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총각의 귀촌 연습... '반 귀촌' 생활도 재미있네
▲ 옥상텃밭 우리집 옥상에 있는 자그마한 텃밭
나이를 점점 먹어갈수록 도시를 떠나 조용한 마을로 귀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평생을 도시에서 자라서 그런지 또 너무 시골은 싫다. 적당한 중소도시 외곽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다. 한데 또 그런 곳은 비싸서 집 한 채 지을 엄두가 나질 않으니 이 꿈 역시도 이루기 쉬운 게 아니다.
매주 금요일이면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열혈 시청하면서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 분명 농사는 엄청난 노동이 필요하고 힘들다고들 말하는데 화면 속에 보이는 소소한 행복들이 너무 부러운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 집에도 텃밭이 있다. 몇 년째 어머니가 공들여 작물을 재배하고 계시는 옥상 텃밭이다.
빨간 고무대야 3개로 이루어진 우리 집 텃밭. 이 조그만 텃밭에서 상추와 고추를 몇 년째 심어서 풍족하게 먹고 있다. 특히 상추는 <삼시세끼>에서도 '상추 나무'라고 말할 만큼 잘 자란다. 그 덕에 어머니와 나, 두 식구가 세끼를 모두 상추로 먹어도 자라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도 많다.
▲ 고추 옥상텃밭에 고추가 주렁 주렁 열렸다.
지금은 우리 집 텃밭은 고추가 한창이다. 나는 매운 고추를 안 먹는다. 그런데 어머니는 매운 고추를 잘 드신다. 겨우 두 식구 있는 집인데 텃밭에 고추는 종자를 나눠 2가지를 다 심곤 한다. 지난해인가? 저녁에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며 옥상에 고추를 따러 갔는데 어머니는 왼쪽에 청양고추를, 나는 오른쪽에 풋고추를 각자 먹을 만큼 따오기도 했다.
오랜만에 텃밭에 올라가니 빨갛게 익은 고추도 나무에 많이 달려 있었다. 요리할 때 재료 찾느라 냉장고를 뒤지면 부쩍 붉은 고추가 많더라니, 역시나 우리 옥상 텃밭에서 난 작물이었다.
도시 총각의 귀촌 연습... 채소에 관심이 생긴다
▲ 상추씨 상추시즌이 지나고 가지만 길게 자라 상추씨가 남아있다
지금 우리 집 텃밭에 상추 시즌은 지났다. 캠핑을 좋아하는 내가 봄부터 한창 캠핑을 다니면서 고기 구워 먹기 위해 쌈 채소를 사게 마련인데 우리 집 옥상 텃밭 덕에 상추를 돈 주고 사서 간 일이 거의 없다. 한번은 어머니 안 계실 때 내가 상추를 뜯어 간다고 한 포기를 몽땅 뜯은 적이 있는데 상춧잎은 바깥쪽에 큰 잎부터 따먹는 게 '방법'이란다.
뭣도 모르고 나는 한 포기를 통째로 잡고 속에 막 자라나는 어린잎까지 몽땅 뜯어버렸다. 그 덕에 상추 한 포기가 세상을 하직했다. 지금은 상춧잎이 없고, 가지가 길게 자라 상추씨만 남아 있다. 나중에 이 씨를 받아서 내년에 다시 농사 지으실 거라고 하셨다. 내년 농사부터는 나도 조금씩 배워야겠다. 귀촌하려면 지금부터 조금씩 준비를 해야 한다.
▲ 단맛강한 고추 옥상텃밭에서 갓 따온 고추에서 강한 단맛이 느껴졌다
올라간 김에 고추 몇 개를 따서 내려왔다. 오늘 저녁상에는 옥상 텃밭에서 갓 따온 고추가 올라왔다. 고추가 엄청나게 크다. 그런데 신기하게 끝이 뾰족하지가 않고 동그랗다.
쌈장 살짝 찍어 올려 고추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이게 고추의 맛인가 싶을 정도로 '달다.' 채소에서 나는 단맛은 설탕에서 나는 단맛과는 다르다. 입안에서 향과 함께 퍼지는 달달한 고추의 맛에 농사의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물론 내가 농사지은 건 아니지만).
마냥 귀촌 생활을 꿈꾸기만 했는데 우리 집에도 텃밭이 있고 '반 귀촌'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단지 내가 관심이 없었을 뿐이었다. 요리에 재미를 붙여가면서 자연스럽게 작물을 재배하는 데도 관심이 생긴다. 주방장들이 큰 농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이런 데서 시작되는건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