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 사당 3동 영아아파트 5동 705호의 여덟 번째 이야기
밤 열 시가 넘은 시각 인터폰이 울렸다. "그 댁 아버님으로 추정되는 분이 정문 경비초소에서 주무시고 있습니다" 경비실이었다. 엄마의 성화에 이불에 누워 삼십 마리까지 양을 세던 나와 동생은 신이 나서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간다. "아빠~~ 일어나" 아빠는 우리의 부름에 눈을 꿈뻑꿈뻑 뜨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번씩은 꼭 있는 집안 행사 같던 아빠를 데리러 가던 길. 어찌나 재미있던지, 아직까지 그 신나는 기분이 생생하다. 정문 초소를 넘어 놀이터 앞까지 와서 바위에서 주무시던 때도 있었다. 주로 여름에는 시원해서 잠시 바위에서 쉬어가다 잠이 드셨나 보다. 지금도 빨간 뚜껑 소주만 드시는 아버지는 모두가 알아주는 주당이다.
아버지의 여섯 남매 중 술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아빠 한 명. 할아버지조차 술이 받지 않는 몸이셨다. 왜 당신만 술을 드시게 되었냐 물으니, 작은할아버지 막걸리 심부름을 하다가 어린 시절 배가 고파 홀짝홀짝 마셨던 것이 이렇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우리 집은 술이 안 받는 집으로서, 집안에서 술을 먹는 아버지는 골칫덩어리였다. 그러나 아빠는 꿋꿋하게 술을 꾸준히 지금 일흔이 넘도록 드시고 계신다. 그것도 거의 매일.
그러다 보니 아빠 주변에는 늘 술로 인한 일화들이 많다. 특히 아파트까지는 어떻게든 기어라도 온 우리 아빠의 흑역사가 그곳에 새겨 있다.
친구들과 놀고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다 보면 저만치 아빠가 걸어간다. 앞으로 한 발 뒤로 두 발 특유의 취한 모습으로 집을 향해 걸어오신다. 아빠와 전화 통화가 안된다는 엄마에게 "엄마 내가 봤어, 아빠 걸어오는데 아마 한 시간은 넘게 걸릴 것 같아."라고 안심시킨다.
그도 그럴 것이 20분이면 올 거리를 늘 아빠는 한 시간이 넘어도 집에 도착을 못했다. 이유는 여러 개다. 일단 집으로 오는 길, 새로 생긴 어디든 들어가서 우리 간식거리를 사 오신다. 한 번은 집 근처에 파파이스가 오픈을 했는데, 메뉴가 다 영어고 길어서 그냥 매번 마감 때면 남은 닭을 다 포장해 달라고 해서 사 오셨다. 덕분에 질리도록 먹었는데, 사실 파파이스 닭은 꽤 비쌌다. 그래서 점장님과 베스트 프랜드가 되셨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였다.
우리 때는 프랜차이즈 햄버거 집에서 생일 파티를 하곤 했는데, 나는 파파이스 메뉴가 너무 질려 다른 데서 하고 싶을 만큼 매일 파파이스를 먹었다. 덕분에 우린 무럭무럭 살이 쪘다.
저녁 10시가 넘어 야식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종종 "네 아빠는 닭에게 위령제를 지내줘야 해"라고 말한다. 그만큼 아빠는 치킨을 좋아하신다. 지금도 매주 닭을 드시는데, 한창 젊었을 땐 오죽했을까. 아무도 닭날개를 먹지 않던 시절 아빠는 뉴코아 백화점까지 가서 닭날개를 잔뜩 사와 튀겨주셨다. 한 때 난 아빠의 배 안에 아기가 있을 거라 믿었었다.
아무튼 본인의 업보로 인해 아빠는 경비실 아저씨들과 두루 친했다. 언제는 보초서는 아저씨에게 맥주 한 병을 나눠주시는 모습도 보았다. 정말 못 말리는 아빠다. 동네 한량 아저씨들에게도 담배를 나눠 주며 친분을 유지했다. 덕분인지 우리 아빠는 만취에도 늘 집까지 안전하게 귀가했다. 물론 핸드폰은 종종 없어졌지만.
아빠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 24시간도 모자라다. 이제는 멀리 나가서는 술을 많이 먹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아빠. 언제나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와 주시길 바라본다.