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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족속이다'라고 결론지었는데 그는 왠지 모를 향수를 앓고 있었다. 보다 익숙한 교통 체계, 보행 표지판, 정형화된 상거래 방식 등등. 이 모든 것이 안락하고 편리해야 함에도 왠지 기쁘지가 않았다. 아스팔트로 좍좍 뻗은 신작로를 달리는 것도 몸에 썩 와 닿지가 않았다. 제 뜻대로 간다는 것이 마냥 흡족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라오스에서 불투명하고 허술하고 이해할 수 없는 온갖 기억들을 새삼 떠올렸다. 무엇보다도 뽀얀 흙먼지가 그리웠다. 흙을 밟고 산다는 것이 그런 것이라고 느꼈다. 그랬다. 그는 흙을 밟고 있었다. 흙먼지를 코로 마시고 있었고 입으로 먹고 있었고 잠 잘 때도 그랬다. 그 무수히 많은 닭들과 흙먼지를 헤쳐가며 우주 한 모퉁이를 사정없이 떠돌고 있었다. 그들은 수레바퀴 속에서 삐걱거리더라도 흙을 딛고 있었고 투덜거리더라도 흙먼지 위를 걸었으며 뒤척거리더라도 그 위를 넘나 들었다.
지나온 길은 특별히 어디를 가보았다고 딱히 내세울 것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오히려 약이 되고 기운이 되는 것은 하루 해와 함께 일어나서 열과 빛 에너지 아래에서 진통하고 공명하며 달과 함께 저물고 소멸하는 몸의 기억들이 가공되지 않는 자연의 굴레 속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렇지만 자연이야말로 쓸데없는 곳이 되어 가고 있었다. 도시 문명에서 시골은 생산적이지 못한 장소였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 값 비싼 곳이 되고 있었다. 돈이 안 되는 곳을 떠나 돈 되는 곳에서 재화를 쌓아야 결국 돈은 안 되지만 돈이 있어야 돌아갈 수 있는 곳으로 매우 부자연스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것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돈이 되고 안 되고 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풀벌레, 흙먼지, 에코와 오르가닉과 같은 환경 생태계의 이슈가 아니라 우리가 자연스럽게 회의하고 의심하고 방황하는 것을 두렵게 만든다는 데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는 심심하고 따분해서 온몸을 비트는 구간이 있었다. 어릴 적만 해도 그러한 지루함에 못 이겨 하루를 잠으로 접는 나날들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런 날이 대부분이었다. 텔레비전을 틀어도 재미난 것이 없고 같이 뛰어 놀 친구도 없고 혓바닥을 달콤하게 적셔줄 먹거리도 마땅치 않았던 나날들이 있었다. 오히려 이것은 활력소가 되고 원동력이 되었다. 누군가와 놀기 위해 또 무엇을 실행하고 얻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가는 발판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시건장치를 사회에서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른이 되고 사회적인 틀과 프레임에 맞춰지면서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야말로 금기 시 되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돈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데 신경 쓸 여유는 사라졌다. 아이들에게도 젊은이들에게도 좌충우돌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 함에도 이는 사회적으로 허락되지 않는 불문율이 되고 있었다. 방황은 부자연스러운 규칙이며 회의와 의심은 인생에서 불필요한 절차였다.
학창 시절에도 잔디밭에서 뒹굴고 막걸리와 몸부림하며 이런저런 개똥 철학과 씨름하고 회의하고 의심하고 방황하던 시간은 되짚어 보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할 일이 없다거나 의도적으로 할 일 없이 쉰다거나 하는 일은 도태되기 시작했다. 저 자신을 두드리고 망가져 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야 말로 자연스러운 삶의 성장 과정임에도 그것을 주장할 시간조차 사라지고 있었다.
그가 속한 사회는 그랬다. 그러면서 그는 점점 회의와 의심과 방황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이중적 의심이 아닌 고독할 의심을 할 여유조차 두려워했다.
그는 결국 두 가지 싸움과 충돌했다. 이 같은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거부하는 사회를 다시 거부하는 싸움이 추가된 것이었다. 그 싸움은 소외를 뜻하는 것이었고 대중들로부터 격리되는 아픔을 피부로 적시는 수순이 되었다. 그리고 저 자신과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전쟁터가 되었다.
그도 그렇게 길들여졌지만 그러면서도 도시 문명의 규칙과 대중 매체에서도 한껏 달아난 그곳에서 따분한 일상과 낯선 공간을 마주 한다는 것 역시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특별한 의도나 학습 목적에서 벗어나 부모와 아이가 그야말로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힘겨운 미션이 없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기초 신진대사라는 것을 직접 몸으로 되새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