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33.
새해 초 하루부터 그에게 벌어진 일은 그를 더욱 서글프게 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었으니 이제 좀 잘 해봐야지 했던 연중 기획은 이내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여행 중에 흘리고 다닌 자신의 발자취가 사람들에게 결코 덕이 안된다고 생각하니 맥이 딱 풀려버렸다. 여주인을 의식해 주위를 둘러보긴 했지만 한마디로 도망치듯 숙소를 달아났다. 부딪히고 싶지 않았고 대면할 자신조차 없었다.
안개로 뒤덮인 신지에는 여전히 축축하고 칙칙했다. 동이 트기 전 터미널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서성이는 남정네들이 비를 피해 건물 처마 밑에서 담배연기를 뿜어 대고 있었다. 무리 중 한 여성이 다가와 난샤로 가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그렇다고 했다. 잠시 후 어둠 속을 가로지며 택시 한 대가 나타났다. 그녀가 전화해서 온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요금이 비싸다는 것을 알기에 터미널이 열리면 버스로 가겠다고 했더니 알았다고 했다. 그는 그녀가 호객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잠시 후 난샤로 가는 승합차 한대가 왔는데 터미널과 동일한 가격을 불렀다. 그녀는 이방인을 위해 돕는 손길을 계속해서 베풀고 있었다. 그는 자기 마음을 들여다 보고 또다시 부끄러워했다. 마음의 편견 때문에 너른 빛을 보지 못하는 자신을 호되게 꾸짖고 있었다.
승합차는 안개를 헤치고 난샤 터미널에 도착했다. 전날 그곳에 왔을 때처럼 그 아낙네가 어디 가냐고 물었다. 알아서 뭐하냐는 듯 여전히 그는 무심하게 매표소로 들어가 젠수이로 가는 표를 샀다. 그러는 찰나에 아이가 소리쳤다.
"아빠!!!"
"왜?"
"저기... 우산! 그리고 내 신발!"
"응? 안 가지고 내렸어???!"
"응..."
난처했다. 새로 산 신발주머니와 우산, 아이는 차만 타면 잠을 자는 통에 눈만 뜨면 세상이 바뀌기 일쑤였다.
"다시 나가 봐!"
그는 또다시 호통을 쳤다. 차는 떠나고 없었다.
'휴우~ 큰돈을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 뭘...~'
이렇게 대수롭게 여기면 좋았겠지만 그는 불편하고 짜증이 났다. 게다가 제 물건을 꼼꼼히 챙기지 못하는 아이의 부주의에 더욱 화가 났다. 뭐라고 질책은 따로 안 했지만 이미 표정에 다 드러나 있었다. 그런데 매표소에서 내어준 좌석 번호를 들여다보니 2번, 3번이었다.
"아니! 2번, 3번이면 따로 앉으라는 거야? 옆자리에 같이 앉게 해달라고 그렇게 이야기했거늘..."
그는 터미널로 들어가 두 명이 나란히 앉게끔 1, 2번으로 바꿔 달라고 했다. 매표소 직원은 난감한 표정으로 그저 웃고 있었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손으로 무언가를 설명하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끄떡이며 그저 괜찮다고만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괜찮지가 않았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갔다.
"2번, 3번이 어떻게 나란히냐고?"
결국 운전기사가 그들을 차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제야 1번 좌석은 운전자 옆 보조좌석이라는 것을 알았다. 버스는 세계 2차 대전에나 등장할법한 그런 버스였다.
"하아아~"
긴 한숨 또한 절로 나왔다. 곧이어 누가 툭툭 건드리는 이가 있었다.
'누구지? 누가 나를 치지?'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 내민 신발주머니를 보고서야 승합차 기사라는 걸 알아챘다. 말없이 두고 내린 신발주머니와 우산을 그에게 건 냈다. 그날따라 그의 부끄러움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연달아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는 그날 얻은 교훈을 수첩에 적었다. 그의 불완전함, 불통의 한, 대물림의 비애, 비틀거리는 인격 등을 뒤로하고 그가 체로 거른 것은 그래도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그 난관 속에서도 저가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힘이 상황을 풀어주고 이끌고 길을 내어 준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는 자신의 행적과 인품과는 별개로 우주가 그를 반기고 맞이하고 환영한다고 믿고 싶었다. 가끔이지만 간혹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 놀라웠다. 경이로웠다. 그가 기획하고 노력해서 생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되돌아보면 아찔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라오스로 국경을 넘을 때도 그랬고 중국으로 건너오는 날도 그랬다. 하지만 그렇게 염려하고 우려했던 것들이 지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도 멀쩡 했다. 그것은 저 자신의 노력으로 어찌어찌해서 이룬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조물주가 이 우주를 만들었다면... 그리고 시간을 만들었다면... 그리고 나 또한 만들었다면...'
'국경을 넘을 때 그 쌩 난리 부르스를 쳤는데도 지금 멀쩡한 걸 보면 괜찮은 거 아닌가?'
"나 또한 괜찮게 만든 게 아니냐고~'
'매일 해가 뜨고 내 마음속 근심과 염려와는 달리 또다시 해가 뜨고 세상이 그리 돌아간다면 나 또한 순탄하게 돌아가는 것 아닐까?'
그는 또다시 믿으려 했다. 미약하지만 우주가 저 자신을 반기고 있다는 것.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 그래서 그것을 지지하고 그것에 의지해야겠다고. 전에도 그러기로 했었지만 판단으로 밀쳐내고 관념으로 거부하며 육신으로 외면했던, 일컬어 행운이라고 하기엔 또 재수라고 부르기엔 온전히 또 충실히 설명할 수 없는 그것을. 다시금 열과 성의를 다해 반겨보자고.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는 수첩에 적었다.
<다 되게 되어 있다>
이렇게 쓰고는 그 밑에 두 줄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