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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의관까지는 걸어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미명이 트기 전이라 사람 그림자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마음의 빛을 비추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날씨는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다.
어제 먹은 오찬은 결국 아이의 배를 아프게 했다. 베트남으로 가면 중국 밥은 마지막 아니냐며 사력을 다해 먹었는데 과식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음식이 자극적이었는지 저녁 내내 힘을 못쓰고 속이 답답하고 쓰리다며 아파했다. 그동안 감기, 몸살 한 번 안 걸리고, 배탈, 설사 한 번 안 일으키던 무적의 동지가 쓰러지니 그도 덩달아 맥이 빠지는 것 같았다. 숙소 옆 식당에서 난생 처음(?) 혼자 밥을 먹는데 흥이 뚝 끊어지는 것이 제 모습이 초라하고 무섭기까지 했다. 그동안 떨어져 있었으면 했던 귀찮은 아이는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밤새 응급실에 실려가 국경을 못 넘는 건 아닌가 상상도 했었는데 다행히 아이는 다음날 몸이 훨씬 좋아졌다고 했다. 씩씩하게 일어나서 이빨도 닦고 자기 짐도 바지런히 챙기고 있었다.
우의관으로 가는 길은 다소 거칠었다. 바닥에 돌멩이도 채이고 밤부터 내린 비로 길은 질척이고 있었다. 친절한 이정표를 찾기가 어려웠다. 숲에서 불어대는 바람은 새벽안개와 절묘하게 뒤섞여 눈앞에서 넘실대고 있었다. 한편 시내에서부터 새벽 공기를 가르며 한 방향으로 걸어가던 현지인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서로 사이좋게 동행하며 걸었다. 우의관 근처로 컴퓨터 고치러 간다는 이 꽝시 성 출신의 엔지니어는 북한 체제를 비판하고 김정은이란 인물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덫붙여 자기는 한국 드라마 광 팬이라고 했다. 그러고도 꽤 많은 이야기를 중국말로 건네었는데 그는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계속해서 알아듣는 척 "아, 그러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아니었으면 아무래도 그 길을 꽤 의심해야 했을 것이다. 오가는 이들이 전혀 없었다. 안개 숲을 헤치고 우의관에 도착하니 공안이 아직 문을 안 열었다고 8시에 다시 오라고 했다. 국경 앞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겠다는 그의 포부는 비로소 성취되었다.
한나라 때부터 하남 지역과의 경계 관문으로 사용되던 우의관에 그들은 발자국을 들이 밀었다. 요새를 등지고 사진도 찍고 출국 심사대에서 도장도 찍었다. 계속해서 베트남 국경 건물에서 무비자 15일 스탬프도 찍고 드디어 이산가족 집결지로 재 입성하였다.
빗방울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그들은 일단 하노이로 들어가기 위해 무작정 걸었다. 도로는 진탕 길로 질척거렸고 오 다니는 차량들은 없었다. 너무나 인적이 없어서 '오늘은 안 하나?' 싶은 의구심마저 들었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환전상도 보이지 않고 어디로 가자고 귀찮게 하는 호객꾼도 없었다. 단둘이 달랑 쓸쓸하게 입국하는 모양새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작정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색했다. 어쨌든 차량을 수배해서 하노이로 무사히 도착하기만을 바랬다.
직감적으로 터미널 기점이라고 여긴 곳이 눈에 뜨였다. 그제서야 비로소 보이지 않던 인적과 주변 도시를 오가는 차량들이 눈에 잡히기 시작했다. 남은 위안화를 탈탈 털어 요금으로 지불하고는 봉고차에 올랐다.
동땅을 출발한 차는 랑손을 지나 하노이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비는 여전히 끈덕지게 내리고 있었다. 시내로 들어서자 첫날 사이공에서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오토바이 행렬이 다시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하노이가 번잡하기로는 으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