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by 아빠를 여행하다

_ 30.


"마다가스카르 트래블러 팜 트리..."

"쿠바산 로얄 팜 트리..."


그는 이제 거의 다 이름을 외울 것 같았다.


"보틀 핑거 팜 트리..."

"트라이앵글 팜 트리..."


아이에게 손으로 가리키며 지식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전부터 야자수를 볼 때마다 "야자수다!" "팜 트리다!"에 그치는 것이 아쉬웠다. 개를 보면 "마르치스다!","쉐퍼트다!" "똥개다!"용케 구별하면서 야자수는 왜 그저 야자수인지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아 못 마땅했다.

징홍의 하늘은 뜨겁고 청명했다. 중국 속의 작은 태국, 트로피칼 씨티라 불릴 만큼 다채로운 열대 초목이 도로를 따라 줄줄이 서 있었고 그래서 보행 중에도 그늘 사이로 유유히 거닐 수가 있었다. 도심 속에서 아열대 특유의 나른함과 후련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도시의 매력이라면 매력이었다.

그는 나무이름들을 하나하나 외고 열매를 까먹으며 천지의 산물들과 친해지고자 했다. 여행이란 본디 그러는 것임을 새삼 떠올렸다. 그를 둘러싼 우주의 모든 산물과 친숙해지고 더욱 친밀해지는 것이 삶이자 여행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아이와 함께 돌아다닌 시간과 날짜들을 따져보고 있었다. 그는 아들과 손잡고 길을 걷는 것이 우선 자랑스러웠다. 그 느낌이 기쁘고 뿌듯했다. 여전히 삐걱대고 툴툴대고 아이에게 지적질하고 버럭 하는 모습을 보게 되지만 그래도 옆에 붙어서 아이 시중도 들어주고 손톱도 깎아 주고 로션도 발라주고 속옷도 챙겨주고 빨래도 짜주는 그러한 자신이 대견했다. 그러한 본성은 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스스로도 놀랍다고 생각했다.

주위를 돌아보니 세상 아버지들이 다들 그러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도 방법은 달랐지만 그에게 그러했고 남들 또한 그들만의 방식이지만 자신의 아이들에게 무언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전하고 있었다. 그것이 오히려 놀라웠다.

나무를 바라보고 서로 사랑하라고 주문하지는 않았다. 개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던가. 개들을 가만히 앉혀두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라고 타이르던가. 생각해보니 개에게는 그럴만한 정신이 없었다. 그것이 더 놀라웠다. 그럴만한 정신. 무언가를 교감할만한 실체. 정수, 액기스가 있는 것들끼리만 그런 주문을 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보아하니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람끼리만 주고받는 절대명령이었다. 저 자신의 평소대로라면 종종 이기적인 모습을 떠올릴 텐데 어떻게 아비랍시고 이런 생각을 품고 이런 기회를 마련해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저 자신이 기특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낯설고 신기했다. 그는 스스로 이것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교육과 지침을 받아서 화초에 물 주듯 기르고 얻어 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원천은 어디에선가 온 게 분명했다. 본능, 유전자, 생물학적 코드, 또는 인류사적 해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었다.


"너는 왜 아빠가 너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왜 너랑 여행을 다닌다고 생각해?"

"글쎄~잘 살아 보려고? 사춘기에 접어든 청춘과 함께~ 사이좋게 잘 지내보려고~ ㅋㅋㅋ"

"또 까분다~ 있잖아. 이건 내 생각인데 말이야~ 태초에 만약 우주가 대 폭발을 했다면 말이지. 이로써 우리 눈에 보이는 이 모든 게 이뤄졌다면 말이지... 그건 아마도 엄청난 무엇이었을 거야~"

"엄청난?"

"응, 엄청난"

"엄청난 뭐?"

"그러니까 말이야~ 그때 무엇이 빵! 하고 터진 게 분명해. 엄청난 펑! 그렇지 않고서는 이건 도저히 설명을 할 수가 없어. 내 안에 있는 내 안에 숨겨진 이 비밀스러운. 그러니까 뭐라고 나도 설명을 할 수 없는... 아빠가 이 가슴에 가진 것을 말이야 그것을 스스로가 설명을 할 수가 없다는 거지. 우리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것이 있단 말이야"

"뭐, 사랑?"

"..."

"사랑이라고 불리는 그런 거? 고귀한 거?"

"음... 어쨌든, 내 작은 소견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에너지가 또다시 우주를 집어삼킨 거라는 거지. 펑하고 터졌든 빵 하고 터졌든 어쨌든 말이야. 그래 그걸 사랑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맨 처음에 아마 무지~무지하고 어마~어마한 사랑을 폭발시켜선 그것이 다시 우주를 꿀꺽 되삼 켰다고나 할까? 그것이 이 온 우주를 떠 받치면서 이 우주 안에서 떠 돌아다닌다는 거지. 너 혹시 에너지 불변의 원칙 또는 질량 보존의 법칙 알아?"

"몰라"

"음... 짧게 이야기해서 이건 전체 에너지는 줄거나 없어지지 않는다는 거야. 그러니까 나도 그중에 일부. 아주~~~쬐끄만 일부. 먼지보다 더 작은 코딱지 만한 일부를 물려받은 거라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주 엄청난 에너지 가운데 코딱지. 일부. 응? 안 그러고서는 이건 도저히 설명을 할 수가 없어. 너와 내 안에 떠도는 이 순조로움 말이야. 매일매일 아침이면 눈이 떠지는 이 순탄한 기적, 너와 나를 한 발자국씩 앞으로 걷게 하는 이 엄청난 운영의 묘. 그 아름다운 힘에 대해서 말이야. 너, 이런 걸 설명할 수 있겠어, 없겠어?"

"없겠어"

"그래. 그런데 말이야 그 쬐끄만~ 눈곱만큼 좁다리한~ 코딱지만 한 그것이, 그 어마어마한 큰 것과 성질은 같다는 거지. 다시 말해 크기만 다를 뿐 성질은 똑같다! 이거야. 너, 내 말이 이해가 가?"

"글쎄... 뭐, 그렇다고 하지 뭐"

"또 까분다~ 그러니까 말이야, 비록 내가 이 에너지를 뒤집어엎고 때로 버럭 하기도 하고, 너한테 막 화도 내고, 산통을 막 깨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걸 되살리는 힘이 엄청나다는 거지. 그리고 그것이 내 안에도 같은 형태의 것이 있다는 거야. 엄청난 에너지로 우주에 가득~ 차 있듯이, 내게도. 코딱지만큼 작지만 내게도! 왜? 이 것도 역시 내가 직접 만든 게 아니라는 거지. 우주에서 떠도는 펑! 하고 터진 것 중에 일부를 물려받은 거니까. 응? 이해가 돼?"

"그럴싸한 것 같긴 한데...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어"

"너도 좀 커 봐. 이 아빠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너도 생각할 때가 곧 올 거야~"


그들은 도시를 떠나기 전에 징홍을 감싸 흐르는 메콩 강으로 걸어갔다. 한 달 전만 해도 메콩 강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다시 그 주류를 만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마치 오랜 동지를 만나러 여기까지 온 느낌이랄까. 기분이 묘했다.

오래간만에 정들었던 도심의 거리와 편리한 먹거리, 온화한 날씨, 느긋하고 여유로운 사람들과 헤어지는 게 못내 아쉬웠다. 편안했던 시간들이 계속해서 그들을 붙잡고 있었다.

그는 아이에게 이곳을 떠나면 춥고 척박한 산간 지방이 이어질 것이라고 사전 노티쓰를 주고 있었다. 그리고는 노트에 적었다.

<너무 익숙해져서 떠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라. 그리고 그 또한 두려워서 현실을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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