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by 아빠를 여행하다

_ 24.


"디스 이즈 노 굿!!!"

"유 슈든 해브 솔드 더 티켔!"

"디스 이스 노 굿!!! 노 굿 앳 올!!!"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유 아 더 세임! 올 더 세임!! 애브리 바디 이즈 세임!!!"


진통을 참다 터진 양수처럼 분노가 철철 넘치고 있었다. 아침 일찍 도착한 루앙남타. 그는 느긋하게 국경으로 가는 차에 오르길 기대했다. 언제든지 부르면 차에 올라 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무비자 기간이 꽉 채워진 날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날 국경을 넘어야만 했다. 물론 기간을 초과하는 경우 약간의 벌금을 낸다는 정보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발생하게 될 번잡스러움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따라서 별 탈 없이 정해진 시간 안에 넘고자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매표소 직원이 표 두 장을 끊어줬다. 정확한 출발 시간을 다시 물었지만 창문에 새겨진 11:00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가리키고 있었다. 예정된 시간이 삼십 분이나 지났어도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직 오전 시간이었고 연착이야 늘 있어왔던 일이었다. 하지만 12시 정오가 지나도록 모두들 꼼짝 않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수상쩍었다.

결국 낌새를 눈치챘다. 보텐행 표지판이 터미널 높이 멀쩡히 매달려 있었고 그 밑에 봉고 승합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그 근처를 얼씬 거리는 이는 없었다. 운전기사는 배를 내밀고 자동차 키만 빙빙 돌리면서 다른 기사들과 잡담을 하고 있었다. 한 시간 전에 그에게 다가와선 어디 가냐고 슬쩍 물어보기까지 했었다. 잠시 후 매표소 직원이 밥을 먹으러 가려는지 자물쇠로 문을 잠그고 있었다. 그는 이건 아니다 싶어 밥 먹으러 가는 직원을 팔로 붙잡았다.


"왓 타임 이즈 보텐?"

"왓 타임 더스 더 버스 스타트?"


직원은 그저 기다리라는 표시만 했다. 두 손을 차분히 가라 앉히는 표시를 했다. 그렇게 까지 하는데 별 탈이 있으랴 싶었다. 송테우를 타고 한꺼번에 몰려드는 환승객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참 후 매표소 직원이 돌아오자 표를 끊으려는 현지인들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다. 초조한 그는 그들에게도 어디 가냐고 물었다. 보텐 가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과 뒤엉켜 긴 줄을 기다린 끝에 다시 매표소 직원과 대면할 수 있었다. 그때 그 눈빛에서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늦은 감이 있었다. 첫날 도착할 때부터 그들 눈빛을 잘 읽었어야 했다. 보텐 가는 시간과 그 여부를 물을 때마다 그들은 슬쩍슬쩍 한시 방향으로 시선을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했었다. 이점을 각별히 주목해야 했다. 게다가 운전기사가 열 배나 되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슬쩍 부르면서 "지금 보텐 가자"는 수작을 걸었었다. 그때 적확히 대응했어야 했다. 보란 듯이 버스표를 보여 주면서 사적인 접근으로 외면할 일이 아니었다.


"왓 타임 이즈 보텐!"


그의 목소리는 고조되고 있었다.


"왓 타임!"

"와이 더 드라이버 스테이 데어!"

"와이!"


결국 그는 이것이 모두 훼이크라는 것을 확신했다. 거짓 수작이었다. 국경 넘는 버스를 타려면 십여 킬로 떨어진 남부 터미널로 가면 됐었다. 그는 변경까지 가서 직접 발로 넘는 루트를 택했기에 이곳에서 운행 여부를 물었던 것이다. 만약 보텐행 운행을 안 하면 안 한다고 알려주고 승객 숫자가 부족하면 출발 못할 수도 있다고 미리 알려 줄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간다고 했고 그러다 승객이 제 풀이 꺾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다 지치면 10배 이상이라도 내고 타게 하려고 외국 여행객을 볼모 삼아 수작을 펼치고 있었다. 기사, 매표소 직원, 터미널 매점 관리인, 다른 기사들, 심지어 그 지역 현지인들은 이 모두를 알고 있는 듯했다. 그들 모두가 공범이었다.

그는 분노했다. 아니 분노하기로 작정을 했다. 급기야 매표소 앞을 가로막고 표를 사고자 하는 현지인들을 뒤로 내 몰았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스스로도 놀랐다. 우선 매표소 직원부터 호통을 쳤다.


"와이 디유 셀 더 티켔!"

"와이?!"


그들은 영어를 알아듣지는 못해도 곧 잘 뉘앙스는 이해하는 눈치였다.


"이프 유 돈 고 투 보텐, 유 슈드 해브 톨드 미"

"이프 유 돈 고 투 보텐, 유 슈든 해브 솔드 더 티켔!"

"유 슈든트!"


매표소 직원이 상황을 눈치채고 자세와 태도를 급 바꾸기 시작했다. 밀린 손님들에게 표도 내줘야 하는데 어디서 온지도 모를 이방인에게 가로막혀 일이 꼬인 상황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급기야 표를 안 팔겠다고 그에게 요금을 내 던졌다. 이로써 그는 철저하게 확인했다. 계획된 사기였다는 것을.

던져진 지폐를 집어서 눈 앞에서 확 찢어 버리고도 싶었다. 하지만 수중에 남은 돈은 그것 말고는 없었다. 일정에 맞춰 쓰느라 현지통화는 다 쓰고 한 푼도 없었다. 그녀가 던진 지폐를 티 안 나게 거머쥐고는 모두 들으라는 듯이 터미널 전역을 바라보며 일일이 호통을 쳤다. 손가락으로 운전기사를 제일 먼저 지목하며 재판을 벌였다.


"유!"

"노 굿!"

"노 굿 앳올!"


그런 다음 은근슬쩍 끼어들어 참견하던 매점 관리인과 다수의 기사들을 향해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침을 튀기며 고함을 쳤다.


"유 투!"

"노 굿!"

"유! 유!"

"노 굿!"

"디스 이즈 노 굿!"

"노 굿!!!"


아들은 이것이 대체 무슨 조화인지 몰랐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왜 자기 아버지가 저기서 저러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 목소리가 평소에 크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큰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더 큰일이 벌어질까 봐 가슴 조리며 심장은 콩당콩당 거리고 마음은 조마조마하고 머리는 어리둥절해지고 있었다.

그는 아이가 쳐다보는 시선까지도 한 편으로 인식하면서 더욱 큰 소리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순간 저 자신이 어렸을 때 아버지가 부당함에 분노하며 사람들을 꼼짝 못 하게 하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텔레비전을 사러 동네 가전 대리점에 갔었는데 직원이 하자가 있는 제품을 몰래 팔려다 아버지 눈에 뜨이게 됐다. 그때 아버지가 분노하며 판매원들을 크게 나무라셨는데 그때 호통 치던 모습이 지금 자기 모습과 유사하다고 느꼈다. 직원들은 자리에서 꼼짝도 못 하고 일장연설을 들었다. 아이 눈에 보기에도 그럴 만했다. 명백히 대리점 잘못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다 짚어 치우라고 호통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나가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직원들을 부드럽게 다스려 마지막엔 정품 텔레비전과 함께 갖가지 선물과 옵션들을 덤으로 받아내셨다. 그날 아버지는 직원들에게 90도 절을 받으며 왕이 되어 당당히 걸어나가셨다. 하지만 그는 아니었다. 그는 이런 사람들과는 상대도 안 한다고 엄포를 놓고는 대책도 없이 걸어 나갔다. 아이를 황급히 부추 켜 세워선 숨을 씩씩 거리며 발걸음이 무너지랴 터미널을 빠져나갔다.

시간은 오후 2시를 꼬박 넘기고 있었다. 대책도 없이 무작정 뛰쳐나온 터라 그의 머리는 혼란스러웠다. 아이는 여전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어지럽고 복잡하긴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겐 시간도 현찰도 뾰족한 대책도 여유도 그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본인이 격분하고 분노한 것을 잘했다고만 여기고 아이가 듣건 말건 열심히 떠들어 대고 있었다.


"디스 이즈 노 굿! 이건 아니야! 아니라고!"

"사람한테 나쁘다고 평가하고 싶진 않지만 저건 나쁜 거야! 아주 나쁜 거라고! 정말 나빠!"

"..."

"영~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니까! 사람의 신뢰를 볼모 삼아 농락하는 거잖아! 아주 나쁜 사람들!"


그가 아무리 떠들어도 아이는 지레짐작만 할 뿐 정확한 내역을 알지는 못했다. 어찌 보면 순식간에 뭔가가 탄로 난 것처럼만 보였다. 그래도 뭐가 뭔지 잘 몰랐다.


'이제 어떻게 하지?'


그는 복잡했다. 무조건 그 길로 국경을 넘는다는 생각 밖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를 돌이켜 보건대 당신이 화가 나셨을 때 누군가 옆에서 "칼에 올라서라!" 그러면 당신은 정말로 칼 위에 올라서는 그런 분이셨다. 지금 그가 그런 아버지와 똑같이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날이 바짝 서 있었다. 걸어서 국경까지 걸어갈 기세였다. 아니, 실제로 그러길 작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경까지는 65km. 걸어서 꼬박 12시간 넘게 걸리는 길이었다.

그는 일단 걸었다. 그러다가 달리는 차량을 잡아채서 국경까지 가야겠다고 막연하게나마 행동설계를 짜고 있었다. 아직도 전체 스토리가 이해가 안 되는 아이는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주저하면서 멀리 뒤처져 있는 아이를 향해 그가 그만 또 버럭하고 말았다.


"이럴 때 빨리빨리 움직여야 하는 거 몰라!"

"..."

"상황이 이해가 안 돼!"

"..."

"서둘러야 할 때와 아닐 때를 구별 못해!"

"..."


그는 이야기하면서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애가 대체 무슨 죄냐'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다급했다. 자기 뜻대로 안 되는 세상에 분노했고 자기 의지대로 되는 세상에 더욱 다가가려 했다. 길거리는 한적했다. 크리스마스이브와는 전혀 상관없는 동네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한적했다.


'대체 이들 중 누가 보텐까지 갈 것인가?'


그는 무조건 달리는 차를 붙잡기로 했다. 적어도 삼거리까지만이라도 가야 국경 분기점으로 움직이기 쉬웠다. 그러다가 고급 승용차 한 대가 길가에 정차 해 있길래 차문을 열고 무조건 앞으로 가자고 애원했다. 말이 애원이지 거의 납치하는 형극이었다. 당황한 차 주인은 "어디 가냐?"라고 물었다. 보텐이라고 했더니 자기는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삼거리까지는 갈 수 있다고 정중히 말했다.

그는 삼거리에서 곱게 내려야 했다. 황급하게 또다시 히치 하이킹을 시도했다.

문득 반동에서의 그 날이 떠올랐다. 양괄식이라고나 할까? 급하게 종이 박스를 주어 "BOTEN"이라 적었다. 차들은 시멘트를 나르는 화물차 몇몇을 제외하곤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현지인들만이 뜨문뜨문 눈에 띌 뿐 모래 바람만 날리고 있었다. 가방을 잔뜩 짊어진 이방인 두 사람을 오토바이에 태우기엔 설정 자체가 어색해 보였다.

태양은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고 있었고 땡볕에 서서 차 오기만 기다리는 것은 무모해 보였다. 일단 몸을 움직여 걸어 나갔다. 걷고 또 걷고 또 걸었다. 뒤쳐져 있는 아들에게 빨리 오라고 호통을 치면서도 그는 또 걸었다. 차 소리만 들리면 뒤 돌아 종이 박스를 높이 쳐들었다. 며칠 전만 해도 꿈길을 노닐듯 자전거로 달렸던 그 길을 이제 배낭을 짊어지고 두 발이 부르트도록 걷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참 아이러니했다.


"나 원 참, 사는 게 이렇게 뜻대로 안 된다! 나 원~"


결국 바나나 열매를 따다 손에 송진이 잔뜩 묻었던 그곳을 지나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이에게"빠나나다!"라고 외친 것은 그의 여유일까 야유일까. 스스로도 미친놈의 농락이라고 판결하고 있었다.


'이런 일이 생길 줄 누가 빤히 알았나? 빤 하나? 빠나나? 안 빤하나!"


시간은 3시를 넘어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그날 밤 어디에 머리를 두고 잘지 상상해 보았지만 아무 곳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결정만 하면 되돌아갈 수도 있고 아무 곳에서 잘 수도 있었지만 그야말로 불가능한 시나리오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사건을 두고 부조리라 사전에 새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 길로 곧장 걸어서 국경까지 밤새도록 걸어가겠노라고 다짐했다. 아침에 국경 문이 열리면 미안하다, 내가 이제야 왔다고 이야기하겠노라고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직 미쳤다고 스스로 판결을 내렸다.

그는 자신과의 관계가 조금 진정되자 조금씩 아이에게 사건의 전말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아이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아빠!, 나는 라오스 사람들이 진작부터 답답했어"

"그래?"

"응! 그래서 아빠가 자꾸만 라오스 사람들 여유롭고 느긋하다고 칭찬할 때마다 수긍이 잘 안 갔어"

"그래?"

"답답하잖아. 좋다 나쁘다 말도 잘 안 하고"

"넌 다르게 보고 있었다 이거지?"

"응!"

누구나 보는 눈이 다르고 느낌도 다른데 그의 의견은 사견이 되고 편견도 되고 있었다. 메콩강 유역에서는 체면이야말로 사람들이 목숨처럼 중요시하는 덕목이었다. 그러다 보니 좋아도 과연 좋은 척하는 건지 싫어도 진짜로 싫은 건지 때론 모호할 때가 있었다. 어떤 때는 가격을 확 깎아도, 안 된다고는 하면서 웃고 있다거나 오히려 더 줘도 '좋다', '감사하다' 표시를 하지 않았다. 안 된다면 차라리 불쾌한 티를 내서라도 경계선을 제대로 긋고 알려주는 것이 오히려 덜 답답할 텐데 말이다. 그들이 외국인에게 절대로 화를 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온순해서라기 보다는 이로써 그들 체면을 잃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들 앞에 차가 한대 섰다. 운전수를 보니 중국인이었다. 보텐까지는 아니고 그쪽 방면으로 간다고만 했다. 어디든 태워만 준다면 고맙겠다고 했다. 제발 태워만 달라고 했다.

그러면 돈을 조금 달라고 했는데 그는 남은 돈을 다 주면 어떻게 될지 몰라 미안하지만 가진 돈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앞 좌석에 앉은 운전수 부인이 입으로 "메이요~"를 주절거리고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타라는 신호도 없이 한참을 망설였다. 그쯤이면 타라는 표시로 알아듣고는 "쎄 쎄"를크게 외치고 뒷자리에 덥석 올라탔다. 삼거리까지만 가는 줄 알았더니 한참을 더 달렸다. 그래서 돈을 달라는 거였다고 생각했다. 이런 속도면 오늘 국경을 넘는 것은 문제없을 듯했다.


'세상 참~'


갑자기 전세는 역전되고 있었다. 그는 차 안에서 두 주먹을 말없이 잡아당기며 아들과 쾌재를 불렀다. 그렇다고 박신거릴 수는 없었다. 돈도 안 내고 탄 일종의 미안함 때문에라도 가만히 숨 죽이고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두 눈을 고스란히 창밖에 고정시켰다.

한참을 달려 국경에 거의 다 왔다 싶은 지점에서 그들이 "여기까지~" 라며 내려줬다. 내리면서 고마움의 표시로 아들이 그렇게 먹고 싶어 했던 그래서 어젯밤 국경을 떠나기 전에 사준 쵸코 크래커를 가방에서 꺼내 선물로 건 냈다. 꽤 아쉬웠지만 아이와 그러기로 차 안에서 입을 맞췄었다.

그는 그곳이 국경이라고만 생각했다. 도로 표지판을 배경으로 아이와 사진까지 열심히 찍었다. 그러나 착각도 잠시. 아직 19km가 남아 있었다. 아이는 아빠가 너무나 좋아해서 이상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스스로 또다시 우물에 빠졌다. 다 왔다고 축포를 터트렸는데 착각도 착각 나름이었다. 자책했다. 아직도 고비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19km?'

'19km...'

'어떡하지?'


지치고 힘들었지만 정신무장을 다시 했다.


'또 걷는다.'


걷고 또 걸어 보았지만 기껏해야 2km가 고작이었다. 루앙남타에서 대체 무슨 수로 걸어오겠다고 했는지 대책 없는 무모함은 어디로 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충만했던 사기는 슬그머니 쪼그라들고 있었다.

국경마을은 더욱 소박해지고 있었다. 전통 가옥들이 소와 닭들 사이에서 듬성듬성 어우러질 뿐 '국경이 대체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 무관심한 현지인들만 눈에 뜨일 뿐이었다.

1시간가량 꼬박 걸었던 길가에 차가 한대 섰다. 걷는 모습을 보고 그들을 태워주겠다고 했다. 또다시 중국인들이었다. 그래도 약간이라도 돈이 있으면 달라고 했는데 손바닥을 바지에 문지르며 없음을 표시했다.


'호주머니에 남은 돈을 그냥 내줬어야 했나'


약간의 갈등은 있었지만 국경을 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생명보험처럼 꼭 쥐고 있었다. 결국 국경 입구까지 그들을 데려다주었다. 국경 입구서부터는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를 어마어마한 화물트럭들이 운집해 있었다. 조금씩 전진할 때마다 모래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거의 서다시피 한 트럭들 사이를 가슴팍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국경 건물로 향해 갔다.

시간은 벌써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행히 중국으로 넘어가면 한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어찌 됐건 잘 왔다고 위로하고 있었다. 이즈음 되면 샴페인을 터트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국경은 여전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잘못 한 게없어도 뭔가 트집이라도 잡힐 것만 같았다. 그때를 예비해야만 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현지인들은 여권 사이에 일종의 급행료를 꼬박꼬박 넣어서 창구로 들이 밀고 있었다. 그도 그래야 하나 싶은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견뎌보기로 했다. 너무 힘겹게 국경에 와서 조금이라도 쉽게 통과하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군의관이 여권을 펼치고 꾸물거리는 시간이 하루 종일처럼 느껴졌다.

통과.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곳을 벗어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내 중국 국경이 나타났다. 공안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지만 좀 더 화통해 보였다.


"한궈러?~"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공안이 좀 더 호기심을 갖는 듯했다. 여권을 들고 따라오라고 해서 이건 또 뭔가 싶었는데 친절하게 입국 신고서를 작성하라고 안내해 줬다.


'예전에 우리들도 꼬박꼬박 썼었지'


공항에서 출입국 신고서를 쓰던 시절을 기억하면서 마치 그때로 돌아 간 기분이었다. 다행히 중국은 비자를 만들어 갔기 때문에 염려는 조금 덜 했다. 다시 도장 꽝.

이제 중국으로 나섰다. 비까 번쩍한 시멘트 건물이 줄줄이 펼쳐지고 있었고 야자수와 열대식물들로 곱게 단장된 도로가 뻗어 있었다. 번듯한 차들이 나돌아 다녔고 인도와 차도가 멀쩡히 구별되어 있는 게 신기했다. 길 따라 흩날리는 흙먼지는 어렴풋이 사라지고 그들은 아스팔트 위를 단정하게 걷고 있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한 듯한 기분이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보니 그 날은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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