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빠투툼 appatutum Feb 22. 2016

파워보드 수리, '능력 있는' 사원이 되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47] 잠시 동안의 외도를 끝내고 다시 '엔지니어'로

"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 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 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 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 조직개편 내가 퇴사를 결정하고 나서 우리 회사는 내가 제안했던 '중간관리자'제도를 도입했다 


구미에서 유명한 구인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려놓은 것을 보고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어떤 회사인지 모르고 통화하는데 회사의 이름이 플라스틱 케이스를 만드는 회사들과 비슷한 이름이라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회사는 이름과 달리 LCD(Liquid Crystal Display) 모니터용 보드를 만드는 회사였다.


처음 CRT(Cathode Ray Tube - 브라운관)로 시작해 현재 PDP(Plasma Display Panel)를 하고 있으니 이제 LCD로 자리를 옮기면 어지간한 디스플레이 소자는 다 섭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 전화를 한 그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 


구미 1 공단 큰 대기업 근처에 있는 그 회사는 작은 중소기업이었다. 대부분의 중소기업 환경이 그리 좋지 않은 게 현실인데 1년이라는 시간을 대기업 연구소 아주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다 보니 열악한 중소기업 환경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도 이왕 면접을 보러 왔기 때문에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 회사에 들어오게 되면 나는 예전처럼 다시 QA(Quality Assurance - 품질보증) 업무를 할 수 있었다. 1년간 한 회사의 '관리자'가 되어 엔지니어를 떠났던 내가 다시 '현업'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연봉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결국 나는 그 열악한 환경이 이내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의 대기업은 내가 계속해서 근무할 수 있는 곳이 아닌 것은 분명했기에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면접을 끝내며 아직 현재 직장에서 퇴사를 하기 전이라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그리고 2주가량의 시간을 받았다. 2주 정도면 내가 하던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자리를 옮기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퇴사를 하기 위해서는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더 다녀야 했다.


사장님께 사직서를 냈다. 이미 내가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셔서 그런지 붙잡지 않고 내 사직서를 받아들이셨다. 그리고는 이내 아버지처럼 '갈 곳은 구했냐'고 물어보셨다. 발이 넓은 사장님께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서 면접을 보고 온 회사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다. 그 회사 홈페이지를 보시던 사장님은 갑자기 전화를 들고 내가 면접을 보고 온 그 회사 사장님께 전화를 거셨다.


사장님의 돌발행동에 깜짝 놀랐지만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새로  이직할 회사의 사장님도 내가 지금 근무하고 있는 이 대기업 출신이셨다. 같은 시기에 이 대기업을 다니셨던 분들이라 잘은 몰라도 안면 정도는 있는 사이였다. 전화를 걸어 간단히 안부 인사를 건넨 뒤 내 이야기를 꺼내셨다.


'우리 회사 관리자로 내가 데리고 있던 친구인데 인수인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니 한 달 뒤에 보내주겠다. 똑똑한 녀석이니 잘 부탁한다'가 그 내용이었다. 그렇게 사장님의 전화 한 통화에 새로운 직장의 입사는 한 달 뒤로 늦춰졌고 나는 우리 회사에서 한 달을 더 근무해야 했다.


마지막 한 달 동안 나는 내가 진행해온 업무에 대해 '인수인계서' 겸 '관리자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야 했다. 내가 인수인계를 준비하는 동안 사장님은 새로운 관리자를 영업하기 위해 구인활동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내 다음 관리자로 오신 분은 외부에서 영입한 분이었는데 역시 같은 대기업 출신의 나이가 많은 분이었다.


나의 퇴사가 결정되고 새로운 관리자가 영입된 후 회사는 새로운 조직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내가 한창 힘들었던 시기에 사장님께 제안한 것처럼 '중간관리자'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사장님께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 더 일찍 조직 구조가 바뀌어졌었다면 '나도 이렇게 포기하고 떠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생각했다.


그래도 하나 고무적인 건 내가 우리 회사로 스카우트 해온 내 친한 친구가 '평가실'의 수장으로 승진을 해서 중간관리자가 된 것이다.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던 시절 생산 라인의 수리사로 뽑아 일을 가르쳤던 친구였고 우리 회사에도 다시 내가 스카우트를 해온 친구인데 '함께하자'고 데려와놓고 나 혼자 도망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혼자서 잘 해나가는 모습을 보니 어쩌면 내가 너무 이 친구를  과소평가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더 미안해졌다.


회사의 조직이 바뀌는 모습을 보며 내심 서운한 내 마음을 아셨는지 사장님은 나에게 '네가 그만두지 않았어도 중간관리자를 둬서 네 짐을 덜 어주려고 했었다'고 하셨다. 그 말을 끝으로 이제 두 번 다시는 들어와보지 못할 이 대기업 연구소를 떠났다. '창립 멤버'라는 프리미엄도, 손수 책상 들어 옮기며 만들었던 우리 사무실도 모두 다 함께 이별해야 했다.


새로운 직장... 입사와 동시에 '능력 있는' 사원이 됐다


▲ LCD Power 검사실에 방치되던 Power 보드를 모두 꺼내서 수리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회사에 출근하기까지는 일주일 가량의 시간이 있었다. 퇴사를 하고 새로운 회사에 출근을 하기로 했던 날이  여름휴가 기간이라 나도 같이  여름휴가를 보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휴가를 보냈다면 이렇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텐데 기분 좋은 휴가였다.


새로운 직장에 첫 출근을 하던 날 아침엔 시간이 많이 남았다. 오전 8시까지 출근을 하던 대기업 연구소와 달리 이번 회사는 출근시간이 오전 9시까지였다. 생산 라인을 가지고 있는 회사에서는 드물게 늦은 출근시간이었다. 출근길은 구미 인동대교를 지나 우회전해서 강변 주차장에 주차했던 이전 직장과 비슷한 코스로 인동대교를 지나  좌회전하면 새로운 우리 회사가 있었다.


거리상으로는 약간 더 멀었지만 주차장에서 회사까지 엄청 먼 거리를 걸어가야 했던 전 직장과 달리 회사 마당에 주차를 하면 바로 사무실로 올라갈 수 있었기 때문에 소요시간은 더 짧았다. 그리고  구내식당에서는 기숙사에 거주하는 사원들을 위해 매일 아침 식사가 나왔는데 기숙사에 거주하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었기에 난생처음으로 타지에 올라와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침을 먹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회사는 본관동과 기숙사동 2개의 건물로 되어 있었다. 본관동 1층에는 생산 라인과 자재 창고가 있었고 2층은 각 부서의 사무실과 연구소가 있었다. 기숙사동 1층은  구내식당이었고 2층은 기숙사가 있었다. 우리 QA 사무실은 2층으로 올라가면 여러 개의 방이 있는데  그중 우측 제일 첫 번째 방이었다. 넓은 사무실에 파티션으로 부서가 구분되어 있던 회사들과 달리 각각의 개별 방으로 부서 사무실이 구분되어 있었다.


QA팀은 이번에 새로 입사한 나와 또 한 명을 포함해 7명이었다. 하지만 팀장님과 대리님 2명이 중국 공장에 장기 파견을 나가 있는 상태라 한국 공장에는 5명이 함께 근무를 했다. 팀장 대행을 맡고 있는 과장님을 중심으로 나머지 4명은 LCD 모니터에 들어가는 보드를 각 종류별로 한 가지씩 담당하게 됐다.


회사 1층 생산 라인 옆에는 QA팀 검사실이 있었다. 좁은 공간에 빡빡하게 들어찬 검사실에는 거래처로부터 반품이 되어서 들어온 불량 보드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그중에 내가 담당해야 할 'Power' 보드가 몇 박스 방치되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꺼내서 수리했다. CRT TV 수리사를 해서 그런지 이런 간단한 아날로그 회로 수리는 나에게 식은 죽 먹기였다. 


다른 팀원들은 내가 입사하자마자 보드를 수리해 내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동안 수리를 할 줄 몰라서 방치해둔 제품이었던 것이다. 역시 중소기업은 열악하다. 그렇다 보니 인력들의 역량도 대기업과 비교해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에겐 아주 간단한 이 일이 누군가에겐 아주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입사와 동시에 '능력 있는 사원'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전시 제품의 고장,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