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예담촌
▲ 토담길 남사예담촌의 총 6킬로미터 길이의 토담길 중 3.2킬로미터가 등록된 문화재로 귀중한 문화자산이다.
비오는 토요일 하루를 내원야영장에서 맛있는 먹거리와 여유를 만끽하며 보냈다. 그리고 일요일. 내원야영장의 퇴실시간은 낮 12시까지인데 9시가 넘은 시간에 일어난터라 간단히 빵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짐을 챙겼다. 배고픔은 여행을 오기전에 야영장 근처 맛집을 검색하다가 알아낸 진주의 유명한 냉면집에 들러 점심으로 냉면을 먹으며 달래기로 했다.
짐을 챙겨 야영장을 나와 진주로 가는 길에 길가에 있는 약초가게에 커피를 파는 걸 보고는 차를 멈췄다.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받아들고 나오다 길 건너편을 보니 한옥마을이 있었다. 멈춘김에 구경하러 가자며 길을 건넜는데 바로 그곳이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선정된 '남사예담촌'이었다.
남사마을에서는 수많은 선비들이 태어나 서당에서 공부하여 많은 수가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을 빛냈던 학문의 고장으로, 공자가 탄생하였던 니구산(尼丘山)과 사수(泗水)를 이곳 지명에 비유할 만큼 예로부터 학문을 숭상하는 마을로 유명하다.
▲ 이사재-유숙지 이순신 장군이 권율 도원수부가 있는 합천으로 가던 길에 하룻만 유숙한 곳
남사예담촌은 사극에서나 볼 법한 한옥마을로 한옥이 지어진 사이로 토담길이 나 있다. 이 마을의 토담길은 총 6km나 될만큼 길고 그 중 3.2km의 토담길은 등록문화재 281호로 귀중한 문화자산이기도 하다.
많은 한옥들 중에는 '이씨고가', '최씨고가'로 불리는 한옥이 있는데 이들은 각각 경남문화재자료 제118호와 117호이며 이씨고가에서는 민박을 통해 직접 한옥체험을 해볼 수도 있다. 또한 남사예담촌에는 이순신 장군이 권율 도원수부가 있는 합천으로 가던 길에 하룻밤 유숙한 '이사재-유숙지'도 만나볼 수 있다.
▲ 개구쟁이 길 예담길 제1코스인 개구쟁이길
전국 어디를 가나 걷기 좋은 길이 특별한 이름을 달고 사람들을 기다린다. 제주도의 '올레길'이 대표적인데 남사예담촌에 가면 '예담길'이 있다. 이자재-유숙지 옆으로 제1코스인 '개구쟁이 길'이 나 있었는데 오랜시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음산한 기운마저 들었다. 덕분에 길을 얼마 걷지 못하고 도로 돌아나와야 했다. 좋은길을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아주 아쉬운 부분이었다.
▲ 기산국악당 남사예담촌을 구경하다가 흘러나오는 국악에 이끌려오게 된 곳
마을전체가 한국의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명성이 아까울 정도로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에 안타까울 무렵 어디선가 들리는 국악 선율에 이끌려 도착한 곳. 바로 '기산국악당'이다. 이 국악당 덕분에 남사예담촌에 다시 오고 싶을만큼 멋진 곳이었다.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3채의 한옥으로 이루어진 기산 국악당은 기산관, 교육관, 기념관, 옥외공연장으로 꾸며져 있다. 기산관은 '기산 박현봉' 선생의 생애와 업적 자료를 볼 수 있고 기념관은 국악기 전시 및 소리체험을 할 수 있다. 교육관과 옥외공연장은 국악강좌, 강습회, 행사 등에 사용된다.
▲ 기념관 박현봉 선생의 제자들이 기증한 국악기를 비롯한 다양한 악기를 보고 연주음을 체험할 수 있는 곳
감미로운 국악의 선율이 흘러나오는 기산국악당은 대문채와 토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멋스러운 3채의 한옥에 마음마저 경건해진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곳은 기념관인데 기념관에 들어가면 박현봉 선생의 제자들이 기증한 국악기들을 볼 수 있다. 또한 보는 데서 끝나지 않고 각 악기 아래 달린 헤드셋을 쓰고 버튼을 누르면 해당 악기의 연주음악이 흘러나와 그 악기의 소리를 체험할 수 있었다.
대중음악에 대한 열망으로 음악을 하고자 하는 나에게 국악의 선율은 또 다른 음악세계에 눈을 뜨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학창시절 우리 전통악기라고는 '단소'와 '장구' 정도가 전부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많은 국악기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운 선율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이렇게 멋진 우리 소리를 체험할 수 있는 기산국악당이지만 찾는 이가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웠다. 일요일이라 휴일인데도 기념관의 악기 연주를 모두 들어보고 나온 1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단 1명의 방문객도 없었다. 이는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면서도 관리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남사예담촌'의 탓이 크다. 마을을 돌아보는 동안 '버려진 마을'의 느낌도 들었으니 찾는 이가 없는 게 무리는 아닐테다.
기산국악당의 매력에 빠져 사람들에게 이 곳을 꼭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동시에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는 남사예담촌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즐거움과 아쉬움을 품은채 남사예담촌을 빠져나와 다시 진주 냉면집을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