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촌놈'의 잠실야구장 원정 관람기
▲ VIP입장권 8/26 잠실에서 열린 두산vs롯데 프로야구 VIP 입장권을 반값에 구매했다
고향이 부산인 나는 '당연히'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경남이라 주변에는 NC 다이노스로 갈아탄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다. 부산 사직 야구장의 응원문화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열정을 가진 부산이 좋고 그런 부산이 연고인 롯데 자이언츠가 좋다.
직장을 다닐때는 회사에 야구동호회가 있었다. 우리는 '경남공공기관, 직장인리그'에서 뛰었는데 우리 리그의 홈 구장은 '마산야구장'이었다. 당시 롯데 자이언츠의 세컨드 구장으로 사용되던 시절었는데 자이언츠 경기가 있었던 주말에 야구를 하러 가면 로이스터 감독의 작전판이 덕아웃에 그대로 붙어 있곤 했다.
사회인 야구를 하는 사람들은 프로구장에서 뛴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안다. 우리는 프로구장에서 뛸 수 있었기에 단 한 번의 귀찮음도 없이 집에서 고속도로를 1시간 가까이 달려야 갈 수 있는 마산구장까지 야구를 하러 다녔다.
하지만 NC 다이노스가 창단하면서 우리의 홈구장인 마산구장을 더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안 그래도 롯데 자이언츠의 라이벌 구단인데다 내가 뛰는 구장까지 빼앗겼으니 나에게 있어 NC 다이노스는 밉디 미운 구단일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나의 '자이언츠 사랑'은 더 깊어져 갔다.
직장을 그만두고 홀로서기를 시작하면서 사는 게 바빠 그렇게 좋아하던 야구도 멀리하고 지냈다. 특히 올 시즌엔 3월 시범경기 때 한번 직관(직접관람) 가보고는 더 이상 야구관람을 하러 가지 못했다.
한창 야구를 잘 보러 다니던 시절엔 김해 상동에 있는 롯데 자이언츠 2군 경기장에도 열심히 다녔다. 2군 경기장에 가면 비교적 선수들과 쉽게 접촉할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당시 내가 좋아하던 조성환 선수가 2군에 있을 때 유니폼에 사인을 받았다. 조성환 선수가 당시 사회인 야구 2루수였던 내 롤모델이었기 때문에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그리고 어느 날은 사직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고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당시 롯데 자이언츠의 외국인 선수 '사도스키'를 만나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런 에피소드들이 쌓여가면서 더욱 열렬히 자이언츠를 좋아하게 됐다.
▲ 선수단 출입구 VIP 티켓을 소지하니 선수단이 출입하는 곳으로 들어갈수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익힌토마토 요리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덕에 아주 오랜만에 서울 사는 오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와는 열여덟, 고등학교 2학년 때 알게 된 친구다. 당시 나는 2학년 5반 20번이었고 그 친구는 19번이었다. 둘 다 참 '꼴통들'이었는데 지금 철 들어서 자기 밥벌이 하고 사는 것 보면 신기하다.
내가 아주 오랜만에 서울에 온다고 친구가 인터넷을 뒤져 잠실 야구장 VIP 티켓을 반값에 구했다고 했다. 때마침 그 날은 롯데 자이언츠가 잠실로 원정 오는 날이었고 둘 다 자이언츠의 팬인 우리는 기쁜 마음에 잠실 야구장으로 갔다. 이것이 부산 '촌놈'의 첫 잠실 원정 관람이었다.
서울IC를 통과 할 때쯤 친구에게 티켓을 구했다는 연락이 왔다. 내가 동대문 숙소로 가는 길에 여의나루역으로 가서 티켓을 받기로 했고 친구는 집이 남양주라 시간 맞춰 잠실 야구장 앞으로 오기로 했다. 그렇게 각개전투로 경기 시작 전에 도착하기 위한 작전이 시작됐다.
난생 처음으로 차를 가지고 서울에 온 나는 서울의 교통체증에 10년은 늙어 버린 것 같다. 교차로는 많아서 신호란 신호는 다 걸리고 어떻게 평일 낮에도 길에 다니는 차가 이렇게 많은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 지옥같은 길을 뚫고 겨우 여의나루에 도착해서 티켓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동대문 게스트하우스로 가서 체크인을 하고 주차를 해둔 채 잠실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다행히 2호선 지하철을 타면 환승 없이 잠실로 갈 수 있었다. 야구장에 가기 위해서는 잠실에서 두 정거장을 더 지나 '종합운동장'역에 내려야 한다. 잠실을 지날 때 남양주에서 올라오는 친구가 연락이 왔고 신기하게도 우리는 같은 지하철을 타게 됐다. 우연히 타이밍이 딱 맞은 것이다.
다행히 딱 제 시간에 야구장에 도착했다. 배가 고픈 우리는 지하철역 안에 있는 분식 가게에서 김밥과 떡볶이, 순대를 사서 야구장으로 들어갔다. VIP 티켓을 소지하고 있으니 선수단이 이용하는 출입구를 통해 야구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게다가 경기장 입구에 대기하고 있던 직원분에게 자리 안내까지 받을 수 있었다. VIP가 괜히 VIP가 아니었다.
여기가 서울이야? 부산이야? 팬들의 '봉다리 응원'
▲ 맥주와 야구 야구장에서는 시원한 맥주가 빠질수 없다
1회초 1번 타자로 나온 손아섭이 시원한 중전 안타를 치면서 경기가 시작됐다. 곧 첫 득점이 나왔고 좋은 출발이었다. 하지만 4회에 역전을 당했고 이후 8회에 있었던 재역전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서 이날 롯데 자이언츠는 패배했다. 경기 내용도 아쉬움이 많은 날이었다. 두산보다 더 많은 안타를 치고도 이기지 못했다.
우리가 앉은 VIP석은 3루 쪽에 가까운 맨 앞자리였다. 마치 TV로 보는 것과 같은 구도에 생동감이 느껴지는 자리였다. 운동장에서는 자이언츠가 검정색 원정 유니폼을 입고 뛰고 있었다. 부산에서는 입지 않는 유니폼이다. 원정 유니폼을 입고 뛰는 자이언츠의 경기를 직접 본 것도 처음이라 신기했다.
서울에는 부산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아주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 말을 잠실 야구장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야구를 보는 내내 여기가 서울인지 아니면 부산인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단지 응원석이 3루 쪽에 있다는 것 이외에는 부산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응원단장 조지훈님을 비롯해 '사직여신' 박기량과 치어리더분들도 잠실에 원정을 와 있었다. 그냥 여긴 부산이었다.
동대문에서 지하철을 타고 잠실로 오는 길에도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은 팬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야구장 찾아가는 길을 몰라도 그 사람들만 따라가면 야구장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집에 두고 온 내 자이언츠 사인 유니폼과 자이언츠 깃발이 아쉬웠다.
▲ 봉다리 3루측 롯데자이언츠 팬들은 머리에 '봉다리'를 쓰고 응원을 하고 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3루 측에 포진된 자이언츠의 팬들을 볼 수 있었다. 이닝이 바뀔 때마다 치어리더들의 공연도 부산과 똑같이 진행됐고 응원가와 응원방식도 부산과 똑같았다. 특히 경기 후반부가 되니 사직 야구장의 명물인 '봉다리 응원'이 시작됐다.
모두가 주황색 비닐봉지를 머리에 쓰고 자이언츠 선수들을 응원했다. 서울에서 본 그 광경에 왠지 모를 감동이 밀려왔다. 마치 외국에서 우리나라 스포츠 경기를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경기에서 자이언츠가 승리를 했다면 더 없이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져도 괜찮다. 다음에 이기면 되니까. 단지 오랜 친구와 함께 고향의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 자이언츠 선수들에게 고맙다.
그리고 서울에 살고 있는 많은 부산 사람들이 왜 잠실 야구장을 찾는 지도 알겠다. 물론 야구가 좋고 자이언츠가 좋아서 오겠지만 여기에 오면 그 시간만큼은 내 고향 부산에 있는 기분이 들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수 있어서 찾는 것이 아닐까 싶다. 부산 사람들에게 있어 잠실야구장은 야구 그 이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