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 사당 3동 영아 아파트 5동 705호 일곱 번째 이야기
나는 우리 아파트의 봄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소녀였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컴컴한 복도 창문에서 내려보던 아파트의 봄은 정말이지 찬란했다. 아파트 중앙에 자리했던 작은 공원보다 화려한 벚꽃 놀이 장소를 살면서 만난 적이 있던가? 벚꽃비를 맞으며 피아노를 가던 나의 어린 시절은 이름 모를 분홍꽃이 필 때 절정에 다 달았다. 벚꽃으로는 공원에 들어가지 않아도 그 분홍꽃나무에 꽃이 필 때면 홀린 듯이 공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중학교 사춘기에도 나는 그 분홍 꽃나무 앞에서 앞머리에 핀을 꽂은 채 아디다스 트레이닝 복을 아래위로 입고 3동에 사는 은주와 사진을 찍었다. 방황하던 그 나이에도 나에게 봄은 그 분홍꽃이었다. 가장 먼저 3동 앞 목련이 피면 그 뒤로 3동과 5동 사이 개나리가 피었다. 그리고 5동 우리 집 앞 정원에 벚꽃이 피었다. 맨 마지막은 분홍꽃. 이 순서는 절대로 달라진 적이 없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이 아파트가 재개발될 때까지 봄이 오는 모습을 똑같이 보았다.
나는 봄을 좋아하지만, 사실 봄이 오면 여름이 오기 때문에 봄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나에게 여름은 최고의 계절이었으니까. 나는 냄새로 계절을 알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그 복도 창문으로 나는 봄의 향기를 맡았고, 여름의 열기를 느꼈다.
민들레 씨앗을 따서 불고 네 잎클로버를 찾으며 엄마가 따오라는 쑥을 캐고 그렇게 나는 봄을 보냈다. 벚꽃아래서 고무줄을 하고 땅따먹기를 하고 숨바꼭질을 하고 돗자리를 깔았다. 혼자도 좋고, 둘이면 더 좋고, 셋이면 행복해졌다. 하나 둘 콩벌레가 기어 나오고 봄비에 달려 나가 달팽이를 잡다 보면 빨간 장미가 피어났다. 장미 가시를 똑 부러뜨려 침을 발라 코에 얹으면 나는 코뿔소로 변했다. 유튜브가 없어도 넷플릭스가 없어도 할 것은 너무나 많고 매일이 모험이던 그 시절. 눈높이 수학이 밀려 놀러 나가지 못하는 날엔 베란다에 나가 철장 밖을 바라보며 놀이터에서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보며 엉엉 울었다. 하지만 놀지 못해 엉엉 울던 시절 그 봄날의 나는 매일 매일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