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산문집
'무조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왔만, 생각한 대로 성과가 나오지 않고 모든 게 불만족스럽던 시절. 너무 힘들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던 <지지 않는다는 말> 을 만났다. 김연수 작가를 좋아했지만 이상하게도 이 작품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작품이었다. 돌고 돌아 만난 운명의 첫사랑처럼 2012년 초판을 찍었던 이 책을 만난 건 10여 년도 더 지난 후였으니까. 많이 돌아왔지만 초반부를 읽자마자 뭔가 느낌이 왔다. 물론, 모든 내용이 재미있었다고 하기엔 그때의 나는 작가의 사적인 달리기 라이프는 사실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작가가 건넨 따뜻한 위로 한 마디에 다시 신발끈을 고쳐 매고 한 발 더 걸어 나갈 희망을 보았다는 사실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중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지난해부터 오랫동안 몸을 담았던 업계를 떠나, 다른 곳을 기웃거리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와 어느 때보다 가장 낮은 보수를 받으며 지내고 있지만, 쉴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리던 과거보다는 어쩌면 하루하루가 더 명확할지 모른다. 늘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외국어 공부와 매일 일이라 끔찍이도 싫었던 어딘가에 꾸준하게 글을 올리는 것, 이따금 건강이 생각날 때 하던 운동. 오히려 쉬는 날 어떻게든 친구를 만나 술 한잔을 하려던 조급함과 휴가만 나오면 호텔로 떠나던 스트레스성 소비. 그리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바구니씩 쓸어 담던 유행하는 옷들과는 완전히 헤어졌다. 어쩌면 나는 이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던데,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나?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배우 황정음이 아유미에게 옷장을 소개하던 장면이 생각이 난다. 옷장에는 연예인이라도 해도 너무 화려한 일상복들이 가득했는데, 특히 이건 진짜 비싼 거야 하며 보여준 화려한 붉은색 퍼 코트는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내가 얼마나 우울했는지 알겠지? "라고 하면서 "내가 저걸 저 돈주고 왜 샀지? 지금 같으면 저금했지"라는 말을 하는데, 꼭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 또한 열심히 몸 바쳐 일한 대가로 나를 위한답시고 이것저것 마구 사모았으니까. 아마도 그녀도 나도 어떤 한 때를 건너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이제와 생각하니, 소유로부터 느끼는 행복은 가장 쉬운 행복인 것 같다.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아무튼 지금 달리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나는 아무도 이기지 않았지만,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으니까.
올해 여름은 많이 행복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