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얼마전 대통령이 바뀌었다.
누군가에겐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고,
누군가에겐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두 개의 목소리를 중간에서 듣고 있노라면
사람의 생각이란 게
이토록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섬뜩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나는 한 정당의 지지율이 항상 높게 나오는 지역에서 자랐다.
어릴 적 어른들의 정치 이야기는
열띤 토론이 아니라,
함께 모여 한 정당을 향해 불만을 쏟아내는
일방적인 흐름에 가까웠다.
정치란 그런 줄 알았다.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다른 생각은 불편하거나 위험한 것으로 여겨졌다.
보수와 진보의 개념도 모른 채,
‘우리가 옳다’는 믿음 안에서 컸다.
대학에 들어와
내가 서 있는 세계가 조금 넓어지자
정치 이야기도 달라졌다.
지역이 달라지면 지지 정당도 달랐다.
어떤 친구는 진보를, 또 어떤 친구는 보수를 이야기했다.
처음으로 나와는 전혀 다른 관점을 마주하며
나는 ‘다름’이라는 것을 배워갔다.
하지만 대부분의 토론은
끝이 좋지 않았다.
결론은 나지 않았고,
감정만 상하기 일쑤였다.
그때부터 나는 정치 앞에서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누구의 말도 온전히 옳다고 하기 어려웠고,
내 스스로도 어떤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나는 점점 중간쯤에 서 있었다.
보수도, 진보도
그 자체로 옳거나 그르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 입장을 만든 배경이 더 궁금해졌다.
그 배경의 첫 번째는,
언제나 같은 채널에 고정된 TV 앞에서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던 우리 아빠였다.
한때는 그 모습이 참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토록 다채로운 세상에서
왜 늘 한쪽 이야기만 믿는 걸까.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건 선택이 아니라 환경이었다.
아빠가 자란 마을은
겹겹의 산처럼 사고도 단단히 닫혀 있었다.
정치적 색은 곧 동질감이었고,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공동체 밖으로 나서는 일이었다.
그 안에서
다른 입장을 가진다는 건
단순한 생각의 차이가 아니라,
삶 전체를 흔드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그런 시대와 공간을 살아냈다.
말하지 않아도 같은 방향을 지지하는 것이
질서였고, 생존이었으며, 인간관계의 전제였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그 시절, 그 지역의 공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이제야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가 ‘선택’했다기보다는
그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정치 이야기를 들을 때
사람들의 말보다
그 뒤에 있는 삶의 결을 먼저 본다.
정치는 이념 이전에 생의 흔적이고,
삶은 어떤 구호나 선명한 구분으로는
쉽게 나뉘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정치에 뚜렷한 입장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회피가 아니라,
배경과 맥락을 이해하려는 작은 노력이다.
정치 앞에서,
나는 오늘도 사람을 먼저 보려 한다.
그게,
한 사람의 아들로서,
또 누군가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내가 가진 가장 정직한 태도다.
나는 오늘도 사람의 결을 만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