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창업가의 꿈과 현실⑥] 무소유
▲ 명함 사무실 선반에 올려진 나의 여러가지 명함
직장을 그만두고 10개월 동안을 사무실 없이 내 방 책상을 사무실 삼아 버텼다. 그러다 집을 이사하게 됐고 내 방 공간이 좀 더 좁아지면서 별도의 사무실 공간이 필요하게 됐다. 그렇게 집에서 버스 3정거장 거리에 조그만 빌라를 하나 대출받아 샀고, 사무실 이자 내는 대신 대출금을 갚으며 그 빌라를 사무실 공간으로 쓰기 시작했다.
우리 회사는 직원이 없는 1인기업 형태다. 말이 좋아 1인기업이지 거의 '프리랜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끔 '직원이 있어야 매출을 더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직원이 있으면 오히려 사장이 직원들 눈치를 보며 자유롭게 운영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것 같아, 해볼 수 있을 때까지는 혼자서 운영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일은 나에게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원을 제공하지 못했다. 직장을 나오면서 받은 퇴직금과 몇개의 적금통장이 한동안 내 생활자금이 되어주고 있었다. 대신 나는 직장생활을 할 때 보다 훨씬 더 많은 '자유시간'을 얻었다. 일하는 시간대비 수입을 계산하면 아마 훨씬 더 효율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원하는 수입을 얻을 만큼의 '일감'이 아직 없다는 것인데 그건 시간이 지나면 차차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행복'을 즐기기로 했다. 우선 제일 좋은건 아침에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소리'가 사라졌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과 달리, 나는 나의 출근 시간을 내 생활패턴에 맞게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억지로 시간에 내 생활패턴을 맞출 필요가 없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휴가기간이나 휴일만 되면 나는 '저녁형'인간으로 변신하곤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는 다시 '저녁형'인간이 됐다.
새벽 5시 반이면 알람소리를 듣고 억지로 일어나야 했던 예전과 달리 나의 기상시간은 오전 8시로 늦춰졌다. 평소 8시면 사무실에 도착할 시간인데 창업을 하고 난 후의 나는 8시에 알람소리를 듣지 않고 자연스럽게 눈을 떴다. 그리고는 일어나 여유롭게 집앞에 있는 생태하천 공원을 따라 1시간 가량 산보를 하며 아침 운동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출근을 한 후라 그 시간에 운동을 하면 동네에 계신 어르신들이나 주부들이 운동하러 많이 나온다. 나 같은 젊은 사람들은 학교며 직장이며 모두 어딘가로 갔을 시간이기 때문에 나에게 느껴지는 '여유'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운동후에는 샤워를 하고 아침식사로 우유와 바나나를 믹서기에 함께 갈아 마신다. 바나나가 나트륨 배출에 좋다기에 회사를 그만두고 난 후부터 꾸준히 내 아침 대용이 되고 있다.
이제 출근 준비를 한다. 직장에 다닐 때 입던 '비지니스 캐주얼'의상들은 옷장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는지 오래다. 직원도 없이 혼자 근무하는 작은 사무실이기에 누구도 내 의상으로 뭐라할 사람은 없다. 게다가 나의 고객들은 '온라인' 상에서 만나 상담하고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더욱 더 의상으로 예의나 격식따위를 차릴 필요는 없었다.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도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텐데' 라는 DJ DOC의 노랫말처럼 나는 청바지도 입고가고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사무실을 나가기도 한다. 창업을 하고 좋은 점 중에 하나는 또 이런 의상의 자유로움이다.
내가 사무실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전 10시~10시 반 정도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진다. 사무실로 이용하고 있는 빌라의 다른 세대는 모두 '거주용'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출근하는 시간이면 빌라 주차장은 텅텅 빈다.
평소엔 차 없이 걸어서 출근하기 때문에 주차장을 이용할 일은 없지만 오후시간이나 저녁시간에 다른 스케줄이 있을 때는 차를 가지고 가는데 넓은 주차장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낮에 사무실에 가끔 찾아오는 지인들에게도 편히 주차장을 이용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좋다.
'불금' 오후 3시 퇴근...<무소유>의 행복
▲ 퇴근길 일하기 싫은 금요일은 일찍 퇴근하곤 했다
나는 '효율성'을 많이 따지는 편이다. 예전에 직장생활을 할 때도 일하는 방식에 있어 효율을 많이 따졌고 가능하면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걸 좋아했다. 그 습관은 창업을 한 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보통 10시에 사무실에 나가면 6시나 7시쯤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시간동안 나는 '딴짓'하지 않고 업무에 집중했다.
내가 하는 일의 주 수입원은 '웨딩'관련 콘텐츠 제작 용역이다. 이 일은 아무래도 '시즌'이 있는 일이다보니 봄,가을 시즌엔 일이 많고 여름,겨울은 비 시즌으로 일감이 뚝 떨어진다. 나는 이 비 시즌을 이용해서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해보기 시작했다. 어릴적부터 하고 싶었던 힙합음악을 만들어 '디지털 싱글'앨범을 내기도 했고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써서 '책'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대학 다닐 때 스펙을 쌓기 위해 하던 '대외활동'을 나는 30대가 되어서야 시작했다. 단지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러 기관과 지자체의 '기자단'활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도 할 수 있었고 더불어 많지는 않지만 짭짤한 '용돈벌이'도 됐기 때문에 꾸준히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
이렇게 나는 내가 사무실에 나가서 집에 올때까지 대략 7~8시간 동안 해야할 일들을 내 스스로가 찾아서 만들어냈고 딱히 '안해도' 별 문제가 없는 일이지만 '하면' 약간의 수입과 미래의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을 계속해서 해 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명함'은 하나씩 더 늘어갔다.
마지막으로 창업하고 가장 좋은 것은 내가 원하는대로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고 쉬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쉴 수 있다는게 가장 좋았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갑상선암' 투병을 했다. 큰 수술과 치료 후 아직도 회복중이다. 그랬기에 내 몸 컨디션은 정상인들보다 더 관리하기가 힘들었고 쉽게 피로를 느꼈다.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쉬고 싶은 날이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쉬거나 사무실에 나가고 싶지 않을 때는 집에서 노트북을 이용해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다.
현재 내 생활습관도 '미니멀 라이프'로 바꾸고 나니 생활을 유지 하는데 '큰 돈'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남들 쉴 때 쉬고, 일할 때도 쉴 수 있는' 사람이 됐다. 가끔 금요일에 사무실에 나가 있으면 오후에 급격하게 일을 하고 싶지 않는 순간이 온다. 그럴때면 과감히 컴퓨터를 끄고 일찌감치 퇴근을 한다. 출근한지 2~3시간만에 다시 퇴근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때는 직장인들이 업무시간에 잠시 '땡땡이' 치는 기분이다. 그만큼 그 시간은 '꿀맛'이다.
이렇게 나는 창업을 하고 소소한 행복을 찾았다. 그리고 내 옆에 경쟁상대가 없으니 '욕심'도 줄어 들었고 '스트레스' 또한 없어졌다. 그냥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내가 됐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바로 이런 행복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