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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D Oct 19. 2024

시간낭비 알레르기

「일 중독자의 탈 수도권 결혼유학」 중

서울 시민이던 나는 하루 중 의식이 있는 시간을 회사와 반반 나눠 쓰면서 이상한 증상에 시달렸다.

가만히 있으면 호흡이 가빠지면서 몸이 간지럽고 심할 땐 이유 없이 화가 나는 증상이었다. 빠르게 걸으면 나을까 해서 만 보를 걸었더니 호흡은 돌아왔지만, 매일 만 보를 걷기에는 내가 너무 게으르고 집에 있기를 좋아해서 근본 원인을 찾아내야 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 이 증상은 출퇴근길에 책을 읽거나 들을 때, 퇴근 후에 소소한 일거리나 생산적인 활동을 할 때 비로소 괜찮아졌다. 근무 시간 외에는 최선을 다해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내게 청천벽력인 이 해결책을 알게 된 이후로 거의 매일을 장거리 달리기인 듯 괴로움과 뿌듯함의 반복 속에서 보냈다. 출근 전에는 독서, 음악 감상, 일기 쓰기, 퇴근 후에는 문화생활, 극단 활동, 브랜드 홍보 활동 등으로 하루를 빈틈없이 채웠다. 그때는 과한 효율을 부추기는 서울 분위기만 탓했다.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소도시로 이사 온 지 반년, 그때와 비슷한 증상이 돌아왔다.

새 회사에서 퇴근하고 나면 머리는 휴식을 원하는데 정작 쉬면 숨이 막히고 온몸이 간지러우면서 불안했다. 이번에는 헤매지 않고 몸의 일부처럼 착용하고는 했던 블루투스 이어폰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 자기 계발 영상을 듣거나 책을 당장 읽지 않더라도 가방에 두 권씩 넣고 다니면서 스스로를 진정시켰지만, 믿었던 이곳 슬로 시티 Slow City 에서마저 시간을 쪼개 써야 하는 현실에 당황하고 있다. 이쯤 되면 천상 개미로 태어난 나도 원인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수도권 밖에서는 틈새 시간에 어떤 일들을 도모할 수 있는지 다음 글부터 하나씩 공개해야겠다.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살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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