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28.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숙박업소에 보증금이 붙기 시작했다. 그는 다음날 일찌감치 버스를 타러 나가니 체크아웃하기 전에 여권을 미리 받으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렇게나 당부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아무도 없었다. 24시간 사람이 지키고 있다고 걱정 말라고 했는데 믿는 게 아니었다. 계단 아래 비스듬한 모퉁이에 누군가 숙박 등기부를 열어 보고 여권과 보증금을 내주기를 기대했건만 아무도 없었다. 숙박계 쓸 때부터 철저히 단도리를 쳤어야 했다고 깊이 후회했다.
"야아 아~ 또다시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어떻게 하지? 이럴 땐!"
"그러게~"
"지금쯤 터미널로 가야 징홍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데~ 그게 제일 싼데~"
그랬다. 멍라에 도착하자마자 확인 한 바로는 새벽 첫 차가 제일 저렴했다.
"물론 늦더라도 차는 많아. 어제 보니까 차가 두 시간마다 한대씩 있더라고. 하지만 일찍 일어나 서두른 보람이 없잖아. 이게 뭐냐, 대체?"
"으으으, 나도 모르겠다~ 아빠가 잘 알아서 하겠지 뭐~"
"야~ 넌 참 마음 편하다~ 부럽다! 부러워~"
"그럼 날 아빠 시켜 주던가~"
"어쭈구리~"
"아! 아빠! 아파, 아파~ 목~"
그는 다시 한번 아들 목을 장난 삼아 비틀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이렇게 할까? 돌을 던져서 유리창 하나를 깨. 그러면 사람들이 막~ 뭔 일이냐고 불을 켤 거 아니야? 그러면 그때 우리도 뭔 일이냐고, 이 숙박업소 주인이나 관리인은 어디 있냐고 막 떠드는 거야~ 그러면서 막~ 막~ 방 방마다 방문을 꽝꽝 두드리면서 사람 살려! 사람 살려! 마악~ 그러는 거야! 막~"
그는 계단 아래에 붙어 있는 쇠창살을 손으로 잡고 마구 흔들어 댔다.
"아빠, 쫌~ 대체 왜 그래?!"
아이가 시끄럽다고 말렸다. 의도치 않게 장난치다 나온 동작인데 순간, 철창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누군가 안에서 자고 있었다. 한 젊은 여자가 왜 이제야 불렀냐는 듯 귀찮아하면서 이불을 천천히 들춰내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 사람이 자고 있을 줄은 아니, 숨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이는 입을 한 손으로 틀어막고 뭘 크게 잘못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기쁨과 놀라움이 두 눈을 휘 둥그레 휘감고 있었다.
"거기 있었는데... 그걸 몰랐네~"
중국말이 서투르다 보니 여기서도 소통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불통의 한을 또다시 감수해야 했다.
"진작에 두드려 볼 걸... 이럴 줄 알았으면..., 나, 원, 참, 괜히..."
그는 사서 걱정을 했다 싶었다. 스스로 속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걱정을 내려놓자고 다짐했는데도 염려는 여전히 그를 떠나지 않았었다. 젊은 여자는 덜 깬 몸을 움직여 성큼성큼 방으로 올라갔다. 없어진 물건은 없는지 파손된 집기는 없는지 확인하고 내려와선 여권과 보증금을 돌려줬다.
여행 중에 겪는 가장 고된 훈련 같은 것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기다림인 것 같았다. 제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한계 상황에서 자기 마음을 돌보고 지켜가는 것이야말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걱정을 안 하겠다고 다짐해봐야 소용은 없었다. 이겨내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힘이 들어갔다.
걱정을 않기로 다짐하는 것보다, 오히려 걱정되면 걱정되는 대로 '아, 내가 걱정되는구나~' 이런 식으로 자기 마음을 비춰주고 '그래, 내가 혼자가 아니지!' 다시금 하늘 한번 쳐다 보고 얼래 주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었다. 그는 상황을 잘 살피고 더 예비해야겠다고 생각을 정돈했다. 물론 습관적인 걱정은 개나 줘버려야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 안에 사람이 버젓이 자고 있을 줄이야~ 그걸 어떻게 알았겠어? 그지~?"
이른 새벽 함께 잠에서 일어난 야자수들은 그 둘과 발맞춰 길을 걷고 있었다. 가벼운 걸음으로 터미널에 도착한 그들은 징홍 대신 멍하이로 행선지를 바꿨다. 무엇보다도 전통 재래시장을 보고 싶었다. 정확한 정보는 아니었으나 멍흔에 가면 소수민족들이 벌이는 전통 축제나 장터 풍경을 볼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러려면 우선 멍하이로 가야 했다.
징홍을 뒤로 흘려보낸 버스는 차 밭을 누비고 있었다. 보이 차로도 유명한 뿌얼이 근방이었고 그 일대에는 대지차, 생태 차, 쇄청모차, 맹송 차, 임창차 등 수많은 차 종류의 산지재배가 풍성했다. 쌀이 자라는 12 지역을 일컫어 '씹쏘옹빤나'의 중국식 음차명 '쉬솽반나'라 불리는 이 지역은 풍성한 햇살 아래 아열대 작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온통 푸른 숲을 이루고 있었다. 태국 특유의 날카로운 지붕과 처마의 사원과 주택, 그리고 태국, 미얀마, 라오어가 한데 섞인 따이 말 표기가 곳곳에 등장하고 있었다.
멍하이에 도착하니 사람들과 풍경은 더욱 재래식이 되고 있었다. 소박하고 다채로운 표정들이 검게 그을린 얼굴 윤곽에 나타나고 있었다. 터미널 풍경도 라오스에서 보여주던 한가한 틈을 꽉꽉 매워 주고 있었다. 그들은 별다른 정보도 없이 마을에 들어섰다. 도로는 의외로 넓었고 도시화가 다 된 시내 풍경이 차창 밖으로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우선 터미널 매표소에서 누군가를 붙잡고 묻고 싶었다. 멍흔으로 들어가면 잘 곳은 있는지 그다음 날 아침 시장은 정말 열리는지 등등. 하지만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결국 다음 날 아침 버스표라도 예매하려고 했으나 매표소 직원은 당일자 표만 반복해서 내밀고 있었다. "명일"이라고 한자로 쓰고 날짜까지 적어서 밀어 넣었는데도 돌아오는 것은 "금일" 차표뿐이었다. 직원은 계속해서 탑승 지점을 가리키며 지금 타라는 수신호만 전하고 있었다. 더 물어보았더니 급기야 신경질만 버럭 내는 통에 그는 아예 환불을 하고 다음 날 떠나기로 했다.
숙소는 매우 저렴했다. 물론 화장실에서 역류하는 냄새를 통제하기 위해 반쯤 벌어진 문을 딱딱한 종이로 받치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