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13.
도대체 이토록 힘차게 울어 재끼는 닭들이 있었는가! 라오의 닭들은 울다가 그만 목이 뒤로 나자빠질 정도였다. 그동안 들어 보지 못한 실하고 튼튼한 목청을 지니고 있었다.
'만약에 자유를 외치다 모가지가 부러진다면 나는 꼭 이 동네 닭을 쓸 테다!"
그는 잠자는 내내 '이처럼 가슴 설레는 공기는 처음이라며' 대뇌이고 있었다. 그의 꿈자리를 동네 닭들이 합심하여 울부짖으며 '꿈에서 깨라고' 보태고 있었다.
여주인은 사반나켓으로 가는 버스가 아침 일찍 도로를 지나친다고 했다. 그들은 삼십 분 전부터 나와서 대기 중이었다. 하지만 버스는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여주인이 그러면 세폰까지만이라도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는 별다른 선택권이 없음도 알았다. 고개를 끄떡였다.
잠시 후 지나가는 쏭테우를 불러 세웠다. 여주인과는 서로 잘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어제 탔던 그런 식의 개조 차량이었다. 트럭에는 아낙네들이 촘촘히 앉아 있었고 대부분 머리에 수건을 휘감고 있었다. 쓴웃음을 지으며 잇몸을 드러낼 때마다 그들의 부실한 이빨이 훤히 드러났다. 아침 장을 보고 온 것인지 장에 내다 팔려는 건지 짐 보따리가 발 밑에 차이고 있었다. 말없이 웃음을 지을 때마다 트럭은 좌우로 더욱더 흔들어 댔고 그들은 흔들흔들 서로를 마주 보며 이색적인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세폰에서 쏭테우로 이어지는 탑승이 계속됐다. 버스 터미널이라고 해봐야 길에 모여 있는 차량을 흥정해서 타는 그런 식이었다. 사반나켓을 현지인들은 줄여서 싸반이라고 불렀다. 싸반을 향해 두어 시간 달리는 중간에 차장이 내리겠냐는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왔다. 쎄노라 불리는 지점에 세 갈래 길이 있었다. 마을에선 지역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확성기로 떠 드는 소리가 도로 전역에 울려 퍼졌고 시장도 제법 들어서 있었다. 라오에서 처음 보는 활발한 풍경이었다.
그때 알아챘어야 했다. 승객들은 대부분 그 근방에서 내렸고 그들은 텅 빈 차로 한 시간 반 가량을 더 들어가야 했다. 싸반 버스 터미널에 내렸지만 아까와 같은 북적임은 사라졌다. 정직한 태양의 열기는 정수리로 곧장 내리꽂고 있었고 그들은 새로 도착한 도시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했다.
대낮 길거리는 지린 오줌 냄새, 음식 쓰레기 비린내로 걷는 이의 발걸음을 지치게 하고 있었다. 그래도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다. 이 도시에 흥미로운 것이 없음을 눈치챈 아이가 곧장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빨리 좀 와!"
"가잖아~"
"뒤에 차 오잖아~ 옆으로 붙어!"
"너는~ 아빠 눈에 보이게끔 걸어야 할거 아니야? 뒤쳐져서 그렇게 걸으면 내가 어떻게 해, 응!"
"알았다고!~"
걷기 싫어하는 아들의 온갖 인상을 다시 뒤로하고 걷고 또 걸었지만 지친 발걸음을 붙잡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가이드북이 추천한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까지도 가 보았지만 아이의 표정은 '이걸 보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해. 바보 아냐?' 싶은 의구심이 가득해 보였다. 마치 자기에게 그러는 것 같았다.
그도 당황스러웠다. 한마디로 도시가 죽어 있다고나 할까. 예상 밖의 풍경이었다. 한 시도 그곳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한 시간이나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기엔 너무나 지쳐 있었다. 우선 아이부터 달래야 했다.
"있잖아. 여기서 하루 묵어가기에는 너도 보다시피 뭐 특별한 게 없지, 그지?"
"응"
"그러니까, 우리가 이러느니 우리가 조금 더 힘을 내서... 음... 다른 도시로 아예 떠나는 건 어떨까?"
그에게 특별한 것과 아이에게 특별한 것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를 설득하는 게 급선무였다. 아니 설득이라기보다는 자기 식으로 끌고 나가려는 것이었다.
결국 시큰둥하고 있는 아들을 일으키는 길은 차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쎄옴이라도 타고 가자고 했지만 이것 또한 잡기가 만만치 않았다. 삼십 분을 걷다가 겨우 쎼옴 하나를 불러 세웠는데 막상 돈을 주고 타려니 너무나 가까웠다. 아까웠다. 하지만 아이의 표정을 감당하기 버거웠다. 그토록 멀던 길이 눈 깜짝할 사이에 오고 말았다.
오후 버스는 마감된 상태였다. 터미널은 제법 규격을 갖추고 있었는데 아침 일찍 출발하는 장거리 행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시내로 되돌아 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터미널 옆에 있는 시장으로 황급히 발걸음을 돌렸다. 봉고 차 한 대가 대기 중이었는데 그걸 타야겠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타켁으로 가는 차량이었다. 여학생이 단체로 타고 있었는데 운전기사가 딸내미와 친구들을 여럿 태우고 여행을 가는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오르고 내리는 승객들로 내내 복잡했고 옆자리 파트너도 심심치 않게 바뀌었다. 해는 저물어 선팅 한 차창은 안 밖으로 검게 물들고 있었다. 그들은 밤늦게서야 어느 대형 주유소에 우두커니 내리게 되었다.
"버스 터미널이 아니지 않으냐?"
그가 아무리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여기가 버스 터미널이다."
기사는 같은 이야기만 반복했다. 싸반에서 힘겹게 걸었던 탓인지 그의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텅 빈 공터를 빠져나와 잠잘만한 곳을 찾아 걸었다. 시내 중심까지는 꽤 멀었고 다음 날 타고 나갈 버스를 위해 터미널 근처까지만이라도 걸어보자고 했다. 하지만 이내 계획을 접고는 근처에 가까운 숙소를 잡기로 했다.
숙소는 생각보다 비쌌다. 에어컨 딸린 방은 선풍기 방보다 돈을 더 줘야 했다. 100K, 130K... 결국 두세 군데 물어보고 나서 선풍기만 있는 숙소를 70K에 깎아 방에 들어섰다. 어차피 눈 감으면 어디서 자는지 모른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곰팡이에 녹슬어 처절하게 벗겨진 벽지도 눈 감으면 시야에서 사라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탁자 위에 가계부 책자를 올려놓고 그는 잠을 청했다. 잠만 들면 더운지 마는지도 금세 잊힐 거라고 후렴구처럼 읊조렸다. 공기는 후줄근하고 방안은 뜨거웠다.
그는 별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반동의 밤하늘과 술 취한 듯 퍼져 흐르는 산 내음을 못내 그리워하며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