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용기로 거듭나리
내 남편은 공군 장교 제대와 동시에 취업과 가정을 일군, 교과서다운 삶을 충실히 살아온 16년 차의 성실한 직장인이다. 나는 경력단절의 흔한 예로, 자기 계발보다 아이 둘을 키우는 현실 육아에 안주해 버린 평범한 주부였다.
부모님의 큰 도움 없이 서로의 저축으로 신혼살림을 꾸렸고, 둘 다 돈 불리는데 1도 재능이 없다 보니 월급이라는 한정된 자원으로 그저 알뜰하게 쪼개 쓰며 한 달 한 달 살아왔다. 그러나 월급은 손에 움켜쥔 모래알이어서 순식간에 빠져나가기 일쑤였고, 조금이나마 모아두면 모래성 부서지듯 전세계약 갱신금으로 훌훌, 돈 빌려준 은행 앞으로 훌훌, 굵직한 경조사로 훌훌 흩어졌다. 그래도 마통 없는 삶이라 자조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중산층이라 생각했건만 아, 이제는 중산층도 아닐런가. 자가를 소유하지도, 현금 자산도 얼마 없으니 그냥 대한민국 소시민의 어디쯤이겠다.
그러나 몇 년째 연봉은 제자리걸음이요, 물가상승은 100미터 전력질주이다 보니 이 속도의 간극을 메우는 일은 로또가 아니고선 절대 불가능하다. 그래도 괜찮다 다독여 보겠다. 인간 생활의 기본이 되는 의식주는 일단 갖췄으니, 그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는 앞으로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가족 모두 큰 키를 타고나 아무거나 대충 걸쳐도 태가 나니 의(衣),
몇 첩 반상 필요 없고 일품 메뉴 하나만 놓고도 만족하며 맛있게 먹으니 식(食),
내 집은 아니어도 2032년까지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서울 강남의 아파트가 있으니 주(住),
이 세 가지를 단단한 기반 삼아 당당히 어깨를 펴보려 한다.
우선 브런치 북을 구상하며 내 삶을 돌아보고, 깊은 내면을 조심스레 들춰봤다. 절약과 합리적 소비라는 키워드로 유쾌하게 넘어갈 수 있는 나의 삶이 왜 가끔 부끄럽고 궁상맞게 느껴졌는지, 자존감이 고꾸라지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기 위해서였다. 수학 문제같이 명쾌하게 똑 떨어지는 답은 찾지 못했다. 아마도 어두운 반지하주택을 벗어나지 못했던 내 유년의 결핍과 가난의 그림자가 성인이 되어서도 가끔 불쑥불쑥 삐져나와서 그런 것이라 어렴풋이 짐작될 뿐이다.
<가성비주의자의 행복충전>. 퍽퍽한 가정경제와 풍족한 소비 열망의 아이러니 속에서 여차저차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지혜롭고 용기 있게.
연재를 시작하지만 이미 엔딩은 정해져 있다. 로또 당첨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 생활비 좀 아껴보겠다며 아등바등하다가, 돈 좀 벌어보겠다며 요리조리 틈새 알바로 숨 쉴 구멍을 찾던 내가 어느새 '글 쓰는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일단 글쓰기로 얻는 소득은 돈이 아닌 기쁨과 만족으로 환산되고 있어서, 이전보다 훨씬 부자가 된 기분이다.
기왕 더 욕심내어서, 평범한 아줌마의 날 것 같은 글들이 독자에게 소소한 재미를 던져줄 공감 성장 에세이가 되는 궁극의 해피엔딩을 꿈꿔본다.
그림-스마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