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29.
'아빠는 대체 뭐하고 애를 저런 차림으로 다니게 하나?'
현지인들의 시선은 아이의 맨다리에 고정되었다. 걱정하는 듯한 동정심이 섞여 있는 듯했지만 혼이라도 낼 기세였다. 새벽녘은 싸늘했다. 낮에는 쨍쨍한 햇살로 마치 초여름 기온이었지만 아침저녁은 두터운 외투가 필요했다. 그는 여전히 아이와 반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예전에 추운 날씨에도 트렁크 반바지 차림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미국 친구들을 볼 때면 "쟤네 들은 안 추운가?" 이렇게 내뱉곤 했었는데 현지인들이 지금 이런 속내는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는 바람에 약간의 인지 부조화를 느끼고 있었다.
'하노이로 돌아갈 텐데 뭘~'
'산간 지역만 잘 견디면 충분히 살아갈 수 있어'
계속해서 마음을 다독이고 있었다. 아이도 현지인들 시선에 꿋꿋이 반응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주먹을 댕기며
"우리는 백 패커니까!" 구호도 잊지 않고 꺼내 쓰고 있었다.
멍라 하늘엔 별 하나 그리고 둥근 보름달 하나만이 벌거숭이 마냥 덩그러니 불을 밝히고 있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멍흔으로 가는 차편이 없다고 했다.
'아니~, 어제만 해도 표를 끊었는데 없다니...'
도대체 이건 또 뭔 조화인가 싶었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제만 해도 버젓이 자꾸만 타라던 때는 언제고 오늘은 없다니!"
아무리 이의를 제기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동일했다. 매표소 직원은 그만 괴롭히라면서 나중에는 상대조차 하려 들지 않았다. 앞서 표를 끊고 나가려던 한 아낙네가 이 광경을 쳐다보고 있다가 그에게 뭔가를 말해주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말을 걸었다.
"시내로 걸어가면 멍흔으로 가는 터미널이 따로 있어요~"
중국말이었지만 직감적으로 또 다른 방법이 있음을 알아챘다. 그녀에게 얼마나 걸리냐고 시계를 보여주며 눈짓을 했다. 그녀는 답변을 바로 못하고 주저하다가 결국 따라 오라며 손짓하고는 길을 앞장섰다. 본인이 가고자 하는 행선지가 있음에도 만사 재 쳐 놓고 친절을 베푸는 그녀가 고맙고 감사했다. 게다가 핸드백을 들고 뽀닥 구두까지 신고 있어서 그냥 걷기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새벽녘 텅 빈 신호등 앞에서 차가 오는지 두리번거리다 여러 차례 길을 가로질렀다. 그녀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다.
"쫑 꾸어런~"
"워쓰 쫑꾸어 런~"
그가 농담을 했다. 곧이어 그녀가 혼자 말로 뭐라고 뭐라고 떠들었다.
"아니, 어떻게 중국 사람이 중국말을 못 하냐. 나원 참~"
그런 논리인 것 같았다. 아이는 그가 그럴 때마다 민망해하며 아빠 옆구리를 쿡쿡 찌르곤 했다. 베트남에서도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을 때마다 그는 웃으며 "싸이공에서 왔다"라고 했다. 그때마다 오히려 분위기는 굳어졌다. 딱딱한 분위기를 깨고자 나름 농담을 날리는 것인데 더 이상의 핑퐁은 없었다. 그래도 중국사람들은 농담에 농담을 섞어 주니 덜 답답했다. 외지인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싶은데 말이 안 통해서 오히려 자기네들이 답답하다며 가슴을 때리고 있었고 그럼에도 연이은 수다가 끊임이 없었다. 그는 말로라도 이렇다 저렇다 표현을 해주니 속이 시원함을 느꼈다. 말없이 스쳐 지나간 라오스에서의 불통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그녀는 걸음을 더욱더 재촉하고 있었다. 친절한 또각 구두 아낙네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소위 빵차라 불리는 소형 승합차들이 세워진 정차장이었다. 그녀의 안내가 아니면 도저히 찾지 못할 골목 깊숙한 곳에 숨어 있었다.
"아니 대체 여길 어떻게 찾아와?"
그는 연신 감사 표시를 했다. 그녀는 운전기사에게 이들이 가는 행선지를 알려주고 이들에게는 다시 요금이 정확히 얼마인지를 재 확인시켜 줬다. 인수인계를 철저히 마쳤다. 그는 라오스에서 답답했던 체증이 어떻게든 풀리는 느낌이었다. 여전히 중국에서도 안 되는 소통의 벽을 붇잡고 두드리고는 있었지만 지금껏 달라붙어 있던 상처 난 딱지를 슬그머니 떼는 느낌이었다.
차는 10명이 채워질 때까지 꼼짝을 안 했다. 미리 온 승객들도 나머지 승객이 오기를 초조히 기다리며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하지만 차 안에서조차 담배를 피우는 통해 죽을 맛이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옷깃을 여미고는 몸으로 통하는 모든 구멍을 닫았다.
차는 본연의 목적에 맞게 가는 길에 문서도 전갈하고 부속품도 전해주고 짐 보따리도 싣고 승객들을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마침내 도착한 멍흔 시내는 아직 장이 들어설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생각하던 풍물시장이 아니었다. 주변에 사는 따이족, 하니족, 리쑤족, 야요족들이 어우러져 이런저런 볼거리로 가득 찬 곳이 아니었다. 그동안 쭉 보아온 지방 중소도시의 아침 시장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차라리 멍하이에서 둘러본 재래시장이 훨씬 크고 사람들도 번잡했다. 좀 더 알아보고 움직일걸 하며 후회했다.
아직 해뜨기도 전이라 새벽 찬기운이 으슬으슬 두 다리를 시리게 했다. 그들은 양지바른 곳에 서서 태양이 훤히 떠오르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안 되겠다며 교차로로 나가 추위를 달랠 겸 우육면 한 그릇씩을 먹었다. 요기를 채우면서 더 이상 이곳에서 별 볼일이 없으니 다시 멍하이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들은 용변 볼 곳이 마땅치가 않아 산에서라도 해결할 요령으로 뒷동네 산 쪽으로 올라가자고 했다. 가는 김에 사람 사는 골목길을 돌아 스투파가 서 있는 사원 입구까지 올라갔다. 용 문양으로 만든 구불구불한 돌계단이 이어져 있었고 태국식의 화려하고 정교한 금장 사원이 우뚝 솟아 있었다. 그곳에 오르니 동네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슬슬 태양이 떠 올라 지상 위로 운전하고 있었고 구름은 동네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너 왜 운남성이라고 하는지 알아?"
"몰라?"
"구름이 이는 남쪽이다~라고 해서 운남성이래"
구름인지 안개인지 혼돈스럽게 뒤섞인 하얀 띠가 이름에 걸맞게 산과 마을을 용처럼 휘감아 돌고 있었다. 아직도 울부짖는 닭 소리와 개 짖는 소리 그리고 시내 대리점에서 타고 올라오는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자동차 소리와 함께 오케스트라처럼 뒤섞이고 있었다. 햇살이 떠오르니 다시 포근한 기운이 감돌았다. 돌로 만든 벤치에 걸터앉아 아들은 밀린 일지를 쓰고 그는 누워서 잠시 눈을 부치기도 했다. 오랜만에 정지된 세월 속에 머무는 것 같았다.
그들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열 명의 승객과 한 몸을 이뤄 멍하이에 도착, 곧이어 징홍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저렴한 숙소가 이어진 만팅루에 우선 짐을 풀고 대형 마트 지하에 들러 돼지, 닭, 튀김, 만두, 과일, 음료 등을 사서 광장 앞에서 만찬을 벌렸다.
메콩강 남쪽 지역에선 맡을 수없던 진하고 깊은 향의 후추 열매, 팔각, 허브, 마늘, 골파, 고추, 발효 콩 등이 골고루 섞여 값 비싼 요리가 아니더라도 형용할 수 없는 진미를 선사하고 있었다. 이제는 어디서 무엇을 먹어야 푸짐하고 값싸게 먹을 수 있는지도 용케 잘 찾는 듯했다. 도심 속 야간 조명이 야자수를 비추며 느릿했던 오후를 청산하려는 듯 거리를 새롭게 수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