰어넘는 대신 몸으로 국경 경계선을 부딪히길 바랬다. 오래전 그가 몸담았던 단체에서 태국 북부지방으로 수련회를 갔었는데 그때 일행들과 미얀마를 육로로 건넜던 적이 있었다. 그 아련했던 추억도 있고, 당시에는 일행들을 인솔하는 가이드가 있어서 그 뒤를 졸졸 따라가기만 하면 됐었지만 이번에는 저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아이손을 잡고 건너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았다.
"있잖아~ 우리가 다음 주에는 라오스로 국경을 넘어야 해.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비자 체류 기간이 15일이거든? 무비자지만"
"그리고 라오스에서 15일 후에 또다시 국경을 건너야 해. 라오스도 무비자로 15일이라는 거지. 그런데 며칠 더 있으려면 태국으로 건너갔다 오는 방법도 있어. 하지만 우리는 중국 비자를 미리 받아 놨으니까 중국으로 넘자고. 그리고 중국에서 지내다 다시 하노이로 들어가는 게 우리의 큰 그림이야. 거기서 누나를 만나는 거지. 알겠지?"
그는 아이가 잘 알아듣는 건지 의심스러웠지만 계속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과제 중의 하나는 우리가 베트남에서 다른 나라로 나가면 30일이 지나야 다시 베트남에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는 거지"
저렴한 항공권에 비자발급 비용 등 이런저런 경비를 아끼려다 보니 의도치 않은 스케줄이 잡히고 말았는데 그러다 보니 묘한 긴장감이 일정에 삽입되었다. 그리고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런데 말이야~ 진짜 과제는 왕복 비행기표를 누나가 오는 날로부터 딱 2주에 맞춰 끊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누나가 오기 바로 하루 전날, 중국 국경을 넘어서 베트남에 들어가야 해. 그래야지만이 우리 셋이 베트남에서 무비자로 또다시 15일을 보낼 수 있다는 거지"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던 아들이 입을 열었다.
"아빠, 그러니까 베트남에서 15일 안에 떠나되 적어도 1달 이상 라오스랑 중국에 있다가 누나 오기 정확히 하루 전날 중국 국경을 건너서 하노이로 돌아와야 누나랑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거네? 베트남 국경을 너무 늦게 넘어가도 안되고 중국에서 하루만 늦게 들어와도 어렵다는 거네? 야~참!"
열두 살 먹은 아들이 그 복잡한 계산을 해서 숨겨진 긴장감까지 끄집어내는 것이 신기했다. 하지만 그의 머리는 복잡했다. 스스로 참 어렵게 산다고 생각했다. 비자 내서 제발 마음 편히 갔다 오지 왜 그러냐는 아내의 조언을 밀쳐 낸 지 오래였다. 그는 떳떳하고 싶었다. 생각지도 못한 돈이 생기는 바람에 그걸로 의미 있는 추억을 남기겠다 싶어 계획한 여행인데 한 푼 두 푼 아끼는 것은 목숨보다 귀한 사명처럼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몸값과 제 의미를 바꾸고자 했다. 그러는 것이 몸값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일정 내내 이러한 긴장감을 짊어져야만 했다. 게다가 방학 기간에 하노이로 부른 딸아이는 동생보다 겨우 두 살 많은 열네 살짜리 소녀에 불과했으니 비행기를 혼자서 잘 타고 올지도 미지수였다. 아이를 믿을 때도 됐다는 부모의 설정이 깔려 있긴 했지만 낯선 이국땅에서 한날한시에 착오 없이 서로 만난다는 계획은 일종의 도전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들은 베트남에서 라오스로 그리고 중국, 세 나라를 거쳐 다시 베트남 하노이로 돌아오는 삼각 루트를 그리고 있었다. 아빠와 아들, 둘이 시작해서 딸아이를 만나 셋이서 다시 엄마와 아내가 있는 원 가정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꿈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