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by 아빠를 여행하다

_ 32.


신지에로 향하는 터미널 입구에서 웬 아낙네가 계속해서 그를 붙잡았다. 말은 못 알아 들었지만 어디로 가는지를 묻는 것 같았다. 말해 무엇 하나 싶어서 그는 무시하고는 매표소로 들어가 표를 끊었다. 나중에야 터미널 입구에서 따라붙는 이들의 정체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계단식 논을 보려면 우선 신지에로 들어가야 했다. 그곳의 하이라이트는 여럿이서 봉고차를 빌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논 바닥을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사진 찍는 포인트가 군데군데 줄지어 있었다. 특히 일출, 일몰 풍경을 사진에 담고자 하는 전문작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투어는 안 했으면 했다.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면 얼마나 잘 찍겠다고 부산을 떠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비용이 우선 만만치 않았다. 신지에로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만 구경해도 괜찮다고 자위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버스 기사가 그를 돕겠다고 따로 연락해서 달려온 현지 가이드가 거추장스러웠다. 투어 가격 또한 썩 와 닿지가 않았다. 그녀가 아무리 길게 설명해도 별 반응이 없자 그렇다면 현지인들만 아는 가까운 풍경구까지 차량 편의를 봐줄 수 있다고 그녀가 제안했다. 그 지역으로 들어가는 통행료만 100원인데 그들에겐 공짜라고 했다. 그래서 "얼마냐?"물었더니 그녀는 30원이라 했고, 결국 20원에 흥정을 마쳤다. 신지에가 고향이라는 그녀는 누구보다도 영어를 곧잘 했다. 너무나 유창한 실력에 출생지를 의심할 정도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녀가 운영하는 숙소에 머물기로 했다. 마을에서 제일 저렴한 빈관이었지만 잠자리를 본 순간 답답했다. 무엇보다도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이 걱정되었다. 그래도 곧바로 싸게 투어를 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 여섯 시간 후 그는 전화기를 붙잡고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왔!!! 왔!!!"

"와이 더 드라이브 디든 컴?"

"위 해브 웨이티드 투 아월스!"

"왔!!! 왔!"


사연인즉 그들은 부랴부랴 가방을 숙소에 밀어 두고 그녀가 타라는 승합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기사에게 주라고 한 20원을 내밀었더니 곧장 구비구비 산길을 올라갔다. 기사는 대략 이십 분 정도를 차로 몰더니 이 둘을 길가에 세워줬다. 아무래도 가장 가까운 풍경구인 듯했다. 젊은 운전수는 손가락으로 계단식 논을 볼 수 있는 들판을 가리키며 그 길로 내려가면 마을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잘 다녀오라고 했다. 그는 운전수에게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그럼 몇 시에 다시 만날 것인지를 물었다. 시계를 들여다보며 서로 4시를 가리켰다.

그들은 비탈길을 조금씩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티티엔이라 불리는 계단 모양의 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을 깎아 계단식 평지를 만들고 층층이 둑을 쌓아 그 안에 물을 대고 소들이 그 위로 밭을 갈아서 농사를 짓는 그런 구조였다. 벼를 추수하고 나면 그 안에 고인 물로 인해 하늘이 비친 세상을 제 각각 담을 법한 모습이었다. 점점 다가갈수록 사진에서만 보던 풍경을 코 앞에서 볼 수 있었다. 흙으로 쌓은 둑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걸어도 보았다.

구름과 안개 때문에 전체 풍경은 보지 못했으나 짧게나마 구름이 걷힌 전경은 아름답고 독특했다. 저녁노을이나 새벽 여명을 그 안에 가둬 놓으면 더욱 놀라운 풍경이 펼쳐지겠다고 상상했다. 공기가 무척 맑았다. 오래간만에 매연과 담배냄새에서 벗어나 있는 힘껏 숨을 들이켜 마시고 있었다.

기사와 다시 만날 때까지 두어 시간 여유가 있길래 그들은 천천히 마을로 걸어내려 갔다. 그곳에는 하늬족 민속 박물관이 있었다. 중국 정부가 노후된 주택을 개량하기 이전의 마을 모습과 하늬족의 분포, 역사, 생활, 풍습 등을 알리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몇몇 한자로 유추 해석하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이 모퉁이에서 열심히 놀고 있었고 사진을 찍을라치면 자동으로 손을 벌리기도 했다.

티티엔의 생명은 바로 물이었는데 산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끌어다 단계별로 흐르게 하는 것이 포인트였다. 마을엔 물레방아가 전시되어 있었고 그가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원리를 아들에게 알려줬더니 신기해했다. 마을 깊숙이 들어가니 더 크고 멋진 논밭이 눈 앞에 펼쳐졌다.

싱그러운 시간을 보낸 그들은 약속시간에 맞춰 도로에 다시 올라왔다. 해가 꺾이고 나서부터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벌써 일주일째 비 구름이 이 지역을 덮고 있다고 했다.

삼십 분을 기다려도 차는 오지 않았다. 한 시간 가량을 기다리다가 결국 그들은 지나가는 차를 세워 히치하이킹을 했다. 트럭 짐칸에 태워 달라는 것이었는데 뒷자리에 타고 있던 일행들이 공간을 내어주며 들어오라고 했다. 공짜이긴 했지만 꽤 미안했다. 기다리는 도중 영업용 승합차가 그들 앞에 서긴 했지만 그때마다 그 요금을 낼 거면 정식 투어를 했다고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는 따지고 싶었다. 열악한 숙소에서 하룻밤 보내는 것도 자신이 없었지만 기사가 오지 않은 대가로 일부 돈을 돌려받고 만약 이야기가 꼬이면 방을 빼서 나가야겠다고 행동설계를 하고 있었다.


"그러려면 우리가 매우 피곤한 티를 내야지~ 엄청나게 오래 기다리다 추워서 죽을 뻔 같은... 그러니까 지금 바로 들어가면 너무 빨라~ 너무 금방 차 타고 온 것 같잖아. 그지?"

"그럼 어떻게 하지?"

"마을로 내려가서 시간을 좀 더 보내자고. 그런 후에 차가 오기를 아주~ 오래~오래 기다리다 돌아온 것처럼 하자니까? 알았지?"


그는 마을로 내려가 아이와 시간을 보낸 후에 연기를 하며 준비한 각본에 맞춰 숙소에 들이닥쳤다. 하지만 그녀는 없었다. 그녀가 돌보는 또 다른 숙소에 가 있다고 했다. 결국 손녀를 봐주던 그녀의 엄마가 핸드폰으로 연결시켜줬다.


"왔!!! 왔!!!"


그가 기대한 것은 미안하다는 한마디였다. 하지만 그녀는 다부졌다. 그는 만에 하나 수가 틀어지면 방을 빼겠다는 각오였지만 그래도 미안하다고 말하면 이 모든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티라도 팍팍 내고 싶었다. 그러면서 그가 원한 것은 차를 못 탄 대가로 10원 정도 돌려받는 것이었다. 10원. 그게 진짜 속내였다. 정신적인 보상까지는 추접하더라도 본인의 피해를 알아 달라고 주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이 그를 돌게 만들었다. 자기는 한 번도 왕복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발뺌을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그의 책임을 들먹였다. 그녀는 우물거리지도 않았고 어눌하지도 않은 당당한 영어를 펼치고 있었다. 마치 UN에서 근무라도 해 본 것처럼 중국 본토의 굳건한 이익과 권위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혼돈스러웠다. 아이와 함께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던 장면은 무엇이었던가.


"아무리 말이 안 통해도 그렇지! 분명히 기사가 4시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자고 했잖아. 안 그래? 서로 손가락으로 수신호까지 보냈잖아! 그지! 너도 똑똑히 봤지?"


그게 아니라면 그는 이런 불편함을 겪어가면서까지 그곳에 가지는 않았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결국 영 이야기가 안 통한다고 생각한 그는 미리 써둔 내레이션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숙소에서 짐을 빼서 나가겠다. 돈을 돌려 달라."

"뭐, 그래도 좋지만 이미 체크인을 했으니 돈을 돌려줄 수는 없다!"

"왔!!!"

"정 가고 싶으면 가라!"

"왔! 아이 돈 언더 스탠드 유!!!"


그는 이해가 안 된다고 했고 그녀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자기라고 했다. 그녀는 그러고서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계속했는데 전화 상태가 안 좋아서 뭐라고 했는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왔!!! 왔!!!"


그러는 통에 그녀는 일방적으로 수화기를 끊었고 한 동안 그는 어쩔 줄 몰라했다. 갑자기 얼굴이 벌게 지면서 심장 박동이 빨라져 왔다. 설마 설마 했는데 가장 안 좋은 시나리오로 끝나다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 돈도 돈이지만 불편한 숙소에서 그토록 불편한 마음으로 그토록 긴긴밤을 보낸다는 것이 가시방석 같았다.

답답한 심정을 아이에게 털어도 놓아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기분이 상해서라도 짐을 챙겨 그냥 나올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돌아 나가는 버스도 마땅치 않았을뿐더러 대체 무엇이 그에게 유리한지 혼란스러웠다. 기분이 잡쳐서 맨발로 뛰쳐나오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게 분명했다. 그야말로 기분 탓에 저지르는 일이었다. 누구 좋은 일만 시켜준다고 생각했다.

그는 괴롭지만 이겨내 보려고 했다. 다시 여주인을 만나면 어떻게 상대할까 몹시 괴로웠다. 생각 같아선 속사포처럼 조리 있게 쏘아 부치면 좋겠지만 얼마 안 되는 가격을 깎고 또 깎아 놓고는 그 사람 참 쩨쩨하게 군다고 이야기할 게 뻔했다. 그런 이야기가 듣기 싫어서라도 외면하는 게 낳겠다 싶었다. 다행히 보증금도 없었고 여권도 이미 돌려받았으니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게 속 편할 것 같았다.


'그래, 다음날 일찍 숙소를 나설 때 그래야겠다'


반복되는 설계도면만 머리 속에 꽉꽉 들어차고 있었다. 긴긴밤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고자 마을로 내려가서 안개에 둘러싸인 야경도 보고 여기저기 질퍽한 골목길을 싸 돌아다녀도 봤지만 시간은 길고도 길었다. 그래서였는지 잠도 안 오고 창문으로 새어 드는 바람은 모질고도 험했다.

이튿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의 얼굴은 끝까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지저분하고 낡은 신지에를 빠져나오면서도 그는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보다 그럴 싸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 자신의 소양과 성품을 탓하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괜찮은 인간, 너그러운 여행자로 평가받고 싶었다. 마음속에서 꿈꾸는 자아와 현실과의 괴리가 차이 나는 것이 불편했다. 그는 그런 불편함을 맘 편히 돌볼 대사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로 인해 고통받았다.

"난 원래 그런 놈이야!"라고 말하기가 두려웠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꺼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놈이었다. 한두 푼에 목숨을 걸고 자기 손해 나는 일은 털끝만큼도 양보할 수 없으며 무엇이든 죽어도 남는 장사를 하려 하고 기어코 상대 목을 조르는 원래 그는 그런 놈이었다. 이를 인정하는 것이 기초요 필수인 출발선이었다.

하지만 이것부터 인정하는 것만큼은 결코 하기 싫었다. 죽어도 그는 그 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출발하길 원했다. 이 또한 한 푼이라도 깎아 보겠다는 공로와 매우 닮아 있었다. 이와 같은 설정으로 인해 오히려 저 자신이 힘을 더욱 억세게 쥐는 실수를 번복하고 있었다.

그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게 일이든 뭐든 상관없었다. 그 누군가는 온 인류와 맞닿아 있었다. 하지만 그 시작점은 아버지였다. 그로부터 받아야 할 인정이 몰래 숨겨 있었다.

그는 "나만 그런가? 나만 추해? 다 그래~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그리고 대부분 그래~"와 같은 기초대사를 충실히 다졌어야만 했다. 고귀한 선행을 드러내기 이전에 우선 인정하고 들어갈 기초 대사를 몰랐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을 뒤집기 위해 자기 자랑으로 채우려 들고 인정받을 거리를 찾아 끊임없이 외부로 나선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것들로 아무리 채워봐야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진짜로 인정받는 것이 필요했다. 진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착한 행위, 착한 행실, 도덕적 선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것이었다.

틈틈이 그가 버럭하고 소리를 지르는 이유도 존재 깊숙이 새겨진 애착의 이슈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그의 권위자로부터 채워지는 것이라야 했다. 다시 말해 아버지, 그는 아버지의 칭찬 한마디가 그토록 기다려졌는지도 모른다.


"잘했다!",

"대단한데!",

"너 정말 훌륭해!",

"네가 내 아들인 게 너무나 자랑스럽다!"


오히려 남보다 뛰어나거나 선한 행위로 저 자신의 잘못을 덮을 수 있으리라는 교만함을 고치는 일은 그 시작점과 마찬가지로 애착에 있었다. 진짜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이기에 진짜로 충족해야 할 그것으로만 채워지고 달래지는 것이었다. 그는 말없이 그를 인정하는 아버지. 그의 존재가 어떠한지를 채워줄 권위자, 전능자의 확언이 필요했다. 이는 그가 도덕적, 인격적으로 불안하고 불완전하며 때론 형편없다손 치더라도 그의 존재를 끝까지 인정해줄 누군가여야 했다.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아",

"부족해도 괜찮아",

"네가 최고가 아니어도 괜찮아",

"너는 나의 최고의 파트너야",

"나에겐 네가 제일이야~"


내가 우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필요했다. 불행하지만 그는 그런 큰 사람과 함께 해본 경험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슬펐다.


2299.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