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31.
여배우와 키스해야 하는 장면에서 그는 꿈에서 깼다.
"왜 그 좋은 키스를 안 하세요?"
사람들이 옆에서 부추기고 있었다.
'대체 누가 본다고 그러지?'
그도 생각해보니 꿈이었다.
'꿈에서 내가 그랬다고 누가 뭐라 그러겠어?'
그렇지만 꿈에서 조차 그러고 있는 스스로를 답답해하고 있었다. 꿈꾸고 있다는 것 까지도 꿈에서 훤히 느끼고 있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갈등하고 있었다. 결국 참다못한 여배우가 그의 목을 붙잡고 키스하려 할 때 꿈에서 깼다.
'이제 원 별 꿈을 다 꾸네~'
아내랑 떨어져 있은 지 꽤 되다 보니 그도 그럴 만도 하다고 속으로 주절거렸다. 아이에게 슬쩍 꿈 이야기를 흘렸더니 "우리 아빠~ 바람 폈대요! 바람 폈대요~" 공중에다 고자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흐몽족, 아카족들이 흩어져 사는 산간 촌락을 돌아 계단식 논바닥을 보고 꾸앙시 성으로 건너가 아시아에서 제일 크다는 떠티엔 폭포에 들렸다가 국경을 건너 하노이로 들어가는 최종 루트를 그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다소 추울 테니 다시 베트남으로 건너갈 때까지만 잘 참자. 알았지. 그런데 너 옷 안 사도 괜찮겠어?"
"뭐, 이 정도 추위는 끄떡없어. 나는 오히려 반바지 입을 때가 좋아. 싸늘하게 다리를 감싸는 그런 기운, 밖에서 불어 닥치는 차갑고 시린 느낌이 너무 좋아. 히히히!"
아들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차만 타면 "괜찮냐?", "그렇게 입어서 안 춥냐?" 노인네가 손주들 걱정하듯 옆에서 거드는 중국 현지인들이 더 걱정되었다.
지앙청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고 축축하고 덜컹거렸다. 비포장길을 위아래로 튀기며 달리는 통에 엉덩이가 점점 딱딱해짐을 느꼈다. 여전히 안개구름은 운남성이라는 이름과 걸맞게 공중을 떠돌고 있었다. 정오가 훨씬 지났음에도 여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산간 중턱에 도착할 즈음 운전수가 차도 닦을 겸 점심을 먹겠다고 해서 하차했다. 그 옆에 버스가 한대 다가왔는데 다음 경유지인 루에춘으로가는 버스였다. 사람들은 아무 데서나 차를 타고 내리고 손 흔들어 바꿔 타곤 했다. 그도 이 참에 갈아 타 볼까 생각했지만 빈틈없이 꽉 들어찬 좌석을 보고는 마음을 접었다.
버스는 구비구비 끝도 없는 산기슭을 돌아나갔다. 고산 지방엔 차와 파인애플, 바나나 재배가 한창이었다. 어느 지점부터는 바바나 나무만 통째로 심겨 있었다. 끝도 없이 이어진 거대한 바나나 산맥을 온종일 달려 해질 무렵이 돼서야 지앙청에 도착했다.
산간 기슭에 다소 비스듬히 자리 잡은 이 지방도시는 특별히 눈에 띄는 볼거리가 없는 꽤 지저분한 마을이었다. 차를 수리하는 공구점과 기계제작소가 거리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그 뒷길로 재래시장이 펼쳐졌으나 썩 유쾌하진 않았다. 게다가 비 까지 내리는 통에 쌀쌀하고 우울한 분위기는 질퍽한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눈만 돌려도 소수 민족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루앙남타와 무앙싱을 오가며 그렇게나 찾아다니며 애를 썼는데 그렇게나 귀했던 그들이 이제는 흔하디 흔하게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모자 쓴 흐몽족, 족두리 차림의 하늬족들, 그리고 그들의 구슬 머리, 은반지, 동전, 깃털 장식에 이르기 까지. 루에춘으로 이동하면서부터는 더욱더 그랬다.
"소수민족 투어는 여기로 오면 되겠네~"
"멀리 산속으로 트래킹 갈 게 아니라 이 동네에 오면 식당에서 하늬족들과 같이 밥도 먹고~ 버스도 함께 타고~ 시장도같이 돌아다니고~ 다 함께 오손 도손 살 수 있겠다. 그지?"
사람에게서 뭐가 특별한 것인지 아직도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그는 특별한 족속들을 원 없이 보며 묵힌 한을 풀고 있었다. 오히려 그가 사진을 찍혀야 할 정도로 소수민족들은 지역의 중심이자 보편적 인물들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런 지앙청과 루에춘을 지나 계단식 논으로 유명한 신지에 방면으로 몸을 향했다. 차는 끝도 보이지 않은 안갯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기사는 험난한 운행 길에 지쳐 두어 번 시동을 끄고는 잠시 숨을 돌리기까지 했다. 게다가 구슬 비까지 내리는 통에 길은 더욱 미끄러웠다. 그 길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할 시궁창을 수 차례 딛고 일어섰다. 차도 운전수도 승객들도 지루하고 긴긴 여정에 지쳐 모두 힘겨워했다.
루에춘을 출발한 버스는 그들을난샤 부근 도로 한복판에 덥석 내려줬다. 목적지가 원래 젠수이로 가는 차였지만 중간 경유지인 난샤는아예 터미널 근처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여기서 걸어가면 얼마나 걸리냐고 차장에게 물어보았지만 뻔한 질문이었다. 그들에게 얼마 안 걸린다는 대답은 족히 걸어서 삼사십 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결국 도시를 발로 익혀가며 시내 끄트머리에 저렴한 숙소를 하나 잡고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 날은 그 해 마지막 날이었다. 정확히 자정이 되자 폭죽 소리가 대포알처럼 터지고 있었다. 골목마다 폭죽을 가지고 노는 것은 애나 어른이나 예외가 없었다. 다발로 불 붙이고 뒤돌아 터트리는 규칙적인 동작이 이어졌다. 그는 자고 있는 아이를 흔들어 깨워 복도 끝으로 나갔다. 창문에 코를 들이 밀고는 밤하늘을 수놓는 온갖 불꽃들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와 신기하다!"
아이는 졸린 눈을 비비다 말고 탄성을 터트렸다.
"진짜 신기하다!"
연속해서 감탄사를 터트리고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불속으로 또다시 기어 들어갔다. 그도 그 뒤를 졸졸 쫓아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