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내가 지킨다
지지난주, 2년 만의 건강검진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별일 없겠지 하면서도 나이가 들면서 건강에 대한 염려가 늘어나는 것은 40대들의 흔한 고민이리라. 그렇다고 세심하게 몸을 챙기지도 않으면서, 걱정은 걱정대로 하며 살고 있으니 참으로 심행(心行) 불일치의 삶이라 하겠다.
감사하게도 건강한 몸을 물려받아 병원 갈 일을 손에 꼽으며 살아온 나인데, 이틀 사이 연거푸 두 군데의 병원 진료를 보고 왔다. 긴 연휴를 앞두고 불쑥 불안한 마음이 치솟았던 건지, 연휴 전에 불안의 싹을 잘라내고 몸도 마음도 편히 쉬고 싶어서였을까. 근래 아빠와 어머님의 병원에 몇 번을 동행하며 노년의 건강에 대해 생각이 많았던 터라 자발적으로 병원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첫 번째 병원은 유방외과였다. 몇 년 전부터 검진 센터에서 유방 촬영을 하면 외부 병원에서 6개월마다 주기적으로 초음파 촬영을 하라는 소견이 있었다. 치밀 유방에 석회가 의심된다는 것인데, 검사지에 덜렁 한두 줄로 안내되는 문구로는 경각심을 못 느꼈었는지 단 한번 안 가고 어영부영 지나왔다. 깜깜이 게으름의 날들을 지나 이번 검진 결과를 기다리던 참인데, 갑자기 좌측 유방에 엄청난 크기의 멍울이 잡히는 게 아닌가. 하루 이틀 사이에 이렇게 커질 수 없을 텐데 나는 그동안 왜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인지. 갑자기 불안 지수가 치솟고 급기야 몇 년 전 누적되어 온 검사 결과가 떠오르면서 마침내 결과지가 도착할 날까지 기다리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이번 검진에는 유방 X선 촬영만 했으니 이참에 초음파를 제대로 봐야겠다는 심산으로 부랴부랴 집 근처의 유방외과를 찾았다. 기계처럼 촬영만 하고 끝났던 기존 검진과 달리, 유방외과 전문의의 꼼꼼한 검사와 설명은 그동안 무심했던 나를 반성하게 했고 유방외과 검진에 대해 중요성을 새로이 상기시켰다. 다행히 의사의 촉진과 초음파 상으로는 가장 흔한 양성 종양의 하나인 섬유선종이라는 소견이 나왔다. 다만, 꽤 크기가 커서 어쨌거나 종양 제거를 해야 한다는데 별일 아니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갑작스러운 결과에 당황스럽기도 하다. 아, 조직 검사도 해야 하는데 친절하게 병원에서 일일 실비 한도 배려(?)까지 해주는 덕에 토요일에 또 방문할 예정이다.
두 번째 병원은 정형외과다. 평소 정형외과라고는 딸내미 발목 인대 문제로 몇 번 동행한 게 전부일뿐, 거의 갈 일 없는 곳이었다. 문제의 증상은 사타구니와 발등 통증. 몇 달 전부터 운동 양과 강도를 높이며 체중 감량의 즐거움을 맛보았는데 그것에 취해 나도 모르게 몸을 혹사시켰나 보다. 며칠 전부터 갑자기 사타구니에 찌릿찌릿한 통증이 나타나 두고 보던 차에 난데없이 허리까지 시큰댔다. 깜짝 놀라 정신이 번쩍 하는 처음 겪는 느낌. 발등은 운동화 끈을 탄탄하게 묶었더니 압박되어 무리가 되었는지 묵직한 통증이 보름 넘게 지속되었다. 하기야 만년 늦잠꾸러기가 아침 일찍 벌떡 일어나 걷거나 달리고, 밤에는 날마다 줌바댄스 한다고 폴짝폴짝 뛰고 흔들었으니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
아무튼, 오늘 아침 찾은 근처의 정형외과는 엄청난 규모로 과잉 진료의 향기가 물씬했으나 든든한 실비보험을 의지해 마음껏 치료를 받고 왔다. 체외충격파, 신경치료주사, 물리치료까지 이어지는 토털 케어였다. 치료받는 동안 생각지도 못한 통증에 찔끔 놀라긴 했으나, 마음만은 진정되고 편안함이 느껴지는 희한한 감각이었다.
이틀 연속 두 군데의 병원을 오가는 동안 이제는 정말 병원을 가까이할 나이가 되었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불필요하게 들락날락하진 않아도, 내 몸의 이상이 느껴진다면 의무감으로 스스로 나를 챙겨야 한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병원 갈 일 없이 건강하다는 자만은 사실 무책임한 게으름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나이 듦과 속 안의 건강까지 세심히 챙기지 못한 나의 과오가 되었다. 그간 건강 챙김에 대해 무심했고 방치했던 통증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이제라도, 날씬하고 탄탄해진 외형에만 집중하느라 미처 돌보지 못했던 나의 진짜 몸을 제대로 챙기리라 다짐해 본다. 열흘 간의 긴 연휴 동안은 온전히 쉬면서 내면을 가다듬고 충전하는 시간으로 삼아 봐야지. 매일의 헬스 기록을 가득 채우려던 하트 욕심은 좀 내려놓고, 10월의 절반은 휴식하고 회복하는 시간으로 빼곡히 채워보려 한다. 운동 강박을 내려놓으니 반대급부로 등장한 독서 강박. 왠지 다음 병원은 침침해진 눈을 들여다보는 안과를 가게 될 것이라는 슬픈 예감이 스멀스멀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