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졸사원이다 58] 깐깐한 팀장으로부터 결재를 받아내는 요령
"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 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 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 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 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 보고서 셋톱박스 재고조사를 통해 월 1회 재고조사 결산보고를 올려야 했다
입사하고 약 한 달간 스타일이 다른 선임과 일하면서 '노가다'만 해왔다. 그런 터라 선임이 서울 본사로 올라가고 내가 주도적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게 됐을 때는 무척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아직 미숙한 실무능력이 내 발목을 잡았다.
내게 처음 닥친 시련은 바로 '결산보고'였다. 내가 담당하는 업무는 우리 회사 창고와 협력사 창고 그리고 고객에게 서비스 중인 '셋톱박스'의 구매·재고관리 업무였는데 한 달에 한 번씩 전체 셋톱박스의 재고조사를 시행하고 결과를 보고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겨우 구매한 장비들을 ERP에 등록하고 협력사로 출고시키고 철거된 장비를 우리 회사로 반납시키는 일상 업무를 할 줄 알게 됐는데 재고조사와 더불어 결산보고는 무리였다.
지난달까지 선임이 해온 결산보고 품의서를 보면서 재고조사와 결과보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구했다. 하지만 이제 갓 입사 한 달이 조금 넘은 내게는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숙제였다. 각자 다른 분야의 업무를 하고 있는 팀원들이기에 마땅히 물어볼만한 곳도 없었다.
결국 서울에서 힘들게 적응하고 있을 선임에게 자주 전화를 걸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그것도 중단해야 했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선임의 귀찮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됐다.
그렇게 며칠 동안을 고민한 끝에 결산보고서를 완성했다. 선임이 지난달에 결재를 받아놓은 품의서 양식을 재사용해 내용과 숫자만 바꿨다. 매달 현황을 보고 하는 자료라 계속 같은 형태로 보고돼 온 것을 확인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게 작성한 품의서를 가지고 팀장님께 결재를 받으러 갔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우리 회사는 사내 시스템을 이용해 전자결재를 받게 돼 있었다. 하지만 형식적인 절차였을 뿐, 사전에 오프라인으로 팀장님께 결재를 득한 뒤 시스템을 통해 전자결재 상신을 해야 했다. 출력을 해서 팀장님께 가지고 간 내 품의서는 온통 팀장님이 이리저리 써둔 메모들로 가득했고 '신입사원이 이렇게 서류 작업을 못하는데 선배들은 관심도 안 가지고 뭐하는 거냐'며 괜히 다른 선배들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분명 내가 작성한 품의서는 지난달까지 수개월 동안 선임이 작성하고 우리 팀장님이 결재를 해온 품의서랑 똑같았다. 물론 내가 재고조사에 대한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팀장님의 지적사항은 내용의 문제가 아니었다. 품의서 작성 형태에 대한 지적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팀장님 자리 옆에 있는 조그만 원형의자(팀원들은 이 의자에 앉는 것을 싫어한다, 최소 2시간은 잔소리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에 앉아 호되게 당하고 의기소침해져 창고로 돌아와 앉아 있을 때 부서에서 기획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선배가 올라와서 품의서 작성요령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결론이 먼저 나와야 한다, 마지막에 나와야 한다, 문단의 줄은 이렇게 맞춰야 한다' 등 팀장님이 좋아하는 문서의 구성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그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팀장님께 가져간 품의서가 지난달까지 선임이 계속 문제없이 결재받아오던 양식이라고 말씀드렸다. 그제야 선배는 나에게 '팀장님이 지금 신입사원 길들이기 하는 거야'라고 귀띔해줬다.
팀원들은 5만 원이 넘는 고가의 LCD 필름을 함께 구매했다
▲ 노트북 팀원들은 측면에서는 화면이 보이지 않게 하는 고가의 LCD 필름을 함께 구매했다
우리 팀장님은 팀원들을 아주 힘들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분명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팀장님들 대할 때 아주 힘들어했다. 그래서였을까 팀원들은 아주 단합이 잘 됐다. 팀장님이 당시 '공공의 적'이었기 때문이다.
선배들은 품의서나 보고서를 작성하고 바로 결재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팀장님의 기분에 따라 결재를 받을 '타이밍'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결재판에 출력한 품의서를 끼우고 연신 팀장님의 눈치를 살피다가 기분이 좋아 보이는 타이밍에 결재 서류를 가지고 팀장님 자리로 가야 별말 없이 '결재(시스템으로) 올려'라는 대답을 들을 수가 있었다.
가끔 팀장님이 저기압일 때 급한 일정으로 결재를 받아야 하는 서류가 있으면 팀장님 책상 옆에 있는 동그란 원형 의자에 최소 2시간은 고개 숙이고 앉아 있을 각오를 해야 했다. 매일 팀장님과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선배들은 팀장님의 눈치를 수시로 살필 수 있었다.
반면 다른 층에서 근무하는 나를 포함한 몇몇의 팀원들은 결재서류를 가지고 팀장님이 계시는 사무실로 내려오다가, 다른 팀원이 팀장님께 혼나고 있거나 팀장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애꿎은 커피만 한잔 뽑아서 다시 올라가기 일쑤였다.
입사한 지 갓 한 달이 넘은 나는 그런 팀장님의 스타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껏 여러 회사를 다녔지만 이렇게 팀장님의 눈치를 보고 지내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면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차이인 것인데, 대기업은 팀장이 인사권을 가지고 있고 중소기업은 오너가 직접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더 위계질서가 철저하고 '상명하복' 시스템이 강하다.
나의 첫 품의서 사건은 5회 이상에 걸친 '전쟁 같은' 반려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겨우 결재를 득할 수 있었다.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진 후였다. 내가 완벽한 업무 파악이 된 상태였다면 팀장님께 조목조목 설명을 하면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는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부족한 나의 역량 탓에 질의응답조차 제대로 못했으니 팀장님은 내게 더 스파르타식으로 대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 사건이 있은 후부터 나는 팀장님 '눈치 보기' 반열에 올라 애꿎은 '커피 뽑기'에 동참해야 했다. 몇 달이 지나고 나에겐 한 가지 노하우가 생겼다. 팀장님이 외근을 나가려고 준비할 때 품의서를 가지고 '급한 건'이라며 결재를 받는 방법이다. 그때 결재를 받으러 가면 겉옷을 주섬 주섬 챙겨 입으시며 품의서를 대충 훑어본 뒤 '결재 올려'라고 하시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회사는 업무용 PC로 데스크톱이 아닌 노트북을 지급했다. 당시 주로 지급받았던 노트북 사이즈는 15인치였고 팀원들에겐 필수 아이템이 있었다. 그건 바로 노트북 LCD 앞에 부착하는 '필름'이었다. 그 필름을 부착하면 정면이 아닌 좌우 측면에서 LCD 화면을 볼 때 화면에 보이지 않았다. '보안 필름'이었다.
그 필름의 가격은 당시 인터넷 쇼핑몰에서 5만 원이 넘었다.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팀원들은 그 필름을 구매했다. 순간의 즐거움에 대한 '투자'인 것이었다. 보안 필름과 빠른 손놀림의 'Alt+Tap(윈도에서 창을 전환하는 단축키)만 있으면 팀장님이 내 쪽으로 다가와도 '완전범죄'를 꾸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피곤한 스타일의 팀장님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직장인으로서 아주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꼼꼼하게 챙기는 팀장님 덕분에 팀원들의 역량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향상됐다. 우리끼리 모여 지낼 때는 잘 몰랐던 그 사실이 약 1년이 지나 조직개편을 통해 경남 지역의 모든 지역 방송국이 1개의 본부로 통합되고 다른 지역의 구성원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됐을 때 실로 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