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졸사원이다 59] 전산 시스템 개편
"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 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 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 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 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 전산시스템 새롭게 개편된 사내 전산시스템은 오류가 많이 발생되었다
입사 한 달 만에 나의 선임이 서울 본사로 올라갔다.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 이 일을 오롯이 혼자서 끌고 나가야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동안 사용해오던 사내 전산 시스템이 개편되면서 매일 같이 사용해야 하는 장비 '입출고' 방법이 바뀌었다.
그동안은 우리 회사 담당자가 장비의 전산상 위치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었는데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협력업체의 수불관리가 가능해졌다. 분명 업무를 함에 있어 훨씬 좋은 취지였지만 개편 초기 시스템은 너무 불안정했고 업무를 진행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입출고 업무는 재고관리의 기본이자 수시로 발생되는 일상 업무다. 그런데 시스템 오류가 계속 발생되어서 입출고 결과가 전산에 반영되지 않아 현장에서 일어나는 업무는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다. 협력업체에서 장비를 수령하러 오면 출고시킬 장비를 챙겨주고 그 장비들을 전산상으로 '출고'시키는데 오류로 인해 저장이 안 되니 다음 업무로 넘어가지 못했다.
물론 실제 업무는 전산과 상관없이 장비를 협력업체에 보낼 수 있지만 그다음 업무인 개통 업무도 전산으로 진행되어야 했고 전산상 장비의 위치가 협력업체에 있는 상태가 아니면 개통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전산 처리가 되지 않은 장비를 아무리 협력업체로 보내봐야 사용을 할 수 없었다.
이런 북새통에 나는 더 어쩔 줄 몰랐다. 기존 전산 프로그램이 손에 익기도 전에 새로 개편되었는데 그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으니 막막했다. 사내 전산 시스템을 관리하는 부서는 서울 본사에 있었기 때문에 전화나 사내 메신저를 통해 오류가 발생되는 사항에 대해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건 바이(by) 건으로 조치를 받아가며 업무를 진행했다.
전국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전산 시스템의 문제라 전산 관리부서에는 엄청 많은 양의 전화와 메신저가 몰렸고 업무를 요청하는 사람들 중 단연 '짬'(조직 내에서 서열을 표현하는 은어)이 안 되는 내 요청은 뒤로 밀리기 일쑤였다.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내일 다시 오세요'
▲ 입출고 전산 오류로 장비의 입출고 업무가 마비되었다
하루는 모 협력업체 장비 담당자가 오전에 장비를 수령하러 회사에 들어왔다. 많지 않은 양이라 금방 장비를 챙겨주었고 전산으로 출고시키는 데 오류가 발생했다. 오류사항을 본사에 보내 조치를 요청했지만 오래 지연되었다. 하루 종일 그 협력업체 담당자는 나와 함께 점심 먹고 오후 내내 기다리다가 저녁까지 먹고도 처리가 안 돼서 내일 다시 오라며 빈 손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업부서와 현장의 각 협력업체들에게서 엄청난 민원전화가 걸려왔다. 가입자 댁에 개통이 지연되고 있으니 문제가 안 생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민원을 나에게 연락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닌데 '장비 때문에 개통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장비 담당자인 나에게 전화를 걸어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 나는 현장과 본사 사이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더 중요한 건 회사 내 같은 부서 사람들도 이런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업무의 특성상 각자 다른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내가 진행하는 업무는 단순히 장비가 납품되면 받아서 보관하다가 다시 협력업체에 필요할 때 내어주면 된다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생각해 보면 '장비관리'라는 업무가 애매한 위치의 업무라 연관된 부서가 엄청나게 많았음에도 실제 그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 일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는 해당 부서의 팀장들도 그 업무를 잘 몰랐다. 비슷한 다른 회사들과 달리 우리 회사는 이 업무가 기술을 담당하는 부서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입자들에게 품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인프라를 구성하거나 서비스 장애를 처리하는 기술부서 내에 장비의 구매·재고를 담당하는 업무가 포함되어 있었으니 일반적인 기술직 사원들과 소통이 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기술직 출신의 기술팀장들이 그 업무를 모르는 것도 당연했으며 단순한 생각으로 하찮은 업무로 취급하며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나 스스로 극복하는 길밖에는 답이 없었다. 이때부터 나는 '맨땅에 헤딩'으로 하나씩 몸소 체험하며 내공을 길러 나갔다. 선배들은 문제가 발생할 때 바로바로 본사에 전화를 걸어 해결했지만 나는 귀찮아도 오류가 발생할 때마다 화면을 캡처하고 내용을 정리했다.
오랜 시간 전산 시스템의 오류 건을 수집하고 정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본사 전산 담당부서와 대화가 되기 시작했다. 전산 담당 부서 안에서도 전산 시스템 각 메뉴별로 담당자가 나뉘어 있는데 한 가지 문제로 2개 이상의 메뉴에서 문제가 발생되면 자기 분야가 아니라 빨리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는 오히려 내가 두 사람에게 조언을 해서 해결되는 경우도 있었다.
'짬'이 안 된다는 설움을 겪으며 '맨땅에 헤딩'하며 내공을 키운 결과, 나는 빠르게 내가 담당하는 분야의 전문가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 결과 처음 입사했을 때 나이 어린 친구가 훨씬 나이도 많은 현장 직원들에게 '버릇없이 군다'는 소리하던 사람들도 공사 분명한 나를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고 전산 시스템 오류건을 분석하고 해결해 나가다 보니 다른 지역에서 나와 같은 장비 담당을 하는 직원들이 나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입사 반 년, 한 달만에 그만둬야 할지 고민하던 회사에서 적응하고 나의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던 황무지 같은 곳에서 나 스스로가 모든 걸 결정하고 업무 프로세스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음에 뿌듯한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1년 뒤, 나는 전국 장비 담당자 대표로 다음 버전 전산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에 '프로세스 설계자'로 참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