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34.
하늘을 보았다.
'하아~'
그는 공중 깊이 긴 호흡을 빨아들이며 저가 외롭지 않다고 토로하고 있었다.
젠수이로 가는 길은 더욱 비좁았다. 축축하고 울창한 죽대 숲과 뱀처럼 꼬인 산길을 여전히 들락거렸다.
'이제 이런 길도 마지막이겠구나'
하지만 이토록 딱딱한 좌석이 있었던가. 차가 휘청거리고 덜컹거릴 때마다 엉덩이는 좌석 바깥으로 밀려 나가기 일쑤였다. 창문은 격이 안 맞아 세찬 바람이 안으로 밀려들었고 그는 이런 환경에서 가급적 빨리 달아나고 싶었다. 아이는 여전히 그의 옆에서 가방을 끌어안고 꿈을 꾸고 있었다.
정오 무렵이 돼서야 산은 얇아지고 원만한 구릉과 적갈색 토양이 속살을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시 평평한 세계로 내려온 것에 몸이 진정되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구름 가득한 천상의 세계, 불편하고 고달프지만 흙과 숲이 뒤엉킨 자연과의 조우가 새삼 그리워지는 것은 대체 왜일까 싶었다. 알 수 없는 아쉬움을 붙잡고 한참을 서성이고 있었다.
차는 젠수이 시내 성곽을 돌아 터미널로 향했다. 지도상에 있어야 할 기차역은 사라지고 없었다. 따라서 버스 터미널로 가야 했다. 우선 쿤밍행 버스요금부터 확인했다. 일인당 81원. 다시 새로 이전한 기차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터미널 초입에서 끈질기게 접근하며 행선지를 묻는 회족 여인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쿤밍이라고 하니 그를 붙잡고는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여기서 타면 1인당 60원~ 저기서 표를 사면 81원!"
'아하!, 그런 거였구나~'
차장과 짜고 터미널 밖에서 태우는 불법 모집책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도, 그리고 그 이전에도, 터미널에 이들의 정체는 그런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를 애용하는 고객들이 확연히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날을 떠올려 보니 제 돈을 주고 표를 끊는 현지인들을 별로 못 본 듯했다. 루트만 잘 알면 그 길에 기다리고 섰다가 훨씬 저렴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다.
새로운 뉴스 하나를 꼭 쥐고 역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기차역이 생각보다 훨씬 멀리 있음을 파악하고는 되돌아섰다. 다시 터미널에 왔으나 회족 여인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없었다. 누가 어떤 임무를 띠고 있는지 훤히 보였다. 그들 일당에게 다가갔더니 조심스레 가격을 손으로 알려줬다. 처음에 한 사람당 70원이라고 하던 것을 이전 거래 가격을 참조해 두 명에 100원으로 흥정을 마쳤다.
하늘은 점차 맑아졌다. 그들은 참으로 오랜만에 푹신한 좌석에 앉았다. 앞 좌석과 맞부딪히는 무릎의 압박도 없었다. 버스는 정규속도를 유지하며 한적한 고속도로를 부드럽게 달리고 있었고 중앙 분리대를 따라 조경이 잘 갖춰진 길은 마치 우리 강산에 개나리, 진달래 피듯 다채로운 꽃들이 화려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애당초 기차를 타고 쿤밍을 가려던 이유는 기차역이 그나마 시내와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기차를 타고 들어가면 시내 진입이 용이하리라 판단해서 그랬는데 짐작대로 버스는 시내 외곽에 위치했다.
산골에서 피곤했던 심신을 도시에서 달랠 겸 쿤밍으로 왔지만 보다 큰 이유는 하노이로 안전하게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허커우를 거쳐 베트남 11시 방향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난닝을 거쳐 1시 방향 핑샹에서 들어가는 것이 용이했다. 그곳에서 하노이로 들어가는 시간도 훨씬 빨랐다. 또다시 라오스 국경에서와 같은 일이 벌어지면 그 후에 딸아이와 함께 겪어야 할 일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는 난닝 행 기차표부터 끊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역으로 향했다. 길에 넘쳐나는 차들과 분주한 사람들과도 재빨리 몸을 맞춰야 했다. 오래간만에 겪는 교통 체증이 도시의 중압감과 함께 다가왔다. 마치 산골 원주민이 된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흙만 집어 먹고살다가 갑자기 케이크에 불 밝히려니 확실히 몸동작이 서툴게 느껴졌다.
'고국으로 돌아가면 이런 느낌이겠지?'
그는 미리 그 옷을 입어 보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햇살은 따스하고 도심 속 공기는 서늘했다.
기차표 구하기 어렵기로 소문난 쿤밍역에 들어서니 역시나 수 십 줄이 늘어서 있었다. 겨우 차례가 왔으나 예약 발매는 다른 창구로 이동하라 해서 이리저리 옮겨 다닌 끝에 발권에 성공했다. 흩어진 이산가족과의 만남을 한 발 앞당 긴 느낌이 들었다.
그는 나흘 후에 난닝으로 출발하는 딱딱한 좌석표를 손에 들고 아이와 홀가분한 걸음으로 역을 나왔다. 주변의 숙박료를 물어보면서 시내까지 걸어 들어갔다. 해는 지고 있었는데 그다지 춥게 느껴지진 않았다. 대형 쇼핑몰이 가득 들어찬 시내 중심가는 더없이 혼잡했다. 게다가 주말이고 퇴근시간까지 겹치다 보니 수많은 인파들로 분주함은 더 했다.
숙박료는 기대했던 가격의 두 세배는 줘야 했다. 하룻밤이라면 어쩔 수 없었지만 나흘이나 묵어 가야 하겠기에 좀 더 안정적이고 저렴한 방을 구하 길 원했다. 결국 시장 주변의 숙소를 돌아다녔으나 방이 없거나 아니면 터무니없이 비쌌다.
다시 시내 가까운 곳에 위치한 유스호스텔로 발걸음을 돌렸다. 정 안되면 그리로 간다는 것이 그의 복안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말이라 자리가 없다는 것이 그곳의 설명이었다. 점점 몸이 지치기 시작했다. 배낭을 메고 도시를 휘 젖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고원도시의 밤은 식어가고 있었다. 반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그들을 현지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빠! 일단 저녁부터 먹자!"
"그래!!! 배고프지? 좋아! 밥부터 먹자!"
그들은 시장 골목에서 차오판을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시간은 벌써 밤 열 시를 지나치고 있었다. 숙소 한 군데를 또 들렸다. 밥 먹기 전에 100원에 재워 달라고 간청했었는데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 주인의 답변이었다. 달라는 150원에 묵기에는 창문도 없고 심지어 방에 화장실도 없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선뜻 몸을 맡길 수가 없었다. 그곳을 들락날락하기를 몇 차례. 아무리 애원을 해도 주인은 가격을 낮추질 않았다. 시간은 흐르고 결국 자정을 넘겼지만 잠자리는 묘연했다.
백화점 건물 사이 벤치로 나가 앉았다.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면 어느새 먼동이 틀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아이는 싱글벙글 길바닥에 한번 자보는 게 소원이라며 한 술 더 떴다. 하지만 한 겨울 정월 달, 그것도 쿤밍이었다. 결국 삼십 분도 못 가서 추워서 안 되겠다고 바르르 떨고는 어디론가 마구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298원, 198원, 186원... 그런데 문제는 불 밝힌 빈관을 따라가 봐야 외국인은 숙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테러 경고 지역이라 공안을 의식해서 그런지 당국의 허가 없이는 외국인 숙박은 절대로 받아주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돌아가서 150원에 자자!"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가보았지만 상황은 달라져 있었다. 한 남자가 그날 번 돈을 분주하게 회수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주인이라고 여겼던 남자에게 자초지종을 듣더니 그러다가 큰일 난다며 면박을 주는 통에 150원짜리 방도 물 건너가고 말았다.
결국 떠돌다 다 쓸어져 가는 여관 하나를 발견했다. 하숙집 마냥 손바닥만 한 마당을 가운데 두고 방 여러 개가 빙 둘러쳐 있는 그런 구조였다. 반 토막 난 계단에 이르기까지 건물 전체가 다 쓰러져 가고 있었다. 소녀 두 명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그들을 반겼는데 여권을 보여주니 한국 사람이라고 키득거리며 더욱 좋아라 했다.
30원이라고 했다. 그는 아이와 잠시 동안 눈을 마주 보았다. 이제껏 묵은 방 중 가장 싼 방이었다. 방으로 안내되었다. 여자 아이가 방문을 열고 천장에 전구 스위치를 올렸다. 그는 쥐부터 살폈다. 바퀴벌레는 확신하고 있었다. 곧이어 씻을 물을 양동이에 담아와 내밀었고 공동 화장실은 있기는 한데 건물 뒤로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눈감으면 안 보인다는 게오랜 지론이었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고 신나 했고 몇 시간만 참으면 먼동이 튼다고 미래 생활설계를 끝마치고 있었다. 아이는 그런 염려는 안중에도 없었다. 무조건 만족해했다. 그는 일단 씻자며 양동이에 손부터 담갔다. 아이는 똥부터 마렵다고 휴지를 뜯어선 건물 뒤로 돌아갔다. 그런데 여자 아이가 다시 문을 두드리며 방문을 열었다. 수줍어서 뭐라고 말도 못 하는데 그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아! 오늘은 안 되는구나~'
그랬다. 삼촌뻘쯤 되는 사람이 나타나더니 외국인이라 숙박이 안 되는데 왜 방을 내줬냐며 나무랐던 것 같았다. 밖에서 떠드는 소리 만으로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양해를 부탁할 할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알았다고 하고는 얼른 짐을 챙겼다. 아이가 똥을 싸고돌아왔는데 배낭을 메고 다시 어디론가 떠나려는 아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짧지만 정적이 흘렀다. 그도 뭐라고 설명할 기운이 없었다.
"안된데... 외국인이라"
그가 짧게 한마디 날렸다. 어이없긴 아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보다는 덜 한 듯했다.
그는 죽을 것 같았다. 또다시 찬바람을 맞아가며 도심 속을 기웃거려야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죽을 맛이었다. 게다가 결국 하룻밤에 수십 만원 짜리 호텔에 묵는 건 더더욱 죽을 맛이었다. 몇 시간만 버티면 해가 뜨고 찬란한 태양이 그들을 반길 텐데 지금 이 시간을 잘 버티는 것은 마치 온 우주를 지켜내는 일과도 같았다.
도심으로 걸어간 그들은 가이드북에 적힌 또 다른 국제청년회관으로 향했다. 걸어서 40분 거리였다. 국가에서 인정한 공식 유스호스텔을 가야 외국인 숙박이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없었다. 그런 곳은 없었다. 그는 그런 답답함을 또다시 아이에게 투사하고 있었다.
"이리로 쭉 가면 또 뭔가 쓰윽하고 나타나지 않을까?"
덥석 한마디 던졌는데 아이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
"야, 이럴 땐 서로 힘내자! 파이팅도 하고! 서로 말도 해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트집을 잡은 것이 결국 화근이 되었다. 아이는 "꼭 그런 것은 아닌데 아빠가 그런다"라고 불평했고 이로써 그의 거센 반응은 자동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아이는 더욱 쪼그라들었고 이로써 그는 더욱더 울고 싶었다. 그들은 새벽 3시가 되도록 쿤밍 시내를 벌벌 떨며 떠돌고 있었다.
결국 처음에 들렸던 시내 중심가의 유스호스텔로 몸을 향했다. 투숙객 인양 로비에 마련된 당구장 소파에 몸을 버젓이 들이밀었다. 다행히 문이 열려 있어서 그럴 수 있었으나 불행히도 찬바람이 들이닥치는 춥디 추운 곳이었다. 그래도 어딘가 걸터앉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다. 너무나 추워 이를 떨고 있었지만 다른 선택은 없어 보였다.
관리인이 몇 차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다가와 그와 눈을 마주치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그곳 투숙객 인양 고개를 푹 숙이고 말없이 앉아있었다. 하지만 얼마 안가 들통날 게 뻔한 차림이었다. 결국 관리인이 카운터 직원을 데리고 그들 앞으로 왔다.
"왓 캔 아이 헬프 유?"
여자 직원이 영어로 말했다.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음... 위 해브 레설브드 히어"
"벋 위 해브 어라이브드 쏘 얼리"
"쏘오... 음... 위아 저스트 웨이팅~"
사실 주말이라 방이 없다고 해서 다음 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은 상태이긴 했다. 게다가 저녁때 대면했던 직원이 아니었기에 그는 마치 공항에서 일찍 도착해서 지금 도착한 것처럼 연기를 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음... 위 해브 베이컨시 나우~"
"...?"
"벋 온리 원~"
"!"
그야말로 천사의 하품이었다.
"이프 유 아 오케이, 아이 캔 기브 유 원 베드 포 유"
무슨 상관있으랴. 땅바닥에 눕기만 해 줘도 오케이였다.
"예쓰,! 예쓰! 땡큐! 땡큐!"
천사의 하품은 이어지고 있었다.
"메이비~ 인디 애프터 눈, 위 캔 기브 유 투 베드 포 유~"
"비코즈 썸 피플 캔쓸드 레저베이션"
그는 다시금 우주를 향해 환호했다. 그리고 그토록 오기 싫었던 도미토리에, 그토록 한 침대에 누워 자자고 노래를 불러도 그토록 밀쳐대던 아이를 가슴에 꼭 끌어안고는 곧장 꿈나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