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25.
국경을 넘은 것을 천만다행이라 여겼다. 그들은 모한 시내에서 봉고차를 잡아 타고는 그날 밤 멍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현대 문명 속에 머리를 눕혔다.
터미널에서 매표와 탑승은 빨랐고 배차 시간도 정확했다. 좌석은 여전히 만원이었는데 다닥다닥 붙어 앉은 승객들 사이로 담배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차창 밖을 바라보니 오가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음을 실감했다.
한 숨 돌린 그는 또다시 아이에게 몹쓸 짓을 했다 싶어 심히 괴로웠다. 머리로는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지긋지긋했다. 그의 사회적인 표정은 훨씬 부드러웠다. 오히려 대중 앞에서 얼굴을 붉힌다거나 버럭 하는 일은 드물었다. 기분이 이상하더라도 안정된 모습을 지키려고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가정에서의 얼굴이야말로 진짜 모습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이를 포함한 가족들이 희생양인 셈이었다.
그는 허벅지를 꼬집고 있었다. 국경을 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긴장하는 것을 아이에게 분노와 조급함으로 쏟아내는 것이 창피했다. 뼈 속까지 들어 찬 습관 때문일까. 정작 그가 분노하고 대적해야 할 대상은 그것이었다. 이것이 고스란히 대물림된다는 것이 싫었다. 터미널에서 그가 취한 몸짓, 표정, 목소리는 제 아버지의 것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야,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인데?'
그는 익숙한 동작을 취하면서도 동시 녹음을 하고 있었다. 찰나지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대를 이어 가는 이 녀석은 지극히 빠르고 지독했다. 반복되는 굴레를 뚫고 자기 모습을 바꾼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그가 상대해야 할 필생의 작업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저 자신의 표정을 바꾼다는 것 하나만도 긴 시간이 필요했다. 저가 웃으려면 먼저 저를 바라 본 이가 웃어줘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에게 달리 경험된 시간이 요구되었다. 결국 그것은 과거를 뜯어고치는 일이었다. 누구에게 고양이는 고양이이고 아빠는 그저 아빠여야 하는데 어느 누군가 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세상 누구보다도 무서웠다.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그가 국경을 통과하면서 느끼던 기분은 아마 비슷한 몸의 반응일 거라고 여겼다. 두려운 대상 앞에 잘 못한 것이 없어도 뭔가를 검사받는 기분. 피부 조직과 두뇌조직이 알아서 반응하는 것 들. 게다가 그는 저 자신에게 뼛속까지 들어 찬 습관과 행동이 아이를 조정하고 비판하고 비평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게 몹시나 못마땅했다. 그토록 지적받고 살아서 힘든데 아이에게 똑같이 대하고 있는 것까지도.
어릴 적 그는 아버지에게 돈 달라고 하는 것도 두려웠다. 너무 무서웠는지 나중에 어른이 되어 기도를 해도 영 돈 달라는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그의 기도는 언제나 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그래서 저 자신의 응징과 반성으로 이어졌고 결국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야 말로 자신이 행해야 할 급선무다라고 주입하고 있었다. 저를 돕는 신, 등 뒤에서 밀어주는 신은 어감으로도 무척 낯설었고 삶에서 드러나는 저의 부족함이나 나태함, 태만이나 불성실은 결코 신에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스러운 모습이었다. 그의 노력과 공로는 신과 자신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지침서였으며 저를 감시하는 절대적인 그림자, 절대자의 표상은 그의 묵시적 자아가 되고 있었다.
'과연 나는 이 <우주>를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고 있는 걸까?'
'내가 바라보는 이 <우주>에 대한 핵심 신념은 뭔가?'
'<우주>라는 전체가 <나>라는 일부를 도대체 어떻게 바라본다고 여기는가?'
그는 저 스스로를 바라보는 느낌이 우주, 조물주에 대한 느낌과 닮았다는 것이 무척 싫었다. 완벽해서 도움이 필요 없는 저 자신과, 그렇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는 우주가 형성된다는 게 거슬렸다. 게다가 아무리 저를 바라보고 돕는 절대자가 있다손 쳐도 엉터리 두려움이 개입한다면 불필요한 이야기가 전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영 찝찝했다.
'아무리 절 믿고 지지하는 절대자가 있다 쳐도 비합리적인 신념이 가로막는다면 우주와 나와의 양자 관계는 신념이지 실제는 다른 것 아닌가? '
우주도 조물주도 실체와는 전혀 다른 관념 속에서만 제 각각의 모습으로 드러날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로써 자기 인생에 대한 실체도 관념 속에나 존재하는 가짜가 탄생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 내리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인생을 써 내려가는 시나리오도, 과거의 해석도 다르다고 여겼다.
따라서 그가 얻은 공식은 오히려 단순했다. 누군가 나를 거절해서 뻥 차였는데 "그래서 너는 안 돼!"라고 스스로 주입했다면 훼방꾼이 다시 수작을 걸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그가 인생에서 뼈아픈 실패를 몇 차례 겪고 보니 그랬다. 그때마다 그랬다. 스스로 던진 대사에 저가 빠지는 것이었다.
<너는 그래서 안 돼!>
그가 택한 일련의 시행착오는 마귀들이 온갖 전략을 짜서 귀찮게 따라다니며 못 살게 굴고 괴롭힐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다. 마음속에 이미 훼방꾼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녀석들은 <너는 그래서 안 된다>는 신념에 어울릴 만한 정체성과 지위를 불어넣고 있었다. 이 같은 명령은 실패의 기로에도 등장하고 삶의 고비에서도 등장했지만 궁극적으로 아빠의 얼굴 표정을 바꾼다는 것 역시 이 녀석과 벌이는 동일한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너는 그래서 안 된다>는 과거와의 유착을 도려내지 않는 이상, 지금 이 자리에 이어진 항상성을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의 기초 노력은 한다고 보았다. 좋은 남편, 좋은 아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가 <그래서 안 된다>는 확정적 과거를 지목한다면 결국 현재형의 수고와 노력은 운명으로 정해진 결과가 뻔한 승부가 되기 때문이었다.
부모와의 경험과 과거의 기억이야 말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이라면 <너는 그래서 안 된다>는 명령은 바꿀 수 없는 것을 지목하는 그 자체로서 이미 경기는 끝난 게임이 되곤 했다.
그는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승객들로 가득 찬 틈바구니 속에서 여전히 굴하지 않고 가방을 끌어안고 잠자는 아들을 바라보며 저 스스로 어색한 미소를 다시금 연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