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by 아빠를 여행하다

_ 44.


아이는 아침까지 세 번 설사를 했다. 중국에서 막혔던 것이 하노이에서 다 내려간 것 같다고 오히려 좋아라 했다. 그들은 제대로 된 아침식사가 제공되는 숙소에 처음 머물렀다. 그리고 공주님을 맞이 할 채비를 시작했다. 골목골목 모퉁이를 돌면서 차 오롱, 분포 남포, 반 볼락, 분짜 등 여러 맛 집을 눈여겨보았고 귀빈을 모시기 위해 일부 시식도 해보았다. 공항으로 이어지는 버스 노선과 동선도 미리미리 살펴보고 정류장에서 차는 얼마 만에 한번 꼴로 오는지 요금은 얼마인지 시장 조사도 마쳤다. 의전 행사만 무사히 치르면 됐었다.

하노이 도심에서 공항까지 가는 길은 한적하고 차분했지만 여전히 그의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잠시도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아이가 공항을 잘 찾아 나올까?'

'입국하면서 별일 없어야 할 텐데...'


동생도 누나가 온다는 사실에 가슴 조리며 기분이 들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공항에 무려 두 시간 일찍 도착한 그들은 입국장 출입문부터 살펴보았다. 공교롭게도 출구가 두 군데였다. 그렇다고 A, B 둘로 나눠서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아이가 나오지만이 이 아이도 아이였다. 게다가 더 작은 아이였다. 전부 다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

그는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다며 처음엔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도착시간이 다 돼도 비행기는 나타날 줄 몰랐다. 도착해야 할 비행기들이 줄줄이 연착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초조한데 연착까지 하니 그는 똥줄이 타 들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어느 틈엔가 바리케이드 앞으로 현지인들이 막아서는 바람에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참다못한 그가 공항 관계자라도 된 양 지시를 내렸다. 처음에는 순순히 뒤로 물러 서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할머니, 할아버지, 손녀, 손자, 농부, 아낙네, 애완견 할 것 없이 가족 부대가 집단으로 막아서는 통에 그는 또다시 버럭하고 말았다.

"이 사람들이 새치기도 잘하지만 무질서야말로 전매특허다!!!"


영어로 소리쳤다. 큰 소리로 떠드는 통에 아이는 루앙남타 터미널을 또다시 공항으로 옮겨 놓은 줄 알았다. 다행히 현지 경찰이 나서서 통제에 참여 하긴 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비행기 다섯 대가 연달아 연착을 했고 두 시간 가까이 지나도록 와야 할 비행기는 도착하지 않았다. 그러다 전광판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LANDING!>


그때부터 그의 눈은 더욱 빠지고 있었다. 출구가 두 개인지라 반대편으로 나갈 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사람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그러다 한꺼번에 인파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발꿈치를 들고 고개가 빠지도록 안 쪽을 들여다보았고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동정을 살피기 위해 육백만 불의 사나이 마냥 레이저를 쏘아 대고 있었다. 아들 보고는 B 쪽 모니터를 한시도 놓치지 말고 쳐다보고 있으라고 했다. A 쪽은 자기가 잘 맡겠노라고 소리쳤다. 그래도 지체가 되자 카트를 밀로 나오는 승객들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냐?"

"어느 비행기로 왔냐?"


하지만 그들도 딴 데 신경이 팔려들은 척도 안 했다. 그 시간이 마치 그동안에 할 여행을 전부 돈 것 같은 기다림이었다.

그러는 찰나, 그의 눈 앞에 가방을 메고 오리 마냥 씰룩씰룩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 나오는 여자가 있었다.


'누구야?... 대체 누가 저렇게 걸어?'


실눈을 뜨고 가만 보니 그의 딸이었다. 머리 속에서 그리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못 보던 사이에 키가 더 자라 마치 어른처럼 보였지만 그런 모습으로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가 먼저 알아보고 아이 이름을 불렀다. 딸아이는 한치의 서성임도 없이 출구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아직도 그의 아들은 바리케이드 맞은편에 서서 고개를 길게 빼고는 모니터와 출구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딸아이를 꼭 안았다. 딸아이도 아빠를 두 팔로 안았다. 서로가 꼭 안았다.


"야, 너 어떻게 나왔어. 우리가 여기 있는 줄 알고 나온 거야?"

"나 그냥 주욱 걸어서 나왔어."

"ㅎㅎㅎ 그래? 출구가 두 개인 거야. 그래서 얼마나 고민했다고. 혹시 저쪽으로 나오면 어쩌나 싶어서~"

"딱 보고 없으면 나도 안 나오지~"

"야, 너 정말 컸다."

"그래?"

"근데 난 넌 줄 몰랐어. 전혀 몰랐어. 근데 오리걸음으로 누가 뒤뚱뒤뚱 가방 메고 귀엽게 나오는 거야. 가만 보니까 그게 떡 하니 너인 거야~"

"그래?"

"그래서 네 이름 불렀지"

"ㅎㅎㅎ"

"넌 나 알아봤어?"

"어!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르는데 아빤 거야!"

"야~ 비행기가 연착해서 아주 혼났다. 안 오는 줄 알고. 여기 서서 꼬빡 세 시간 넘게 기다렸다, 야~"

"그래?"

"출국하면서 문제없었어?"

"응. 엄마가 공항까지 데려다줬어. 그런데 카운터에서 얘 나이가 14살인데 혼자 보내도 되냐고 자기네들끼리 막 회의했어"

"ㅎㅎㅎ 그러더니?"

"그러더니, 결국 괜찮다고, 생일 지났다고. 된다고 그러는 거야~"

"그래서?"

"그래서는... 난 오히려 날 둘러싸고 그러는 게 즐겁더라고~"

"ㅎㅎㅎ 그랬어? 다행이다. 너, 저기 동생 보여? 아직도 누나 온 줄도 모르고 저기 뚫어지게 출구만 바라보고 서 있잖아. 내가 반대편 출구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보라고 했는데, 모니터는 쳐다보지도 않고! 출구만 ㅎㅎㅎ..., 지금 너 나온 것도 모르고 계속 저 문만 뚫어지게 보고 있다! ㅎㅎㅎ어떻게 할까? 우리 그냥 갈까? 몰래 갈까? ㅎㅎㅎ"

"ㅎㅎㅎ"

"ㅋㅋㅋ"


이제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불렀다. 그리고 그들끼리 서로 부둥켜안았다.

그는 아이를 멀리서 쳐다보았다. 한 아이를 보고 또 다른 아이를 보았다. 아이들이 행복하다는 증거를 그들은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 그 행복은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진짜 행복이란 부족함을 넘어설 수 있는 그런 마음자리에 있었다.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의 아이들은 그런 자리를 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빠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주변 환경이 전부 갖춰져있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넘어서려 하고 있었다. 이유는 사랑 때문이었다. 아이에게 원래 심긴 사랑 때문이었다. 그것을 키우고 그것을 이끄는 힘 또한 사랑이었다. 그러는 목적도 그 결과물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셋은 또다시 처음처럼 하나가 되어 새로운 발걸음 위에 섰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어른 되어 그 아이를 맞이하면서 그는 또 하나의 아이 또 한 사람을 가슴에 안고 또 하나의 사랑을 다시 품었다.

그가 다시 아내를 만날 때도 그는 또 한 사람을 껴안을 것이고 또다시 더 큰 사람과 그 사랑을 안게 될 것이라 꿈꾸며 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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